- 게임 게시판입니다.
Date 16/05/15 23:14:55
Name   저퀴
Subject   둠(DOOM) 리뷰

 리부트로 나오면서 이번 둠은 넘버링도 없고, 뒤에 붙는 기다린 부제도 없이, 딱 알파벳 네 글자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둠을 언급할 때마다 전작들과 구분하기가 까다로워서 영 아니다 싶기도 했습니다. 대신 이런 제목에 걸맞게, 이번 둠은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야심차게 준비한 게임으로 나왔고, 게임 내에서 그런 의도가 확연하게 보입니다. 액션보단 공포를 강조한 3편과 비교하면 더더욱 차이를 알 수 있죠.

 전반적인 구조는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대부분은 레일(일직선) 슈터에 가까우면서도, 비선형적인 진행을 유도할 정도의 넓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수없이 몰려오는 적들 상대로 외길에 숨어서 싸우는 현대전 기반의 슈터 게임들과는 많이 다르죠. 비슷한 경우를 뽑자면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의 후반부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전작인 3편에 비해서 더 나은 부분은 한정된 배경을 잘 활용한 점입니다. 악마들에게 점령당한 화성 기지만이 나오는 게임이 자칫 지나치게 폐쇄적인 공간만 묘사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구간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잘 주지 않습니다. 지옥과 연구소나 공장 같은 다양한 배경이 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큰 장소로 표현되었거든요.

 또한 3편에서 시도된 바 있는 부분도 적절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비록 고전작들이 이야기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즘 시대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대를 고려하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부분이 적절한 서사인데요. 아주 단촐한 등장 인물을 최소한으로 활용했음에도, 몰입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둠의 서사가 특출하게 호평 받을 정도의 완성도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시대에 뒤떨어지진 않았다고 말할 정도는 될 것 같네요.

 전투는 흥겹습니다. 고어하다는 점을 빼면 어렵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다양한 무기, 다양한 적, 이것 저것 해볼만한 넓직한 지형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여기에 소소하게나마 도입된 강화복이나 무기 개조 시스템, 챌린지 모드는 2016년에 맞는 추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단점을 뽑자면 새로 도입된 글로리 킬(적을 마무리 짓는 처형 시스템)은 처음엔 좋았는데, 게임 내에서도 조금 비중이 높은 것 같아서 아쉽게 생각될 때가 있었습니다. 대신 글로리 킬이 명백하게 게임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수준이라 보긴 어려워서 큰 단점이라 보이진 않습니다.

 이어서 게임 내에서 적당한 수준의 에디터를 제공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싱글플레이 캠페인 수준의 복잡하고 잘 짜여진 맵을 만들긴 어려웠습니다만, 적당히 즐기기엔 충분한 수준이라서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멀티플레이는 길게 이야기할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최근 나온 FPS 게임들과 거리가 있는 싱글플레이에 비하면 멀티플레이는 평범했습니다. 이는 둠의 멀티플레이에 도입된 상당수의 시스템이 매년마다 찍어내는 콜 오브 듀티부터 해서 수많은 FPS 게임에 이미 도입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독특하기보다는 가볍게 즐기기에 최적화된 깊이였습니다.

 이번 둠에도 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이드 테크 엔진이 쓰였는데요. 물론 이름만 다른 새 엔진으로 다른 베데스다 게임에도 도입될 차세대 엔진입니다. 다른 점에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로딩이 다소 길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엔진으로 만들어진 예전 게임들이 저질 텍스쳐가 눈에 띄는 단점이 있었는데 둠은 워낙 게임 진행이 빠르고 시선이 한 곳에 집중하기 힘든 게임이라서 보인다 쳐도 의식되진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이번 둠이 매우 혁신적인 게임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멀티플레이만 하더라도 굉장히 흔한 게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싱글플레이도 특유의 호쾌한 맛은 있어도, 최근 쏟아져나온 FPS 게임들의 영향을 안 받은 것도 아니고, 차이점이 크게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재장전을 없애고, 복잡하고 있어보이는 서사보단 단순하고 호쾌한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것만으로도 다른 FPS 게임과 확연히 다른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었고요.

 당장 DLC도 나올테고, 앞으로 후속작이 나올텐데, 이번 둠은 그러한 계획을 위한 밑바탕으로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 봅니다. 둠이 나온지도 이제 너무 오래 전이고, 둠을 즐겨본 적이 없는, 즐겼어도 고작해야 3편이 전부일 사람들에겐 신선하게 느껴질테고,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어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야 재미있는 FPS 게임이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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