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1/03/09 09:38:55
Name   구밀복검
Subject   루시 그레코와의 대화, LG에 보내는 공개편지
LG의 미진한 접근성에 대한 비판이 실린 서울신문 칼럼입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309027001&fbclid=IwAR1--egmQmg76OiIXj3csF3a7IDuqcy-vNNWdO04tu8GHU_7gAZ88noWZ8Q

그레코는 LG 세탁기가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구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조작하려 했더니 세탁기의 전원을 먼저 켠 후에 특정 버튼을 눌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상이 올라가자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고 그레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 아날로그 버튼이 달린 구형 세탁기를 사는 게 낫지 않으냐?" 그레코는 두 번째 영상에서 이렇게 답한다. "LG 세탁기는 사용자 평이 좋았다. 기능이 좋고 세탁을 잘한다고 해서 샀다. 시각장애인은 좋은 제품을 사면 안 되나? 우리는 2등 시민인가?"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애인에게 불편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무한 다이얼이나 매끈한 스크린에 붙은 버튼은 디지털 기술이지만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기 때문에 불편할 뿐이다. 디지털 터치 스크린을 한 번 생각해 보자. 터치 스크린은 거의 예외 없이 소프트 키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소프트 키는 하나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는 버튼을 말한다. 가령 현금입출금기의 화면 속 버튼들은 같은 위치에 있는 버튼이라도 메뉴가 변하면서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누르는 버튼이 무슨 기능을 수행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기술은 시각 장애인에게는 재앙일 수 있다. 특히 물리적인 버튼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스마트폰은 화면 속의 모든 버튼이 소프트 키인 셈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스마트폰은 이제는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가 됐다.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면서 장애인들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연구하고 설계, 반영한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처럼 장애인의 접근이 힘들어 보이는 디지털 제품은 기업들의 노력으로 접근이 가능해진 반면 세탁기처럼 접근성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제품은 디지털화되면서 오히려 장애인들이 넘을 수 없는 문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바람에 그레코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세탁기를 조작하려고 했지만 LG는 그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장애인들에게 장벽이 되는 것은 디지털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무관심’이다.

..이건 LG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에 전반적으로 둔감하다. 예전 같으면 눈에 띄지 않았을 문제가 근래 들어 이렇게 부각되는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LG나 삼성 같은 기업의 가전제품은 이제 미국 내 전자제품 매장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진 최고가의 제품으로 팔리고 있다. 이름 없는 브랜드의 싸구려 제품이었다면 무시하고 말았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제품이 되니 접근성의 문제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거다.

한국 기업들이 이렇듯 세계시장에서 잘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조직의 다양성이다. 생각해 보라. 이 세탁기의 개발 과정에서 조직 내에 장애를 가진 직원이 있었으면 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을까? 내가 사용하는 전기밥솥은 중소기업 제품이지만 메뉴가 바뀔 때마다 ‘백미’, ‘현미’, ‘취사를 시작합니다’ 같은 메뉴를 일일이 말로 해 준다. LG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그 정도의 기능을 넣을 능력이 없을까? 얼마든지 해결할 능력이 있지만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루시 그레코입니다. 저는 접근성 전문가입니다.. 저는 LG 세탁기 옆에 있는 제 세탁실에 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접근불가품입니다. 방금 이 기계를 샀는데 정말 실망했어요. 앱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앱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보여드릴게요. 제가 기계를 켰으니까 이제 다이얼 메뉴에서 무언가를 고르면 되는데, 정작 제가 지금 고르고 있는 메뉴에 어떤 항목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여기 있는 버튼들을 누를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도 알 수 있듯이 저는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네요. 제가 버튼 위를 누르는 건지 아닌지, 제가 방금 선택한 설정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앱이 이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그렇지 못하고요. 앱으로 그렇게 하려면, 저는 이 버튼들 중 하나를 찾아서 3초 동안 누르고 있어야 합니다.."





9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3817 의료/건강"아들이 숨을"..목구멍에 고기 걸린 아이, 식당 직원이 살려 14 먹이 21/04/01 3245 9
23695 의료/건강AZ "코로나백신, 미 대규모 임상서 효과 79%…혈전 안나타나"(종합) 25 다군 21/03/22 4760 9
23557 국제[미국] 다시는 채워지지 않을 50만의 빈자리. 11 Bergy10 21/03/10 3757 9
23537 사회루시 그레코와의 대화, LG에 보내는 공개편지 7 구밀복검 21/03/09 3312 9
23009 사회동물 학대 의심받던 트럭 속 '경태', 명예 택배기사 됐다 16 Schweigen 21/01/19 2530 9
22994 정치文 아동학대 해법, 입양취소 한다든지, 바꾼다든지 9 주식하는 제로스 21/01/18 3662 9
22852 사회정의당 “노동자 목숨을 살려야지, ‘재계 보호법’ 되면 안돼” 늘쩡 21/01/07 2278 9
22777 정치박원순 전 비서실장 "불기소 당연…성폭력 주장도 의심" 21 사악군 20/12/29 4550 9
22130 의료/건강"질병청 믿고 백신 맞자"..62~69세 반나절 만에 26만명 접종 7 구밀복검 20/10/27 2660 9
21940 외신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4 코리몬테아스 20/10/05 3492 9
21707 사회하루 1명꼴 사망…산안법도 외면하는 ‘죽음의 일터’ 농촌 5 메오라시 20/09/11 2635 9
21588 의료/건강 파업 의사엔 "유감"이랬던 文 "코로나 헌신은 간호사의 노력" 82 조홍 20/09/02 6592 9
21379 사회2020년 장마, 지방에서 4 기아트윈스 20/08/17 2404 9
20459 사회땡볕에 보호복 입어보니…'눈물·땀 범벅' 의료진 "곧 쓰러질 듯" 4 다군 20/05/31 2200 9
20386 외신2020년 5월 24일 뉴욕 타임즈 제1면: "Incalculable" 4 다시갑시다 20/05/25 5143 9
20375 의료/건강공공의료원 세워도 의사가 없어.. 다시 힘받는 '지역의사 특별전형' 42 Erzenico 20/05/25 4131 9
20151 기타어린이의 현재를 빛나게 하는 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노는 순간 3 다군 20/05/09 2772 9
20081 사회[김훈 기고] 무서운 역병의 계절을 나며 희망의 싹을 보았다 11 벨러 20/05/04 2830 9
19651 사회국민청원에 흔들리나… 고민 깊어지는 사법부 12 늘쩡 20/04/05 2400 9
19583 정치"채널A기자, '총선 끝나면 친문 몰락, 찍소리 못낼 거다' 해" 8 The xian 20/04/02 2936 9
19499 정치문 대통령, 천안함 피격 10주기에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첫 참석 2 메리메리 20/03/27 2371 9
19420 사회생계가 다급할수록.. '재난의 맨앞자리'에 불려나왔다 4 알겠슘돠 20/03/23 1917 9
19417 사회이상한 믿음 8 기아트윈스 20/03/23 2253 9
19197 문화/예술조선일보가 대형 오보를 처리하는 방법 9 The xian 20/03/11 3204 9
19118 외신[일본-뉴스위크] 마침내 일본은 끝났다 8 자공진 20/03/07 3558 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