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평론은 자유긴 한데 평론 중 어처구니없는 부분이 있다면 비웃음을 듣는 것도 감수해야겠죠
중년 남성과 20대 여성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신사의 품격>(2012)이나 <도깨비>(2016)도 있었으니까. [두 드라마는 나이 차를 별것 아니게 보이려고 남자에게 많은 매력을 부과했다. 미남은 기본이요, 엄청난 재력을 지녔거나, 심지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평범한 아저씨를 그린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둘의 관계...더 보기
뭐 평론은 자유긴 한데 평론 중 어처구니없는 부분이 있다면 비웃음을 듣는 것도 감수해야겠죠
중년 남성과 20대 여성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신사의 품격>(2012)이나 <도깨비>(2016)도 있었으니까. [두 드라마는 나이 차를 별것 아니게 보이려고 남자에게 많은 매력을 부과했다. 미남은 기본이요, 엄청난 재력을 지녔거나, 심지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평범한 아저씨를 그린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둘의 관계를 거부감 없이 설득할 것인가.] 드라마는 극악한 네거티브 전법을 구사한다.
[요컨대 아저씨들은 이미 다른 존재를 착취하는 성별계급의 기득권자들이면서, 자신을 소수자로 여기며 자기 연민에 빠지곤 하는데, <나의 아저씨>가 이런 ‘피해자 코스프레’에 복무하는 것이다.]
이건 뭐ㅋㅋㅋㅋ
좌파들과 대화할때 답답했던 점이 기득권 타파라는 당위론 아래에서 나이브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기득권의 기준이 제멋대로라는 점인데,
부패 정치인이나 재벌까지라면 동의해주겠지만 중장년층, 백인, 직장 상사, 건물주, 남성, 뭐 이렇게 기득권을 설정하면 답없어지죠.
아직 1화밖에 안 봤는데 (아마 황진미 씨는 최신 회차분까지 다 봤겠죠) 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듯하다고 생각되는 서술과 에이이잉 싶은 서술이 혼재되어 있군요. 확실한 건 오달수(큰형 역)씨를 그대로 둔 상황에서 미투가 터졌더라면 드라마의 존폐가 정말 위험했을 것 같아서 아찔하다는 거ㅋㅋㅋ 큰형 배역이 참... 그래요.
ㅎㅎ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되는 얘기를 쓰는 칼럼은 조선일보 정도는 되어야지요.
물론 군데군데 수긍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글에 있어 곁가지일 뿐이고 '아저씨는 기득권인데 아재들 힐링물이니 짱시룸' 이게 하고 싶은 얘기이자 칼럼의 제목인데, 평소 많은 레프티스트들이 기득권을 자의적으로 설정해서 단순화해 프레임 잡는 걸 참 싫어해서 댓글로 주저리주저리 써봤습니다.
황진미가 또..
뭐 저는 '중장년 남성'과 그에 붙는 이런 저런 액세서리 타이틀 자체만 잘라 놓고 보면 기득권적 요소를 읽어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해당 연령대 남성들이 노동 영역에서든 가계 영역에서든 강한 사회 주도력을 갖고 있는 건 맞고, 그러다보니 그런 이들의 자의식을 그리는 게 마이너들에 눈에는 옘병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예컨대 '우는 남자'나 '화장' 같은 게 그렇죠. 자기 연민을 전시하면서 자뻑에 빠지는 식.. 뭐 '로드 투 퍼디션' 같은 남성향 느와르들도 있고.. 이런 건 아재들 힐링물 맞죠. 근데 그건 어디까...더 보기
황진미가 또..
뭐 저는 '중장년 남성'과 그에 붙는 이런 저런 액세서리 타이틀 자체만 잘라 놓고 보면 기득권적 요소를 읽어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해당 연령대 남성들이 노동 영역에서든 가계 영역에서든 강한 사회 주도력을 갖고 있는 건 맞고, 그러다보니 그런 이들의 자의식을 그리는 게 마이너들에 눈에는 옘병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예컨대 '우는 남자'나 '화장' 같은 게 그렇죠. 자기 연민을 전시하면서 자뻑에 빠지는 식.. 뭐 '로드 투 퍼디션' 같은 남성향 느와르들도 있고.. 이런 건 아재들 힐링물 맞죠.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 기득권을 갖고 있는 작중 인물들이 서사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다른 인물들을 낭만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남성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판타지를 대리충족하니까 그런 것이지, 중장년 남성이 주연급으로 출연한다고 다 적폐 드라마 되는 건 아닌데 구체적인 플롯의 전개를 무시하고 구성요소만 체리피킹하니 저런 뻘소리를 하게 되죠. 당장 나의 아저씨 누가 보는데 ㅋㅋ 아지매들이 열심히 보지 아재들 중 저런 거 보는 사람 누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