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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1/01 00:45:04
Name   구밀복검
Subject   쉼 없이 수선해 멋진 유산 물려줘야 진정한 보수
...보수 우익에게 허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보수 우익은 자신의 가치 지향에 관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소중한 것을 남겨 공동체에게 전하려는 게 보수 우익이다. 보수 우익에게 많은 경우 그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치다. 월트 역시 자신이 믿는 미국의 가치를 후대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 가치는 그가 직접 생산라인에서 조립한 빈티지 카, 그랜 토리노라는 자동차가 상징한다.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자국산 차.

멋진 빈티지 카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때 아름다운 것이 존재했음을 뜻할 뿐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줄곧 잘 간수했다는 뜻이다. 실로 월트는 보수의 달인이다. 자기 집과 이웃집을 가리지 않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치고 수선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게 한다. 우리 몸에 완전한 컨디션이 없고, 우리 집에 고장 없는 날이 드물듯이, 이 세상은 늘 어딘가 낡아가고 삐걱거린다. 보수 우익은 파괴하거나 새로 짓는 사람이 아니라 쉼 없이 수선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도 중병에 걸렸음을 월트는 깨닫는다. 자, 이 멋진 유산을 누구에게 남겨주어야 하나. 일제차를 팔고 다니는 저 차가운 아들에게? 평생 아껴온 집을 버리고 실버타운에 들어가라는 며느리에게? 할머니 시신 앞에서 욕설을 내뱉는 손자에게? 빈티지 카와 고급 가구에만 눈독을 들이는 손녀에게? ...아니다. 다름 아닌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던 몽족 소년에게. “콩가루 가족보다 동양인과 더 통하는 게 많군.” ...소년 타오는 월트가 알선한 직장에서 주중에 돈을 벌고, 주말이 되면 그랜 토리노를 타고 데이트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어쩌면 결혼도 하고, 어쩌면 자식도 낳을 것이다. 월트가 겪었던 생로병사를 그 세대 나름의 방식으로 겪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도 노쇠하면 자신만의 그랜 토리노를 그다음 세대의 타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수 우익 월트가 생각했던 삶과 죽음이다.

...‘그랜 토리노’는 어떤 자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스로 총알받이가 됨으로써 월트는 타오네 가족을 구하고 깡패들을 벌했음은 물론, 자기 자신을 벌하는 데도 성공했다. 월트 그 자신이 바로 국가 폭력의 일부였으며 그로 인해 은성무공훈장을 타기까지 했으나, 평생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강론하는 풋내기 신부에게 월트는 일갈한 적이 있다. “풋내기가 감히 노인에게 영생을 약속하다니! 신학교에서 외운 내용으로 삶과 죽음을 운운하다니! 죽음은 쓰고 구원은 달다니! 난 한국전쟁에서 17세 소년도 쳐 죽여봤고. 안고 살아야 할 끔찍한 기억이 있어. 삶과 죽음에 대해 뭘 안다고.” 그는 과거를 미화하는 보수 우익이 아니라, 과거로 인해 고통받는 보수 우익이다. 국가폭력을 용인하는 보수우익이 아니라 국가폭력으로 괴로워하는 보수 우익이다. “정말 따라다니며 괴로운 건 명령받아 한 일이 아닐세.”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벌하고, 소중한 유산만 후대에게 남겨주기로 마음먹는다.

뜬금없는 계엄시도를 통해 공동체의 밥상을 엎은 지금, 한국의 보수 우익에게도 마침내 자살의 기회가 왔다. 어떤 마무리를 할 것인가. 국가폭력의 기억을 가진 한국의 보수 우익은 과연 월트처럼, 핏줄을 넘어, 인종편견을 넘어, 구식 남성성을 넘어, 자신의 후계를 찾을 수 있을까. 반공과 시장에 대한 집착을 넘어 월트처럼 세대를 넘는 가치를 발견하고 전해줄 수 있을까.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중병에 걸린 자신을 버림으로써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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