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5/01/02 12:53:37 |
Name | 카르스 |
Subject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전문 |
여러분! 먼저 신년사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여객기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되신 분들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은 2025년의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런 만큼 밝은 내일과 희망의 메시지로 여러분을 만나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 갈등, 불의의 사고 등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저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이를 헤아려 주시고 제 말씀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략) 올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건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호황 지속으로 연준의 금리인하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환율 변동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제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국내 상황은 더 엄중합니다.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흐름은 안정되었지만, 금리인하가 계속될 경우 불안 요소로 발전될 수 있으므로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점검해 나가야 합니다. 정치 상황의 전개에 따라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어려워진 대외여건과 중첩되어 경제에 주는 부정적 영향이 증대될 수 있습니다. 전례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은 상황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고 기민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향후 통화정책은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금리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렵습니다.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정 컨트롤타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얼마전 발표한 한국은행 보고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포함한 경제 시스템 전반이 정치적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한국은행, 2024가).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대외 신인도 하락과 국정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여야가 국정 사령탑이 안정되도록 협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도 풍랑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부 정책에 조언하며 대외 신인도를 지켜내는 방파제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단기적으로는 신축적이고 유연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누군가는 왜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관계가 갈수록 심화되어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출 문제를 예로 들면, 금년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금액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산업의 사이클에 따라 전체 수출의 부침이 커지는 가운데 주력 산업에서는 후발주자인 중국이 우리를 추격해 왔습니다. 반면 지난 10여 년간 미래 수출을 이끌어가야 할 신산업은 개발되지 못했습니다. 단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매출액 상위 15대 기업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7개 기업이 신규로 진입한 반면 우리는 2개 기업만이 바뀌었고, 그중 신산업을 통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 기업은 1개에 불과해 사실상 신규 진입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핵심동력으로 강조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창조만큼이나 파괴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말입니다. 혁신 기업의 탄생에는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기업의 퇴출이 수반됩니다. 우리 경제에 신성장 기업이나 산업이 부족한 것은 창조적 파괴 과정에 수반되는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회피해 왔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밸류업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밸류업을 위해 기존 기업의 배당률을 제고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 미국 주식시장이 'Magnificent 7'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듯, 우리도 혁신적인 새로운 기업들이 경쟁과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주식시장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부문만큼이라도 혁신을 제한하거나 기득권을 보호해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하루속히 걷어내야 할 것입니다. 밸류업 문제는 최근 높아진 환율 수준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900억 달러 수준의 높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이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외국인과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빼 나갔기 때문입니다. 해외투자 확대는 우리나라를 순대외자산국으로 전환시켰고, 투자다변화 효과와 함께 외채 부담으로 인한 부도 위험을 줄여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주식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외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국내시장에서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밸류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습니다. 가계부채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서 왜 가계부채를 고려하며 좌고우면하느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지난 18년간 가계부채는 부동산 대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다행히도 긴축적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 덕분에 가계부채비율이 18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면서 91%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입니다. 올해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가계부채 관리를 좀 미루고 경기 부양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장의 경기둔화 고통을 줄이고자 미래에 다가올 위험을 외면해 왔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경기를 고려하여 비부동산 가계부채 및 비수도권 부동산 대출에 대한 미시적 조정을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GDP 성장률 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거시건전성 정책 기조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동산 부문이 아닌 생산적인 부문, 그중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혁신 기업들에게 공급해 줄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지금 언급된 구조적 문제들은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해결을 미뤄온 결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까지 낮아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2040년대 후반에는 0%대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이은경 외, 2024). 잠재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이제는 경기상황을 판단할 때 과거의 높았던 성장률에 대한 기억을 내려놓고 우리 경제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전망하였지만 하방 위험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의 성장률이긴 하지만 현재의 잠재성장률 2%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26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인 1.8%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와 같은 상황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보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2%를 밑도는 성장률의 절대 수준만을 과거와 비교하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로만 사용한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부양과 함께 고통스럽더라도 구조조정 문제에 집중해서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일례로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도와주더라도 이들의 현상 유지를 위한 지원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취업자중 자영업자 비중(23.2%)은 미국(6.1%), 유로지역(14.1%) 등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입니다. 이 비중이 점차 낮아질 수 있도록 채무조정, 전직 교육, 퇴직자의 재취업 기회 제공 등을 통해 자영업자들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진출하게 도와주는 구조조정 지원을 병행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은행도 우리 사회가 필요한 구조개혁 방안을 찾아 실행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정책 대안을 계속 제시해 나가겠습니다. (중략) 저는 요즘 직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연구 결과를 외부에 발표하는 등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경제지표해설', 'BOK 마켓브리핑' 등 시각화 컨텐츠를 통해 대국민 소통에 힘쓴 결과 유튜브 구독자 수가 9만명 가까이까지 증가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더욱 노력해서 구독자 수를 올해는 수십만명으로 늘려 '실버 버튼'을 받는 것도 기대해 봅니다. 저는 이러한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화를 일상에서도 느낍니다. 저와 같이 승강기 타기를 주저했던 직원들이 이제는 스스럼없이 탑승하는 모습을 볼 때 수평적 조직문화가 조금씩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 우리 앞에 놓여진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손자병법의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患爲利),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Never waste the opportunity offered by a good crisis)'라는 서양 격언은 모두 '위기는 곧 기회'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야할 것부터 차분하게 실천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가정에 올 한 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월 2일 총재 이 창 용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123/0002350004?sid=101 ========================================================================= 한국 경제에 관심이 많고, 한은과 이창용이 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은 정독해야 할 명문. 이창용이 정책 제언에 있어 무리수를 던지고, 월권한다는 인상도 종종 받지만 본업에서는 경제운용을 넘어 소통 능력까지 명불허전입니다. 되도 않는 비관론을 걷으면서도 실재하는 구조적 문제, 위기를 균형있게 서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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