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9/07/15 02:47:10 |
Name | [익명] |
Subject | 꿈해몽질문드립니다. |
보통 꿈을 믿지는 않습니다. 절벽에서 수업이 떨어졌어도 단 1cm 도 키가 안컸거든요. 그런데 방금 꿈이 심각하여, 혹시나 하여 회원분들께 해몽 부탁드리려 합니다. 늦은시간이지만 너무 찜찜합니다. 시작은 기억나지 않는데 일행과 제가 한 조직)마피아)에 도망치다가 그들을 제가 다 쏘아 죽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과정에서 부상당한 할어버지(실제 돌아가신 가족)를 제가 총으로 쏴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이드리게 됩니다. 문제는 복부에 3방이나 맞췃음에도 고통스러워만 하시고 마지막 한발은 빗맞으며 더 고통스러워 하셔서 꿈임을 알아채고 깼습니다. 너무 심란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신것도, 그리고 제가 할아버지를 총으로 쏜 것도.... 혹시나 하여 총을 맞은 위치도 기억하고 잇습니다.(병이나 이런걸까봐) 심각한 흉몽이라면, 가족들에게도 조심하라 말하고 산소도 가보라고 해야할거 같아서요. 늦은시간이지만 질문남겨봅니다. 0
|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꿈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을 꾸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도 많이 꿉니다.
안락사가 윤리학의 영원한 떡밥인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역설이 우리 도덕감정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가 좋기만하다면 도덕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걍 안락사를 시행하는 편이 더 윤리적이겠지만, 사실은 결과가 좋다는 것 역시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이려... 더 보기
안락사가 윤리학의 영원한 떡밥인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역설이 우리 도덕감정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가 좋기만하다면 도덕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걍 안락사를 시행하는 편이 더 윤리적이겠지만, 사실은 결과가 좋다는 것 역시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이려... 더 보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꿈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을 꾸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도 많이 꿉니다.
안락사가 윤리학의 영원한 떡밥인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역설이 우리 도덕감정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가 좋기만하다면 도덕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걍 안락사를 시행하는 편이 더 윤리적이겠지만, 사실은 결과가 좋다는 것 역시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이려고 한대 쳤는데 아 씨바 너무 아프다 취소하자고 하는데 이미 너무 쎄게 맞아서 가망이 없다던가하면 윤리적 행위로서의 안락사는.... 좃망한거지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락사는 취소 못할 정도로 단숨에, 아주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안락사가 결과적으로 잘 된건지 안 된건지 안락사 당하는 본인에게 듣고 싶지 않으니까 입도 뻥긋 못하게 쾌속으로 죽인 뒤에 "후, 고통을 덜어주었다. 다 잘 된거야."라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정당화를 해야 하거든요.
이 말은, 혹시라도 일이 수틀려서 안락사 수혜자가 단번에 안죽고 애절한 눈빛으로 살려달라고하는 것, 시혜자는 그 고통의 질감을 생생하게 인식하면서도 이미 일을 돌이킬 수 없으니 수혜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다시 재시도를 해야하는 것이 시혜자 입장에선 가장 큰 공포라는 겁니다. 두려워하는 일이 꿈에서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도 비슷한 꿈 꿉니다. 글쓴분의 선한 도덕감정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콜라보한 결과이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안락사가 윤리학의 영원한 떡밥인 이유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역설이 우리 도덕감정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가 좋기만하다면 도덕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걍 안락사를 시행하는 편이 더 윤리적이겠지만, 사실은 결과가 좋다는 것 역시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이려고 한대 쳤는데 아 씨바 너무 아프다 취소하자고 하는데 이미 너무 쎄게 맞아서 가망이 없다던가하면 윤리적 행위로서의 안락사는.... 좃망한거지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락사는 취소 못할 정도로 단숨에, 아주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안락사가 결과적으로 잘 된건지 안 된건지 안락사 당하는 본인에게 듣고 싶지 않으니까 입도 뻥긋 못하게 쾌속으로 죽인 뒤에 "후, 고통을 덜어주었다. 다 잘 된거야."라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정당화를 해야 하거든요.
이 말은, 혹시라도 일이 수틀려서 안락사 수혜자가 단번에 안죽고 애절한 눈빛으로 살려달라고하는 것, 시혜자는 그 고통의 질감을 생생하게 인식하면서도 이미 일을 돌이킬 수 없으니 수혜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다시 재시도를 해야하는 것이 시혜자 입장에선 가장 큰 공포라는 겁니다. 두려워하는 일이 꿈에서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도 비슷한 꿈 꿉니다. 글쓴분의 선한 도덕감정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콜라보한 결과이니 너무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