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19/09/02 10:42:51
Name   [익명]
Subject   기억을 안 하고, 부정적인 사고가 기본인 연인
연애 카테고리이기는 한데, 심리/상담도 들어갈 것 같고 흐음...

문자 그대로 연인이 타인에 대해 기억을 안하는 성격입니다. 타인에게 일어난 에피소드를 기억하지 않는데, 이게 연인인 저뿐만 거의 모두에게 그러는 듯합니다. 말하기로는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어느 정도냐면 어제 자기 전에 얘기했던 내용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립니다.

1년 넘게 사귀면서 파악하기로는 '자고 일어나는 것'이 기점 같습니다. 그 이후로 기억이 리셋되면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긍정적인 감정도 날아가버리는 듯해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고 큰 틀에서 사람을 기억하기는 하는데, 관계 망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라던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던 내용 중 7~80%가(체감으로는) 휘발되어 버립니다.

다행인지 스스로 '과업'이라고 인지하는 부분은 명확하게 이해하는 걸 보니 두뇌 기능이 남들과 다른 것 같지는 않고, 관계에 필요한 정보에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는 듯합니다. 본인이 2년 전에 DISC 검사를 받았는데 과업형 인간으로 나왔다며 그 결과를 자아상의 한 축으로 삼고 있어요. 사실 친구도 거의 없습니다. 왜 관계에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지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애착도식으로 보면 회피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에 더해 부정적인 사고 습관이 뿌리깊게 배여있습니다. 절망회로라고 해야하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정적인 해석이 심해요. 뭔가 확실하고 안정적인 걸 원하는 듯한데, 현재 직업이 좋은 조건이기는 해도 계약직인지라 이 점도 불안의 한 축으로 작용하는 듯하고요. 그런데 생각이 많다보니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이 발동하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에너지가 다 생각에 쏠려서 다른 걸 하지 못해요.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자기 상황 전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도중 트리거가 한 번 발동하면 땅을 파고 들어갑니다. 큰 상황이면 가능한 열심히 위로해주고 실질적인 도움도 주는데, 대부분의 상황에서 인지도식이 이런 방식이라 제 에너지가 많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앞에서 말했던 '기억을 안 하는 성격'이 연결되는데, 이런 불안이나 걱정들이 자고 일어나면 다 사라집니다. 자고 일어나면 불안/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할 듯한데, 연인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그 효과가 더 극적이라고 생각되요. 자고 일어나면 감정적으로 꼬였던 모든 것들이 풀리고, 기억도 풀리는? 상당히 오래된 습관이라 합니다. 반대로 제가 도와주고 힘을 줬던 것들도 머리 속에서 희미해져 버리고요 ㅎㅎ

이게 올바른 해석인지 모르겠는데, 감정적인 불안을 다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기억하지 않는' 걸 택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외부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매우 센서티브 한데, 언젠가 들어온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되지만) 부정적인 사고회로의 여파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거든요.

앞에서 말했던 '트리거'라는 건 제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는 여러 감정의 방아쇠들이에요. 본인도 '기억하지 않고' 머리 속 어딘가로 치워뒀던 부정적인 기억들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비슷하게 확 나타나는 듯해요. 그려면 저 어딘가로 멀리멀리 떠나게 되거든요. 이런 걸 보면 완전히 기억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냥 의식의 영역 어딘가로 잠시 치워두는 것에 불과한 듯해요. 근데 이렇게 해결하지 않고 미뤄둔 것들이 많은지 몇 달에 한 번씩은 푸닥거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 현재 연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 습관을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인도 이 점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전 연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고스팅도 했다는데, 스스로도 잘못을 인지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1. 꾸준히 운동하기, 2. 음식 잘 챙겨 먹기, 3. 상담을 받아보기 정도로 방침을 잡고 1, 2는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설득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사고에 에너지가 지나치게 쏠렸을 때 감각으로 에너지를 정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꾸준히 강조했거든요.

근데 3은 정말 안 되네요. 저는 상담을 받아본 적도 있고, 100%는 아니더라도 잘 맞는 경우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연인은 계속 상담을 피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바빠서 그렇다고 하는데 상담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부정적인 스티그마 때문에 그런 듯해요. 제가 연인의 가족사나 1년 남짓한 연애를 통해 파악한 내용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다소 섣부르다 생각해서 상담을 받게 하고 싶어요. 근데 계속 저러니...

일단 글에서는 문제가 되는 지점만 적었지만, 연인의 장점도 많고 그 점 때문에 연애는 잘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워낙 에너지가 많은 편이라 아직까지는 한숨만 가끔 나오는 정도고, 꼭 일방적으로만 제가 에너지를 주는 편은 아니거든요. "내가 떠나가면 이 사람은 안 될거야" 같은 사고는 아니고, 헤어지더라도 알아서 사회적인 기능은 다 하면서 살아갈 것 같기는 합니다. 아직까지는 서로 마음이 있으니 관계를 위해 노력을 하는 거예요.

근데 이래저래 함께 노력하는 취지나 방법을 설명하고 말해도 자고 일어나면 또 까먹었네요ㅠㅠ 연인도 답답한지 내가 원래 까먹는 걸 어떡하냐는데 어제도 짜증이 솟아서 잠깐 싸웠다가 방법을 다시 찾아보고자 글을 썼습니다.

뭔가 두서없고 정신없이 적었는데, 질문점을 요약하자면

1) 성격이 매우 센서티브 한 연인이 불안과 부정적인 사고를 다루기 위해 '기억하지 않는 것'을 해결책으로 삼는 듯하다는 해석이 타당할까요?
2) 상담을 받도록 잘 꼬드기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3) 반대로 제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세상에 원래 '정상'은 없으니 그냥 맞고 안 맞고만 있는 건데, 괜히 제가 안 맞는 연인의 어떤 점을 교정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냥 기억하지 못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대로 두고,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있으면 계속 에너지만 주는 것이 맞는 걸까요?
4)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있으실까요?

정도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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