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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26 23:15:38
Name   간로
Subject   홍콩의 화양연화(2) 꿈의 시공간, 2046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 https://redtea.kr/?b=3&n=11248


香港的 花樣年華
홍콩의 화양연화(2)

-꿈의 시공간, 2046-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특정한 상황과 특정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이 없다. 그의 존재의 숙명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 니체, 우상의 황혼-



一九六六年 香港
1966년 홍콩


원래 홍콩은 버려진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국의 지배 이래로 아편전쟁 이래로 혼란기가 거듭되던 중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와 홍콩에 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영국과 이주민들간의 긴장도 있었으나 2차대전 동안 일본의 고통스러웠던 점령기가 끝나고 다시 영국이 돌아오면서 사람들은 영국을 더 나은 해방자로 느끼기까지 했다. 여기에다, 국공내전 말엽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을 피해 홍콩에 자리잡았는데(왕가위는 이 시기를 '일대종사'로 다룬다.), 이때의 이주민들은 공산당을 피해서 온 것인만큼 그들에게 영국은 보호자이기도 했다. 

모든 식민지 관계가 그러하지만 식민자와 피식민자는 구분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은 다르고 구분되었지만 식민자는 언제든지 식민지에 대해서 자신이 다른 존재이며 그로부터 스스로의 우위성을 언제든지 드러낼 수 있지만, 식민지의 입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 당신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적극적인 형태로 표면화시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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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최초로 나타난 게 66년 시위였다. 홍콩은 북쪽의 구룡반도와 남쪽의 홍콩섬으로 나누는데, 그 둘을 잇는 페리선의 요금이 그해 갑자기 인상되자 홍콩인들은 최초로 항의시위를 벌인다. 당시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를 낳는 영국정부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함께 했다. 이제 홍콩인들은 영국을 보호자로만 바라보진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보호자라도 그들은 결국 우리와 다른 존재.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66년 시위는 진압되었으나, 영국의 통치에 대항한 홍콩이라는 기억을 남겼다.



一九六七年 香港
1967년 홍콩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든, 홍콩은 본래 광둥지역으로서 근대 이전 수천년동안 중국에 있었다. 온전히는 영국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 한다면, 그렇다면 홍콩은 중국이라 할 것인가? 


이듬해, 이를 두고 더 치열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것이 67폭동이다.

67

처음에는 노동쟁의로 시작되었으나, 당시 홍콩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모여 반영시위로 발전한 이 사건은 당시 중국본토의 문화대혁명을 신봉하며 홍위병과 연계된 홍콩 내 친중 급진세력이 결부되면서 과격해진다. 


당시 홍콩의 북부 구룡반도에는 근래에 중국에서 피난온 가난한 이주민들이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말을 들으며 홍콩섬의 부자와 영국인들로부터 멸시받고 있었고, 이와 대비되는 부자동네 홍콩섬에서는 영국에서 온 이주인들과 여기에 영합하여 부자가 된 기업가들이 있었으며 구룡반도의 사람들은 이들을 '돼지'라 부르며 비난하곤 했다. 공공연한 뇌물 또한 만연했다. 공무원만이 아니라 의사도 따로 돈을 받아야 진료를 해줬고, 교사 촌지는 당연했으며, 돈을 주지 않으면 소방관이 불을 끄지 않았고, 기업에서 채용시에도 돈을 주고받는 일이 빈번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 67년의 시위는 영국정부의 무능에 대해 분개하던 홍콩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문화대혁명과 연계되며 시위는 점차 과격해지며 홍콩경찰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기도 하고 이에 대응하여 경찰은 발포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 급진 세력은 폭탄 테러로 보복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런 테러의 대표적인 일이 아나운서이던 람반 암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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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진행하던 람반은 시위세력에 비판적 논조를 보이곤 했고 시위대를 그에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두명의 테러범이 람반이 탄 차를 습격하여 가두고 자동차에 불을 질러서 람반은 사망하였다. 이일이 알려지자 당시까지도 시위에 대한 태도를 두고 갈라져있던 민심이 급격하게 영국정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언론인에 대해서 이루어진 테러였기 때문이다. 홍콩에 대한 이해없이 친중단체들이 민간인에 대해서도 가한 테러들은 역효과만 낳았다.


이후에도 폭탄테러가 이어지며 3개월정도 폭동은 더 이어지지만, 이를 통해 홍콩인의 마음 속에 명확해진게 있다. 홍콩인은 중국도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경제실패로 기근자가 넘쳐나던 중국의 상황을 보면서 이런 자기이해는 더욱 공고히 자리잡았다. 




황금기, 그리고...


67폭동을 진압한 영국정부는 이제 중국과의 체제경쟁이라는 차원에서 홍콩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정부패 일소와 빈부격차 해소에 나서게 된다. 이게 우리가 오늘날 인식하고 있는 서구화된 선진 홍콩의 시작이다. 제조업이 발달했던 홍콩은 80년대 들어 점차 금융, 무역으로 산업의 중심을 옮겼고 이게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탄생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영국과도 다른, 중국도 아닌 홍콩이라는 독자적 정체성을 공고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황금기도 끝나가고 있었으니... 구룡반도 북쪽 너머의 홍콩시가의 배후지라 할 수 있는 신계지역의 반환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도심지역은 영국이 영구보유할 수 있었으나, 신계지역은 별도의 다른 조약으로 99년의 조차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신계를 반환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정세에 대한 불안으로 1980년대 초 홍콩은 금융/부동산의 자산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에 당시 대처 정부는 신계지역에 대한 점유를 더 연장할 생각으로 중국의 덩샤오핑과 협상에 나서지만 '일국양제'를 들고나온 덩샤오핑의 협상전략과 지지부진한 협상과정에서 홍콩의 자산가치가 떡락하는걸 보면서 대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반환에 합의하게 된다. 이것이 84년 발표된 중영공동선언이다. 이제 영국령 홍콩의 시대는 97년으로 끝날 운명이 된다.


누구든 지배하는 정부가 완전히 교체된다 하면 일단 불안감이 들게 되리라. 더구나 89년의 천안문 시위는 이런 홍콩인들의 불안한 정서에 절정을 찍게 한다. 수도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탱크로 진압하는 나라로 머지 않아 '반환'될거라 생각하면 어떠할지. 그리고 우리가 아는 수많은 홍콩영화의 걸작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탄생한다. 홍콩영화에서 잘 보이는 흐릿한 초점과 노이즈로 가득차 흔들리는 화면은 여기서 기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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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에 나오는 그 빌딩, 거기 맞다. 여기 제니쿠키라고 유명한데가 있다. 가짜도 많으므로 주의. 진짜는 2층에 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모두가 불안해하며 맞이한 97년 마침내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다. 이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미국으로,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무간도2에서 나오는 홍콩반환 장면. 무간도시리즈는 홍콩반환과 중국본토와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홍콩은 완전히 끝난 걸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애초에 홍콩은 독립한 별도의 국가였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온전히 영국일수도, 완전한 중국일수도 없다.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독특한 울림은 여기에서 온다. 홍콩이라는 공간은, 홍콩인(hongkonger)이라는 정체성은 홍콩사의 궤적으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써내려가며 꿈을 꾸는 것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모운(양조위)이 리첸(장만옥)을 만나며 무협소설을 써내려가며 꿈을 꿨던 것처럼.



花樣年華, 二〇四六
화양연화의 2046 


리첸과 가까워지며 모운은 단념했던 무협소설이라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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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이 앞에 있어서 인물들이 마치 갇혀있는 것처럼 연출되고 있다.>


그러면서 '같이 구상해보지 않을래요.'라는 말로 리첸에게 자신의 꿈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 제안한다. 둘은 함께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며 모운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영화를 본 사람이면 다들 기억에 남을, 집주인의 마작사건 때문에 둘은 한 방에 있던 걸 들킬수도 있던 곤욕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이후 글이 호평을 받아서 지면을 받아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모운의 이야기에 리첸은 시간이 없을거라며 걱정하지만 모운은 글 쓸 장소를 찾았다고 말한다. 오기 더 편한 곳이며, 무엇보다도 들킬 염려도 없을 장소일 거라고. 이곳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꿈꾸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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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꿈을 말하는 씬들에 금기의 창살이 처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의 장면과 거의 같은 구도이다.>

이런 모운의 말에 리첸은 당신은 내가 없이도 잘만 쓰지 않느냐며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힌다. 아마도 금기의 관계란 그런 제의마저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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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욕망, 열정, 사랑의 빨간색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이 공간에 홀로 들어선 모운은 결근을 하게되고 갑자기 전화연락이 안되어 초조해하던 리첸은 전화 한통에 바로 이곳으로 달려간다. 이후로 둘은 본격적으로 함께 글을 지으며 이 곳에서 밀회를 나눈다. 이 장소는 잃어버린 꿈을 꾸며 연인과 함께 로맨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과연 이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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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딱 이 한 장면에서 나온다. 특별한 것 없는 숫자일까. 


2046은 일국양제가 끝나는 해다. 97년 반환 이래 공식적으로 홍콩의 자율성이 보장되게 되어있는 50년의 시간은 이때 끝날 운명이다.

홍콩의 이 시간은, 그리고 화양연화의 이 공간은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고 연인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둘의 로맨스는 금기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염려없이 자유롭게 연인일 수 있는 장소이다. 꿈을 꾸는 것이 결근이라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하고 로맨스가 사회적 눈총을 받게 하더라도 이곳은 그것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곳이다. 홍콩이라는 꿈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최소한 2046년까지는. 왕가위는 그렇게 말하는듯하다.  


그렇다면, 홍콩은 아직 꿈을 꿀 수 있다. 그것이 운명 앞에 몰래 꿈꾸어질 수 있다 해도. 



여담


왕가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아예 '2046'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동안 왕가위가 찍었던 영화들의 후일담 성격에 가깝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앞선 영화들을 아우르는 속편격.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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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예고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닛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이 몸 태어날 때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의 연분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하나 젊어 있고 님 하나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다.


- 정철, 사미인곡(思美人曲)-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1-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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