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6/22 02:12:30
Name   Peekaboo
Subject   찢어진 다섯살 유치원생의 편지 유게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유게의 [찢어진 다섯살 유치원생의 편지]를 보고 긴 댓글을 남겼음에도 잠도 오지않고 뒤숭숭해서 지금 드는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7살, 5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유치원 학부모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공립단설유치원이자 혁신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립유치원 등의 사정은 잘 모르고 저희 유치원 교육과정에 기대어 생각해봤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현재 작년부터 개정, 시행된 '놀이중심 누리과정'에 맞춰 유치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도 국영수 1도 안하고 맨날 놀다오는 유치원이었는데 놀이중심 누리과정이라니 더 놀 수가 있기나 한건가 싶었죠. ㅋㅋㅋ
그 후 1년 반 가까이 지나보니 수업을 선생님이 주도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게 개정된 누리과정의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한달의 주제와 그 주의 놀이가 정해져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아이들이 만들어가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평가시간(그날 뭐가 재밌었고 별로였는지 말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하구요.
지난달은 5월이라 가족이 주제였고 이번달은 큰애반은 책, 작은애반은 교통수단이 주제더라구요.
작은애 반 활동은 아직 어린이집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있지만, 큰애 반 활동은 제법 흥미진진해요.
유치원 지도를 만들고 공룡놀이터를 만들어 다른반 친구들을 초대하고, 다른반 우주놀이터에 놀러가고, 가족을 소개하는 신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소식지나 사진을 보며 어떻게 활동했는지 이야기해보면 친구A가 무슨 얘기를 했고 친구B는 뭘 만들었으며 본인은 무엇을 했는지 신나게 이야기해줍니다.
이 때 신기할정도로 선생님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선생님은 뭐하셨어? 하면 보통 "우리가 이거 하는데 잘 안돼서 도와주셨어." 정도의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다보니 결과물만 보면 참 소박하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느날  혼자 신문을, 책을 만들어 온다든지, 지도에 관심을 보인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면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해서 깨우친 무언가가 엿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유치원 가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요. 두 아이 모두요.
저희 아이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 그 유게글의 아이들 활동을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주제가 마을이었다니 마을에대한 여러가지 활동을 했을거예요. 처음엔 5세가 저런 활동이 가능한가 싶었는데 5세반이라는 거 보니 보육나이 5세 즉, 우리나이로 7세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가보고싶은 곳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그 놀이터를 지목했을 때 선생님은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소방서, 경찰서... 보통 그런 거 생각하잖아요.
그 때 선생님이 "그 놀이터는 사유지라 갈 수 없어요." 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그 놀이터는 사유지라 우리가 가려면 허락을 받아야해요.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할까요?" 라고 해야할까요.
제 생각에 선생님은 후자를 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락받을 방법을 의논하다 그 투표지를 붙이게 됐을거구요. 제 기준에선 너무나 훌륭한 유치원 활동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은듯 하지만 모두에게는 이해받지는 못해 그런..... 불행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꼭 내 아이가 만든 게 찢어진 듯해서 주책맞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 보잘것없는 것 한장 쓰려고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풍경이 상상돼서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구요.
옆동네에서 댓글을 읽는데 사유지다 사고나면 문제다 선생이 무개념이다 등등을 보며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게 이런거구나... 또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어요.
이 글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말주변도 없고 소심해서 댓글같은거 진짜 잘 안쓰는데 이건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라는 마음에 긴 댓글을 적고
우리 아이들이 이런걸 하고 있으니 혹시나 또 비슷한 걸 본다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긴 글을 적어봅니다.
모두가 아이였고 어른의 배려속에 이렇게 멋지게 자라셨으니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맘에 안들더라도 한번만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해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7-06 07:5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4
  • 100% 공감합니다.
  •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09 일상/생각저는 소를 키웁니다. 26 싸펑피펑 18/04/02 6385 48
1316 일상/생각우리 엄마 분투기 8 dolmusa 23/08/01 2769 47
1125 일상/생각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27 Regenbogen 21/09/09 5253 47
1014 기타30개월 아들 이야기 25 쉬군 20/10/05 5778 47
882 의료/건강마음의 병에도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12 김독자 19/10/31 6889 47
749 의료/건강저의 정신과 병력에 대한 고백 15 April_fool 18/12/29 8680 47
551 일상/생각고3, 그 봄, 그 겨울 19 aqua 17/11/21 6897 47
1173 기타깃털의 비밀 - 친구 없는 새 구별하는 방법 11 비형 22/03/03 4779 46
1145 문화/예술회사 식당에서 만난 박수근 12 순수한글닉 21/11/19 6182 46
979 일상/생각집밥의 이상과 현실 42 이그나티우스 20/07/06 5962 46
809 문화/예술알라딘은 인도인일까? 28 구밀복검 19/05/28 9827 46
776 일상/생각가난한 마음은 늘 가성비를 찾았다 18 멍청똑똑이 19/03/04 6819 46
712 일상/생각고해성사 19 새벽하늘 18/10/12 5333 46
549 일상/생각그래도 지구는 돈다. 40 세인트 17/11/20 6548 46
338 일상/생각홍차넷 10000플 업적달성 전기 123 파란아게하 17/01/05 8314 46
1288 일상/생각전두환의 손자와 개돼지 3 당근매니아 23/03/30 3298 45
1168 일상/생각길 잃은 노인 분을 만났습니다. 6 nothing 22/02/18 4320 45
935 의료/건강자존감은 꼭 높아야 하나요? 42 호라타래 20/03/20 8083 45
601 일상/생각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않겠다! 35 얼그레이 18/03/06 7183 45
1311 일상/생각(기이함 주의)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부모와의 분리를 적극 주장하는 이유 45 골든햄스 23/07/12 3359 44
1250 일상/생각7년동안 끊은 술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32 비사금 22/11/10 4645 44
1195 정치/사회검경수사권 조정- 국가수사총량은 얼마나 증발하였나 36 집에 가는 제로스 22/05/02 5005 44
1099 기타 찢어진 다섯살 유치원생의 편지 유게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41 Peekaboo 21/06/22 5957 44
1047 일상/생각열아홉, 그리고 스물셋 15 우리온 21/01/01 5629 44
807 역사모택동 사진 하나 디벼봅시다 18 기아트윈스 19/05/24 8031 4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