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7/21 23:14:26
Name   Regenbogen
Subject   그날은 참 더웠더랬다.
일곱살 적 마지막으로 봤던 이모에게 이십년만에 전화가 온 날… 그날은 참 더웠더랬다.

[천하에 모질고 독한 놈!!! 이 배락 맞아 뒈질놈!!!]

전 외가쪽에서 얼마전 내 생모가 만성인가 급성인가 신장이 안좋아 이식 수술을 당장 해야한다 연락이 왔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빨리 검사 받고 콩팥 하나 내놓으라는 거였지. 난 단칼에 잘랐고 당신들 모르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했다. 그러고 한달 쯤 지났으려나… 이모는 저리 세상 저주를 퍼부으며 어머니를 신촌 세브란스에 안치했으니 와서 상주 노릇을 하라했다.

당시 연남동 살적이라 걸어서 십분 지척이었으나 난 장례식장 대신 클럽으로 향했다. 한껏 멋지게 단장한 뒤 slk 뚜껑 열고 시내를 한참을 누비면서…





81년 겨울 어느날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분홍소시지를 부치고 계셨다. 쪽파를 다져 넣은 계란물을 듬뿍 뭍혀 지져낸 분홍소시지 전. 신이난 난 옆에서 하나씩 주워먹으며 어머니를 채촉했다. 어머니는 웃으며 그랬다. 엄마 열밤 자고 올테니 이거에다 밥 먹고 있어. 알겠지? 오랜만에 먹는 전 앞에서 난 웃으며 그러겠노라 했다.

소쿠리 한가득 전을 부쳐놓은 다음 어머니는 내손에 5천원을 쥐어주고 짐을 꾸려 문을 나섰다. 전날 외박하신 아버지는 점심께 집에 돌아오셨다. 때마침 전을 꺼내 주워먹고 있던 나에게 그건 뭐냐 물으셨다. 엄마가 먹으라고 해놨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소쿠리를 집어던지시며 갖다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영문을 모른 난 무서워서 그저 울기만 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 기억에 남은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





한참이 지나 중학생 무렵 부모님의 이혼 사유를 알게 되었다. 전적인 어머니 귀책사유. 사랑과 전쟁 작가라도 순화해서 쓸 법한 그런 사유였다. 그때부터 모친에 대한 그리움은 증오로 바뀌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증오는 점점 강화가 되었다. 그렇게 이십년이 지난 여름날 그렇게 어머니는 길을 떠났고 난 끝까지 증오심에 쌓여 가는길까지 외면했다.

하나 신기한건 이십년 전 장례식장 대신 클럽에서 밤을 세우고 돌아오는 새벽… 주차를 하고 오피스텔 입구로 걸어오다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그리곤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도무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더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또 이십년이 지났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해도 내 선택은 같을거다. 근데… 지금이라면 어쩌면 가는길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오늘처럼 참 더웠더랬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8-02 23:2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1
  • 토닥.
  • 뭘해도 서글픔이 남더라고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52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4897 24
1108 일상/생각그날은 참 더웠더랬다. 5 Regenbogen 21/07/21 4877 41
1175 일상/생각농촌생활)봄에는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 16 천하대장군 22/03/07 4869 23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4868 21
1225 일상/생각 6 하마소 22/07/21 4866 20
1320 경제사업실패에서 배운 교훈, 매출 있는 곳에 비용 있다 7 김비버 23/08/12 4864 28
1211 문학달의 뒷편으로 간 사람 [마이클 콜린스] 12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08 4854 16
1089 여행[사진多]5월의 가파도 산책 8 나단 21/05/12 4814 8
1214 일상/생각아이들을 돕는 단체 "얀코"에 2차로 자원봉사 다녀왔습니다. 17 트린 22/06/16 4790 37
1182 기타연방 대법관 청문회 - 관타나모와 전범 5 코리몬테아스 22/03/29 4790 10
1202 여행캘리포니아 2022 - 1. 과거라는 외국 2 아침커피 22/05/16 4778 13
1122 일상/생각사랑하는 소년 6 아시타카 21/08/29 4776 20
1183 일상/생각농촌생활) 3월 중순 - 4월 초 18 천하대장군 22/04/08 4772 22
1319 정치/사회개평이 필요하다 19 기아트윈스 23/08/05 4756 65
1170 정치/사회러시아와 우크라이나, 3개월의 기록들 4 조기 22/02/25 4748 14
1229 정치/사회장애학 시리즈 (2) - 시각장애인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가? 5 소요 22/08/07 4742 15
1345 정치/사회한국 철도의 진정한 부흥기가 오는가 31 카르스 23/12/16 4736 7
1184 문학[그림책] 누가 진짜 엄마야? 3 늘쩡 22/04/13 4723 12
1289 문화/예술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1. 원작 만화처럼 로맨스 즐기기 16 서포트벡터 23/04/03 4722 9
1441 정치/사회화교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는 말 18 당근매니아 25/02/11 4705 17
1286 꿀팁/강좌농업용 관리기 개론 8 천하대장군 23/03/23 4687 10
1217 일상/생각농촌생활) 6월 - 콩파종 20 천하대장군 22/06/27 4685 20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4667 69
1269 기타2022 걸그룹 결산 10 헬리제의우울 23/01/23 4661 22
1265 일상/생각같이 게임했던 누나 이야기.. 3 어제내린비 23/01/12 4633 18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