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8/25 09:24:10
Name   Regenbogen
Subject   손님들#1
제가 탐라에 허구헌날 진상욕만 해대고 있어요. 장사하다 보면 열 뻗히게 하는 손놈들도 많지만 무슨 사연들이 그리도 많은지 마음이 심란하게 했던 손님들도 계셔요.

재작년 살이 에이게 춥던 겨울 어느날이었어요.

눈 두덩이 멍 든 채로 간난 아이는 업고 너댓살 큰애는 손 잡고 걸어온 애기 엄마. 슬리퍼 차림에 얇은 잠옷 같은 옷 위로 겨우 외투만 걸치고 오들오들 떨며 들어와 지갑을 놓고 와서 지금 2만원 밖에 없다며 하루만 부탁드리면 안되겠냐 울먹더라구요.

돈 받을 때 보니 팔에도 멍자국이 군데군데…

한참을 망설이다 도와드릴까요 딱 한마디를 건네자 괜찮다 아무일 없다 한사코 고개를 젓던 애기 엄마는 내가 어떤 도움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돈을 받을수 없어 다시 돈을 돌려주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저녁을 드셨냐 물었어요. 먹었대요. 누가봐도 거짓말인데…

직원도 있으니 그자리서 돌려주면 무안할까봐 조금 지나 객실로 올라 갔어요. 우리 조카도 애가 둘이라 생각나서 그러니 복잡하게 생각치 마시고 이걸로 야식이나 시켜 드시라 2만원 다시 돌려줬지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급하게 잘 곳 필요하시면 언제든 편하게 오시라 했어요. 그랬더니 2만원을 손에 쥔 채 아무말 없이 고개를 떨구더라구요.

그러고 돌아서는데 큰 아이가 뭐가 신나는지 침대위에서 방방 뛰며 엄마 엄마 엄마 해맑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이 씨… 애는 또 왜 그렇게 귀엽던지여. 겨우 겨우 참던 감정이 아이 웃는 모습을 보니 터져버리더라구요. 황급히  데스크로 내려와 직원 앞에선 괜찮은 척 잠시 가오 잡다 화장실로 도망가 세수했었죠.

애기들과 애기 엄마는 그날 이후 두번 다시 오진 않았습니다. 끽해야 스물대여섯 어리디 어린 애기 엄마가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을꼬… 한번씩 생각 납니다. 후회도 되고요. 그때 신고를 했어야 할까. 지금은 괜찮을까. 안좋은 일은 없겠지. 한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9-07 07:3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1
  • 8ㅅ8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4 의료/건강술을 마시면 문제를 더 창의적으로 풀 수 있다?!!!! 61 소맥술사 18/05/15 8121 23
998 문화/예술술도 차도 아닌 것의 맛 7 아침커피 20/08/17 4658 19
503 의료/건강술, 얼마나 마셔야 적당한가? 63 빈둥빈둥 17/08/30 9675 10
598 일상/생각순백의 피해자 3 라밤바바밤바 18/02/27 6279 15
452 일상/생각숙제 무용론 국딩의 최후 11 Homo_Skeptic 17/06/14 6270 7
775 과학수학적 엄밀함에 대한 잡설 29 주문파괴자 19/03/05 9390 18
82 일상/생각수줍수줍..이런걸 한번 해봤어요.. 23 얼그레이 15/09/29 8486 21
1065 정치/사회수준이하 언론에 지친 분들을 위해 추천하는 대안언론들 20 샨르우르파 21/03/03 8273 24
174 일상/생각수업시간 추억 한 폭 7 기아트윈스 16/03/26 5471 31
832 일상/생각수신의 어려움 7 化神 19/07/16 5185 15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2304 20
488 일상/생각수박이는 요새 무엇을 어떻게 먹었나 -完 26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8/07 6461 18
62 과학쇠똥구리곤충의 GPS, 밀키웨이 13 눈부심 15/08/26 8001 0
369 역사솔까 절세미남 자랑 좀 하겠습니다 31 파란아게하 17/02/18 8732 15
1208 일상/생각손절의 시대 24 nothing 22/06/01 5842 52
261 철학/종교손오공과 프로도 배긴스 32 기아트윈스 16/09/04 8444 18
1125 일상/생각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27 Regenbogen 21/09/09 5397 47
1121 일상/생각손님들#1 7 Regenbogen 21/08/25 4073 31
1031 체육/스포츠손기정평화마라톤 첫풀코스 도전기 12 오디너리안 20/11/17 4155 22
989 여행속초, 강릉 여행 가볍게(?) 정리 36 수영 20/07/27 5760 9
1371 일상/생각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1984 20
75 기타소주 이야기 20 모모스 15/09/23 6399 2
1107 기타소우주를 여행하는 아미를 위한 안내서: 2 7 순수한글닉 21/07/21 3467 11
1106 기타소우주를 여행하는 아미를 위한 안내서 : 1 22 순수한글닉 21/07/16 4594 21
1375 창작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5 Jargon 24/03/06 2064 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