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5/11/14 23:13:06
Name   nickyo
Subject   11.14 후기입니다


1. 저는 2시 반부터 마로니에 공원의 학생/청년 집회행사 후 종로와 청계천로를 따라 이동, 종각을 지나 광화문 광장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이때가 약 5시였습니다.

2. 약 5시경 광화문은 차벽으로 막혀있었고,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유가족 천막은 고립되어있었으며, 광화문 광장을 시각적으로 볼 방법은 전무했습니다. 집회의 의미가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고 그로 인해 현장의 참여도 생기는 것인데.. 차벽에 갖힌 사람들은 애완동물도 아니고... 집회의 효과를 낮추는 집회 탄압은 해서는 안되는 범법행위입니다.


3. 10/15일 광화문광장에 집회신고를 했으나 반려가 되었고, 이는 집회신고제 국가에서 '심각하고도 중대해서 정말 어쩔 수 없는'게 아니라면 허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열어 주는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허가 되었고, 대신 주요 도로는 신고되어 개방했습니다. 이를 공중에서 보니, 광화문을 둘러싼 폭도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분산되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정말 효과적으로 경찰병력이 진압하기 편안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신고제 국가에서는 설령 미신고 집회라 할 지라도 심대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폭력적인 소요가 아닌 이상에야 경찰이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고 시민과 시위자들간에 일어나는 불길한 사고나 불필요한 소요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것이 본래의 '의의'라고 알고있습니다. 물론, 해석을 다르게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4. 민중 총궐기의 의제중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는 정권퇴진/양심수석방의 경우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시에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수 있는'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즉, 거기에 나온 사람들은 박근혜는 민주적 수단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퇴진구호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이석기같은 사람의 양심수 석방에 대해서도 께름칙해하는 사람도 있으며, 국정원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필요악이라는 주장과 국보법에 대한 '악법은 법이다'라는 자세를 가진사람들 역시 다 나와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함께하는 이유는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기본권이기 때문이며, 가장 큰 화두였던 '노동개악/국정교과서' 저지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참여하면 그런 구호에도 '동의하는'것처럼 여겨지게 되겠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노동개악/국정교과서'역시 동의하는 것처럼 되는것 같다는 생각에 저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각자의 마음속에는 다들 반대와 찬성이 있겠지만, 마음속에 있는 건 마음에 있는거지 현실에 있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저는 대오의 거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약 세 군데의 전선을 돌았습니다. 제가 조직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죠. 제가 봤을때 폭력시위라고 부를 만한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단 경찰과 무기가 닿을 거리 자체도 아니었고(차벽이 한겹내지 두겹), 광화문까지 평화행진을 처음부터 요구했었기 때문에 대부분 선두투쟁(물대포 맞는 분들)도 거의 맨손이었습니다. 조리깨 같은걸로 버스 창문을깨고, 밧줄을 걸어서 차를 뺀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한테 쓰는 최루액과 최루가스(저는 최루 가스는 처음경험해봤습니다)는 정당하고, 집회를 방해하고 차로 둘러싸 집회의 효과를 없애버리는 집회탄압도구를 부수는 것은 '폭력'이라고 하는게 정당한지는 각자가 생각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게 정당하지 않다는 쪽의 편을 들겠습니다. 제가 오히려 열받았던 것은, 경찰버스안에 경찰들을 태워놓은 것이었습니다. 차벽을 설치해두고 거기에 경찰들을 넣어두는게 대체.....마치 차벽을 무너뜨리다가 뭐 하나 사고라도 나길 바랬던건지.. 사회가 폭력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그리고 어떻게 다루기 좋은지)를 정말 잘 아는 만큼.. 경찰들이 위험에 빠져도 그런식으로 작전명령을 내린다는게 화가 나더군요. 게다가 최루액을 마구 난사하니 경찰들 머리위에도 떨어져서 경찰분들도 많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나쁜 정책을 던져두고 호위호식하는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있는데.. 우린 대체 어떡해야하나. 그게 화가나고, 슬펐습니다.


6. 물론 제가 보지 못한 곳들에 엄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들은 것은 새총을 쥔 사람, 각목을 든 사람,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인 사람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10만명이 모인 집회에서 단 한가지의 소요도 없을 수는 없다는 것도 하나의 생각이며.. 적어도 그 숫자에 비해 그러한 행위가 벌어지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집회가 워낙 많은 조직/시민들의 연대 때문에 시위측 진영에 사복 채증/ 사복 프락치가 있음에도 거의 구별해 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프락치가 없었다고 믿고싶지만.. 귿쎄요. 그건 가장 전통적인 전략이었고, 지금이 가장 그런 전략을 '눈치 안보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해도 되면, 하는게 사람이라고들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7. 몇몇 외국인들은 제 짧은 영어실력으로 들었을 때, '남한은 민주국가 아니였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맨손인것같은데 저 차랑 벽은 왜저러냐? 저기서 쏘는건 대체 뭐냐?' 같은 질문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놀랐고, 저는 엄청 쪽팔렸습니다. 시위대에는 일본 평화헌법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운동가들도 있었는데, 시위 진압의 선진문물을 경험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 같습니다.


8. 며칠 전 11.14 홍보를 하면서 세련되지 못하게 왜 그러냐는 지적을 받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집행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상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러나 시민 모두는 정치적이며, 정치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기구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큰 위기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민주주의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며, 국가라는 개체가 국민의 민주적 토대가 없다면 어떤 허구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저는 여전히 이러한 방식의 행동을 지지합니다. 시민민주주의의 평화시위는 사실 이 의사표현을 얼마나 의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만, 현재 대의민주주의가 그러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으로 일으키는 소요 역시 우리에게 더 나은 지평을 선사하지는 못할 것 같은게, 만약 시민들이 정말로 폭력적인 소요를 일으킨다면 물대포는 총포가 되고, 많은 방관자들은 그에 박수를 보내겠죠. 결국 어떠한 대안을 민주정 내에서 고려하느냐가 문제인데, 구체적인 대안도 구체적 대안의 실천도 없이 그건 좀 아닌데 하는 것은 '이거 해봤자 뭐 되겠냐'하는 것보다 더 무기력한 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투표로 뭔갈 바꿀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믿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그게 더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9. 차벽은 위헌이지만 시위대를 막기위해서는 사용되어도 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위헌의 근거는 '시민을 방해' 하는 것이고, '시위대'를 막는 것은 사용되어도 된다는 것인데.. 당장 오늘 맨 앞에서 광화문으로 길 열으라고 구호외치고 노래부르던 사람들과.. 차 벽에 스티커 붙이면서 각자의 쟁점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물대포가 쏟아지고, 이에 시위대가 밧줄을 꺼내고 차 창문을 부수고.. 그러자 밧줄 쪽으로 최루액과 최루가스가 터졌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랬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시위를 그냥 구경하듯이 보다가 이내 '저걸 왜 사람한테 뿌려'하는 분들이 늘어났고, 몇몇 분들은 그 과정을 보며 화가 나셨는지 밧줄에 달려들어 차를 끌어내려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분들이 '시민'인지, '시위대'인지, 혹은 그 '시위대'에 있는 사람이 어째서 '시민'이 아닌건지.. 광화문을 거쳐 서울시청으로 간다는 도보행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길래 이렇게 차벽과 최루액으로 막아야 했던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10. 청와대로! 하는 구호는 자주 나오는 구호입니다만, 여기 나온 사람중에 진짜 청와대 밟았다가 총 맞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친구에게 너 죽여버린다 했다고 살인미수로 고소하지는 않는데.. 그렇습니다. 만의 하나를 대비한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진짜 청와대에 목숨을 걸고 가는 거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금 이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반증은 아닐까요. 적어도 제가 있던 곳에서 본 사람들은 그냥 주말에 쉬고싶고, 술 한잔 하며 친구랑 놀고도 싶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총 맞고 싶어 안달난게 아니라면, 청와대로 가겠다는 걸음걸이가 생각처럼 '폭도새끼들 선동당했네'해서 나올만한 행위는 아닙니다. 당장 물대포 최루액만 맞아도 대오가 많이 밀리는데.. 대체 청와대로 갔다간 무슨 청와대를 불태우기라도 할 것 처럼 이야기하는 시각에...그게 과연 현실적인건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 구호가 부적절 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11. 저는.. 오늘 그 자리에 머리수를 채울 뿐인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모든 쟁점에 동의한 것도 아니지만. 모든 쟁점이 일치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우며 모든 것이 세련된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심지어 지금보다 더 유효하다면. 제발 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서 최루액을 먹고, 좋아서 경찰한테 맞고, 좋아서 거기서 죄 없는 경찰들과 욕하고, 좋아서 비맞아가며 하는거 아닌데... 이번에 이렇게 10만명 모인다고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민주노총이고 전국농민이고 다 모인다니까 일주일 내내 뉴스로 다뤄줍니다. '세련되고 평화롭던' 몇 만명의 개별 시민이 나오던거 있는줄도 몰랐던 사회에서... 대체 그 세련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이 방법이.. 우리가 광화문에 도달했다면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것이었는가 하면 그게 아니라는 점 역시 동의합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 사람들의 의사를 얼마나 반영해 주느냐가..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민주노총이 그렇게 미움받아도, 결국 저 자리에서 물대포 제일 먼저 맞는 사람도 그들이었고, 불법 채증, 연행에 항의해주고 고등학생, 할아버지, 여성 연행당했을때 변호사 접견권 확보하고 일일히 '민주노조소속'이 아닌데도 도움주려고 하나하나 뛰어다니고.. 심지어 평소에도 법률원을 따로 개설해서 노동관련 문제를 겪는 이들을 조합원 비조합원 가리지 않고 상담해주고.. 그나마 비정규직이랑 연대해보려고하고 일반사회노조 만들어서 소속이 불확실한 일용직 근로자 분들 보호해보려고 애쓰고... 경찰은 95%이상 좋은 일을 하니까 실드를 받는데, 민주노조는 이렇게 좋은일을 죽어라해도 여전히 별로 인식이 좋지 않은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노조하면 빨갱이 폭도처럼 사람들이 생각하고... 가장 앞에서 싸운다는게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건가 싶어서 좀 슬펐습니다.




12. 아마 이걸로 무엇이 해결되겠느냐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잘 될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그저 포기하며 사는게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방식은 아닐꺼라는 믿음이 약간 있고...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니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늘의 모든 쟁점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각자가 동의하는 공통쟁점이 있고, 그들의 '말할 권리' 그들의 '시위할 권리' 그들의 '집회할 권리'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만하는 '자유로운 양심'과 '노동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함께 거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걸 읽고서도 '그래봐야 덜떨어진 폭도새끼들이지' 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계시겠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민주주의 겠죠. 서로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서로에 의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을 때 적어도 이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도 그 혜택을 누릴거라는 점에서.. 조금은 관용적으로 봐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만 줄입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1-25 19:4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5151 34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325 33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965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200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2316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189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821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123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131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412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283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619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266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66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92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612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89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845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77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3028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2012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270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2079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287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841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