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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25 13:42:56
Name   YORDLE ONE
Subject   아버지의 다리가 아픈 이유는
저는 예전에 PGR21이란 커뮤니티에(??..) 아버지의 심장수술을 소재로 글을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고 과분한 격려를 받으며 추게로 올라갔던걸 보며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그정도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이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2년만에 다시 근황을 공유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홍차넷 자유게시판 첫 글이 되겠네요.
편의를 위해 평어체로 작성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읽기 전에 조심하시고...

――――――――――――――

지금부터 약 2년하고 몇 개월 전에 아버지의 가슴이 열렸다. 지금 이 지경에 와서도 둘만 있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아들내미를 향한 마음을 활짝 열었다는 뜻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가슴을 세로로 열고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수술은 아버지가 받은 두 번째 심장 수술이었다. 지금 아버지의 바싹 마른 가슴에는 커다란 수술 흉터가 두 줄 그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 편한 쪽으로 멋대로 기울어버리는 불균형 저울 같은 구석이 있다고 느끼곤 한다.

거금을 들여 그 큰 수술을 받았고, 몇개월에 걸쳐 건강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 무슨 도인 같은 삶을 살고, 그런 건강한 생활을 했으니 이젠 괜찮겠지. 앞으로 건강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고생을 하고 수술도 잘 끝났다고 했는데 다 나았겠지. 이렇게 돈이 많이 들었는데 다 나았겠지. 생활에 지장이 없어 보이는 걸 보니 다 나은거겠지.

의심하지 않기로 했고 실제로 의심하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함이 가슴속에서 일렁이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내 일도 바쁘고 아직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증거도 없는 불안함 때문에 쉴 새 없이 닥쳐오는 야근, 주말출근, 철야 속에서 아버지의 건강이 완전히 돌아왔다고 믿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살아가는 완벽주의자는 우리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요즘 건강 괜찮으시냐고 지나가듯 툭 물어본 말에, 자식들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응 아주 괜찮어. 라고 대답하는 당신의 말을 어떻게 의심하고 병원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아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버지는 약 다섯 달 전부터 다리가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주무실 때 출근하고 아버지가 주무실때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고 소통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당시 석 달간 주말/휴일 포함하여 1일 평균 14시간 10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살인적인 강행군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직이네 퇴직이네 이 바닥을 뜨네 마네 고민에 한창 시달리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내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사내연애는 이상한 쪽으로 파국을 맞이하질 않나, 믿고 따르던 사수는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회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난리를 피우질 않나,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고 사는데 그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느낌이 들자 내 인생마저도 실패한 기분이 들었고, 내 인생에 행복이란 게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을 무렵,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아버지가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돌아다니는데, 원인을 못 찾고 엑스레이만 계속 찍느라 심통만 잔뜩 났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리가 아프다는 사람을 병원 여러 곳에서 장비를 사용해서 검사했는데 원인을 못 찾았다고 하면, 사람은 얄궂게도 병원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의심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야 깊은 후회 중이지만 당시엔 나는 사람을 의심하는 선택을 했다. 아니 병원에서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데 왜 자꾸 아프다고 하시는 거지? 난 일단 어머니랑 같이 다른 병원도 가보시라는 말만을 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나는 휴직을 하게 된다. 너무 힘들어서 일 더 못하겠다고 높으신 분께 말씀드렸더니 일단 한 달 쉬고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하길래 한달간 무급휴직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무급인게 기분이 나쁘지만 휴직을 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짧았지만 즐거웠던 시간.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가 비틀비틀 일어나 나를 깨우셨다. 병원에 가자고. 너무 아프다고. 식은땀에 전신이 젖어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아 뭔가 잘못됐구나. 라는걸 깨닫고는 다시 119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예전에 아버지가 수술을 받았던 그 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

아버지는 너무 아픈 나머지 끊었던 소주를 병째로 마시고 전신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아버지의 병세에 약간 의심을 하고 있었던 나는 아무리 그래도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을 줬던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하셨다. 아버지는 진통제를 주사로 몇 번이나 맞고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며 응급실 의사들에게 마구 화를 냈다. 아버지는 동네 병원에서 비타민 주사를 맞으면 좀 낫더라면서 진통제 다 소용없다는 진통제 무용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뾰족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아픈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다리는 왜 아픈 것일까.

계속 다리가 아프다고 하던 아버지는 동네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으니 좀 나아지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긴커녕 잘 걷지도 못하게 되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누운 자리에서 변을 지리고, 소변을 흘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 같다. 한의원의 의사 양반과 상담을 해보았다.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는 계속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대소변을 자각도 없이 흘리는 건 왜 그런 걸까요 라고 물어보니, 다리가 아프니 계속 누워 있기만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하지의 근육이 약해져서 그럴 수 있다고 하였다. 장기적으로는 환자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하루 10분에서 30분 정도는 반드시 가벼운 걸음을 걸어야 한다고 미소를 띈 얼굴로 말해주길래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아버지의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노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한 줄 알았던 것이다. 바람 선선한 가을날에 택시에서 내려 2층에 있는 한의원에 올라가는 동안 전신이 비지땀에 흠뻑 젖는 것이, 운동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믿어버린 이유가 뭘까?

어머니의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당시 우리 집의 최대 이슈는 다리가 아픈 아버지가 아니라, 5년째 허리수술의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계신 어머니의 허리 재수술이었다. 어머니의 허리는 남이 보기에도 부자연스럽게 휘어있었으며, 어그러진 보정물이 등을 통해 그 윤곽을 드러낼정도였으니 그 고통이 이루 말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의 허리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해당 병원에서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망연자실 아픈 허리를 안고 5년이란 세월을 보내왔다. 너무나 아플때마다 찾아간 모든 척추전문병원이 다른 병원에서 이미 해버린 척추 보정물을 건드려 좋게 만들어드릴 자신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었다.

우린 이 수술 못해드린다는 말을 스무번 정도 듣게 될 무렵 어머니는 모든걸 포기하고 그냥 진통제만 처방받으면서 생활하겠다며 항복선언을 하셨지만, 마침 그 다음날 JTBC에서 척추수술 전문가로 보도된 어떤 의사의 뉴스가 방영되었고, 어머니께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 의사를 찾아가 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의료진은 이 수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를 처음으로 듣는데 성공하였다. 의사가 너무도 자신감있고, 시크하게 "어머니보다 서른살은 더 드신 할머니들 허리도 다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이정돈 별거 아니에요" 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도리어 이 의사를 의심하셨고, 허리 수술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란걸 충분히 겪은 어머니가 망설임에 빠지는 모습을 본 우리 가족들 모두가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설득하였고,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참이었다. 그 의사는 내가 병원에서 만났던 교수 중에 가장 패기넘치는 상남자였고 앞으로도 그런 의사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어찌되었든 우리 가족이 어머니의 허리 재수술을 받자는 결단을 내린 것이 바로 그 즈음이다.

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해 봅시다! 라는 의욕으로 가득하던 그 순간까지도 아버지의 다리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수술 일정을 조율하던 어머니는 그, 패기넘치는 의사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제가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되면 남편 간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는 상담을 했더니 패기의 의사는 증상이 뭔가 이상하다면서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보자며 모시고 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병원놈들은 다 사기꾼이라는 지론을 갖게 되신 아버지께서 그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날이 왔다. 일단 입원을 하고, MRI를 촬영하고, 조형제를 사용한 후 사진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다시 촬영했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나왔다. 까맣고 하얀 척추와 골반이 보이는 모노톤의 전신사진에서, 까맣게 칠해진 꼬리뼈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가리키면서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이 까만게 종양입니다.

종양에는 악성 종양과 양성 종양이라는 것이 있는데, 양성 종양은 수술을 통해 제거할 수 있고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종양을 말한다. 그리고 악성 종양은 쉽게 말해서 암이다. 라는 내용의 설명을 들려준 후 의사가 덤덤히 덧붙였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좀 더 검사를 해봐야합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악성일 확률이 높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대답하고 상담이 끝났다.

몇번에 걸친 검사로 아버지의 증세는 점점 명확해져갔다. 보통 장기에서 증식하는 암세포가 여기저기 전이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면 등뼈로 옮겨가고, 뼈로 옮겨간 암세포는 신경을 자극하며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고 한다. 문제는 아버지의 장기 어느곳에서 암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암세포는 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 잔뜩 도사리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말했다.

아버지의 다리 통증의 원인은 꼬리뼈의 종양입니다. 종양이 신경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통증이 생기고, 요의나 변의를 느끼지 못하고 바로 배설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신에 손쓰기 어려울정도로 암세포가 퍼져있고 아버님께 남은 수명은 3개월에서 길면 반년 정도로 추측이 됩니다.

물론 대본처럼 그대로 저렇게 말한건 아닌데 대충 저런 내용이었다. 보호자가 보는 의사는 소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때론 적극적이다. 그리고 가차없다. 통보받은 내용의 황당함보다 유사 사형선고를 이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너무 신기해보였다.

아버지를 병실에 눕혀두고 가족들이 복도에 모여 한참 궁리를 했다.
이미 늦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혹시 모르니 항암치료를 해보느냐.
항암치료를 해도 살 가망이 없다고 한다면 최대한 고통 없이 여생을 보내게 해 드릴 것인가?
본인의 의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들 어물어물 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의 의지는 확고하셨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정! 이것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로.
아버지의 뜻을 물어봐야하지 않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왔으나 어머니의 의지는 굳건했다.

본인 뜻이고 나발이고 항암치료 못해. 안해. 그냥 최대한 덜 아프게 해드려. 그리고 본인에겐 아직 말하지 말고. 내가 얘기할거니까.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은 도저히 글로 옮기기가 어렵다.


간병은 힘든 일이다.

정신과 육체가 평등하게 힘들다. 특히 내게 소중한 사람을 간병할땐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내가 힘든게 문제가 아니다. 환자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고통이 시작되는 것을 이번 기회에 직접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보호자 필수 + 낙상주의 딱지가 붙은 중환자 아버지를 간병하게 되었던 시기를 떠올려본다.

간병하며 겪었던 일 중에 가장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바로 대장내시경을 위한 장세척을 할 때였다.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무슨 가루약을 물에 타서 몇번에 걸쳐 나눠마셨는데, 이게 장세척을 위한 약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면 지랄맞게 맛없다던 약이다. 간호사는 이렇게 장세척제를 꿀꺽꿀꺽 잘 마시는 환자는 처음 본다고 칭찬해주었는데 나나 아버지나 별 위로는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장세척의 결과물은 결국 괄약근 밖으로 배출되기 마련인데 문제는 아버지는 변기에 앉아있을 수 없는 몸이셨다는 점이다. 뱃속에서 녹아 나오는 설사를 침대에 누운채로 고스란히 다 쏟아내게 되었다. 장세척은 예상 분량의 약을 다 마실때까지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나는 밤을 꼬박 새면서 기저귀를 계속 갈았다. 약간 우스갯소리로 가족들에겐 나나 아버지나 완전 똥범벅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면 나나 아버지의 처지가 좀 더 희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느껴질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효과는 미미했다.

당시에는 손이나 옷, 침대시트가 더러워지는 걸 치우는것도 힘들었지만 (어차피 다 안쌌는데 한번에 치우지 뭐! 라며 더럽게 놔두기가 참 마음이 그래서 계속 치우고 또 치우고 그랬다),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감내했을지가 너무 걱정됐었다. 새벽에는 내가 아버지를 봐드리고 아침에는 어머니가 오셔서 교대를 하였는데, 어머니가 오실때까지도 장세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장세척제 추가분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서 잠자던 나는 아버지께서 무사히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데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하였다.

며칠 후 아버지의 종양범벅 꼬리뼈를 잘라내고 그 위치에 꼬리뼈와 유사한 보정물을 넣은 후 그것을 주변 골반과 이어붙이는 수술이 실시되었다. 8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주 산뜻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나 손을 흔드셨다. 그렇게도 괴롭던 다리 통증이 이제 사라지셨다고 했다. 다리도 잘 움직인다고 했고, 요근래 보았던 표정중에 가장 상쾌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내 얼굴도 안도감에 큰 웃음을 되찾았던 시간이었다.

그 안도의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별도로 의사와 면담을 했는데, 아버지의 꼬리뼈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주변 신경을 잘라내야했기 때문에 앞으로 영원히 요의/변의를 느끼지 못하실 거라는 내용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계속 소변줄을 연결해두어야 하고, 기저귀를 평생 차고 다니셔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에 따르면 대장에도 암세포가 가득하고, 이러저러해서 아무튼 남은 수명은 3개월로 예상된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입원치료에는 돈이 든다. 어머니는 예의 패기넘치는 의사에게 다시 상담을 신청했다. 아버지의 국가유공자 자격을 이용하여 보훈병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의사는 물론 가능하며, 필요한 모든것을 준비해드리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보훈병원으로 입원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예전 병원에서의 진료기록을 제출하였으나, 현재 상황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보훈병원에서는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등 이런저런 검사를 다시 처음부터 진행하였다. 그리고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담당교수로부터 더 이상 이 병동에서는 해드릴 수 있는게 없으니, 호스피스 병동으로 자리를 옮기시는게 어떻냐는 상담을 하였다.

호스피스 병동이란 무엇인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들어가는 곳. 치료를 하기보다는 통증관리 위주로 관리하는 곳이라고 했다. 단순히 말하면 현대의학으로 병을 완치시킬 수단이 없어 의사들이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이 인정된 환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호스피스로 옮길땐 환자 본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훈병원으로 아버지가 전원할 무렵 어머니도 예정했었던 대수술을 받았다. 이 무렵 어머니의 간병도 함께해야했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쪽 간병을 위한 간병인을 고용하게 되었다. 아버지쪽은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가족들이 로테이션으로 어머니의 간병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받은 수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척추에 박혀있던 망가진 보정물을 다 분리해 뜯어내고
2. 보정물을 걷어낸 척추에 새로운 보정물을 끼워넣어 구부러진 척추를 바로 잡고
3. 그 후 온갖 보정물로 척추를 지탱

하는 수술이었다. 구부러진 허리를 바로 펴고 지옥같은 통증이 사라지는 대신 평생 서구식 생활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제약이 붙었다. 이 수술은 14시간이 넘게 걸렸고, 수술을 받고 나온 어머니는 내가 생전 보지도 못했던 할아버지를 찾으며 고통스러워 하셨다.
서글픈건 그 수술로 끝이 아니라 며칠 후 다시 재수술을 해서 마무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여태것 허리를 여는 수술을 네번이나 받았던 어머니도 이번 수술은 역대급으로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하셨다.

어머니 간병을 하던 새벽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저쪽 병원에서 아버지를 호스피스로 옮기라더라. 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고통으로 잠못이루던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아버지에겐 네가 말해' 라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엔 당신께서 말씀하신다 해놓고 이러기가 어딨냐! 라며 내가 화를 ... 내진 않았다.

사실은 나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역할은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당신이 암이라는 사실과, 너무 늦어 낫지 못한다는 사실과, 호스피스로 옮겨야한다는 사실을 통보하는 마무리 투수로 나의 등판이 내정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의 전원을 신청하기에 앞서 담당교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정말로 할 수 있는게 없는건지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의사는 내가 면담 예약한 시간에 찾아오자 별 말 없이 일단 모니터를 켜서 사진을 보여줬다.
회색빛의 얼룩덜룩한 내장처럼보이는게 꾸물럭꾸물럭 움직이는 슬라이드가 보였다.
간 사진입니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의사는, 거기 회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암세포에요. 라는 말을 했다.
이거요? 전부 다요? 어이가 없어서 대답했다. 다 회색이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대답했다. 예. 간이 암세포로 뒤덮여있어요.
이 슬라이드가 원래 회색바탕인건 아닌가보네. 라고 생각하며 끄덕거렸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아버지는 지금 암 몇단계인가요? 전 잘 모르지만 암도 단계가 있다면서요? 1단계, 2단계.. 이렇게.
의사가 대답했다. 4단계요.
아만자에서 봤다. 4단계는 암 말기라고.
의사는 계속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으시기 위한 체력이 부족하십니다. 이대로는 치료받다가 돌아가실거에요.

그 후 의사는 나에게 호스피스가 시한부 환자에게 병동보다 좋은 이유를 이것저것 설명했다.
좀 더 조용하고 한적하다. 임종실이 있다. 응급환자가 왔다갔다 하는 병동은 환자가 마음편히 있기 좋은 곳이 아니다. blabla

더 얘기하기도 싫은 기분이 되서 인사하고 밖으로 나와 병실로 돌아왔다.
아버지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뭔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면담을 하고 온 내가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으니, 우리 나갈까? 라고 말씀하시곤, 산책나가자면서 휠체어를 갖다달라고 헀다. 간병인을 잠시 다른곳에 보내고 아버지와 나의 긴 산책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흡연하는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에 휠체어를 세우고, 담배에 불을 붙일 때쯤 나는 얘기했다.

아빠. 나 아빠한테 해줄 말이 있어. 아빠가 의사랑 이야기하고 맨날 무슨 얘기 했는지 안알려준다고 화냈었잖아. 그거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서 미안해. 그런데 아빠한테 미리 말해주기엔 너무 믿기 싫은 결과라서, 검사를 다시 한번 하자고 했어. 그래서 이번 주에 결과가 나왔어. 이제 아빠에게 솔직히 말해주려고 해. 까지 말하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아빠. 아빠 몸이 많이 안좋대.

어디가 안좋대?

간이 안좋대. 많이

뭐라디?

아빠.

정작 중요한 말을 앞두고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난 아직 낮에 있었던 이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글썽거린다.

정말정말 힘들게, 아빠 간암이래. 말기래. 라는 말을 소근거리고 나니 여태까지 간병하면서 한번도 터지지 않았던 눈물이 펑펑 흘러나와서 도저히 말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가족들이 우려했던 어떤 나쁜 리액션도 보이지 않았다. 난동도 피우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집에 가자고 조르지도 않았고, 깊게 낙담하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담배만 피우고 있다가 이렇게 두마디 툭 물어본게 다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래? 상태가 그렇게 안좋대?

우느라 정신없어서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버지 체력이 항암치료를 버틸 수가 없어서, 병동에 계속 있어도 할 수 있는게 없으니 호스피스로 가라고 병원측에서 이야기가 나왔다는 내용의 대답을 해줬던 것 같다.

거기 가면 죽는거 기다리는거 아니냐?

난 고개숙인채로 끄덕끄덕거렸다. 아버지는 그 이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내가 막 울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임마 니가 뭐가 미안해. 라고 말하곤 손을 다시 거둬들이곤 한마디 더 했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내 머리 쓰다듬어준건 의무교육 시작하기 전이 마지막이었는데 이렇게 20년이 지난 후에 이런 일로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게 되다니.

아버지와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갑자기 아버지가 달고다니는 소변주머니에 빨간 기운이 짙어졌다. 소변에 피가 섞인게 분명했다.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알았다고 하곤 별다른 조치도 안해줬다.

간병인이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는 동안 나는 다른 병원에서 허리 수술 받고 누워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에게 다 이야기했다는 내용을 말하는데 이상하게 다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복도 창가에 걸터앉아 한참을 훌쩍거렸다. 전화를 받던 엄마도 목소리에 물기가 어리더니 나보고 어려운 일 해줘서 고맙다. 제발 기운을 내라. 나까지 눈물이 나잖느냐. 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 난 엄마한테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창밖만 봤다. 눈물이 도저히 그치질 않았다.

이렇게 말로 직접 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실거란 사실이.

병실로 돌아와서 누워있는 아버지 손을 잡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손아귀에 힘을 꽉 주면서 내 손을 잡았다. 한창때랑은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제법 묵직한 악력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코골면서 자다가 일어나다 하다가 속삭이듯이, 혼잣말하듯이, 허공을 보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마라.
죽는건 무섭지 않다.
월남전에서 사람 죽는걸 얼마나 많이 봤는데. 그런건 하나도 무섭지 않아.
괜찮다.

난 손등을 찰싹 때려주곤 침대 난간에 고개를 묻고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미안하단 말 밖에 왠지 나오질 않았다. 정말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계속 말했다. 미안해 아빠. 내가 미안해.

아버지는 다시 코웃음을 치더니 니가 왜 미안하냐고 하면서 씩 웃었다.
뼈밖에 없는 할배가 씩 웃는데도 그 모습이 눈이 부셔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두어시간을 더 그렇게 있다가, 간호사가 가져온 조직검사 동의서라는거에 사인을 하고, 명절때 못나온다는 간병인이랑 스케줄 조율을 좀 하고, 답답하다며 밖에 나가자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도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갔다.

그 후로 3개월가량이 지난 이 시점에, 아버지는 항상 잠만 주무시고 계신다. 하루의 20시간정도를 정신없이 잠에 빠져 보내고 계신다. 식사시간에는 잘 일어나서 식사도 하고 하시지만, 변이 나오지 않는다. 가끔 잠에서 깨어나면, 꿈속이랑 혼동을 하는지 이상한 말씀을 많이 하시기도 한다. 한때는 광증을 부리신 적도 있고, 멍하니 계시기도 한다.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고 나서 내가 간병하며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가 있다면 차차 정리해보고 싶다.

――――――――――――――

이 글은 여태까지 간병생활 시작하면서 비공개 블로그에 적어왔던 일기를 그러모아서 만든 글입니다.

대체 뭐하러 이런 글을 올리는겁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지도 모르겠네요.
불쾌한 느낌을 받으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암환자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잘 알아보고 싶다면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라는 웹툰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간병하는 보호자 침대에 누워 새벽 내내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으로 웹툰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고 평일엔 지방에서 일을 하고 주말엔 서울에서 간병을 하는 생활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매주 아버지를 뵐때마다 점점 야위어가는게 느껴집니다. 언젠간 '그' 날이 오겠죠.
각오한다 각오한다 이렇게 글로 써봤자 정작 그땐 어떻게 될지 가늠이 잘 안됩니다.

고리타분한 마무리지만 그래도 굳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후회됩니다. 효도합시다! 하하.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2-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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