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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04/23 11:56:07 |
Name | 풀잎 |
Subject | 엄마의 틀니 |
20대에 결혼해서 이민오면서 친정이랑 멀리 떨어져살고 저는 저대로 정착하느라 그러는 사이에 아버지사업도 안좋아지고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엄마는 혼자서 식당에서 일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하셨고요. 동생들은 서울에서 각자 자리도 겨우 잡느라 힘들게 살았구요. 엄마의 이는 제 기억으로는 엄마가 30세부터 거의 다 없어서, 어머니는 평생 틀니로 살고 계셨어요. 돈을 열심히 모으셔서, 지금은 고인이신 아빠(남편)한데 다 드리고 돈을 열심히 모으셔서, 남동생한테 도와주시고 돈을 열심히 모으셔서, 임대 아파트 보증금으로 쓰시고 그렇게 엄마의 이에 들어갈 돈은 늘 더 급한 일 하는 곳으로 쓰기 바쁘셨고 엄마는 이제 70이 되셨어요. 아직도 열심히 파트타임 일하시고 놀러도 다니시고 주윗분들도 챙기고 고향분들 아재 이모님들 챙기시면서 등산도 가시고 고스톱도 치러 다니십니다. 그런 씩씩하신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삶의 자세에서, 저도 참 많은 걸 배우는데요. 그 사이에 강산이 바뀌면서 저도 엄마보러 서너번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구요. 늘 엄마집 화장실에 있는 엄마의 틀니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어요. 보기 흉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엄마는 이때문에 참 고생하시네 엄마의 이는 왜 저렇게 되었나 싶기도하구요. 속상한 마음 애틋한 마음 우리엄마 입에서 그래도 없는 이를 대신해서 충실히 음식물을 분쇄해주는 고마운 틀니이기도 하구요. 틀니뺀 엄마의 웃는 모습에 "합죽이 할머니"라면서 놀리면서도 엄마랑 서로 민망해하면서 다시 틀니끼신 엄마 모습에 우리엄마 참 미인이시지~ 하기도 하구요. 그런 추억이 다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제 밥벌이도 하고 아이들도 대학갈 나이가 되었는데요. 천만원(만불) 모으기가 참 어려웠어요. 미국 생활이라는것이 늘 적자에 남편이랑 둘이서 아무 도움없이 일어서기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늘 적자에 크레딧카드 빚에 허덕이는 생활이었어요. 다행이도 우리 가족은 그래도 행복했고 중고차를 늘 사야했지만 오래오래 잘 타고 다녔어요. 캠핑도 다니고 중산층으로의 사다리를 타기위해서 애쓰면서 하루하루 가족모두 열심히 산것 같아요. 그런 시절을 겪고 겪어서 3-4년전부터 저한테 있는 용돈 쌈짓돈이라도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주식계좌도 들여다보고 하다보니, 어느날 401K 은퇴계좌에 있는 돈이 그대로 가만히 있다는것도 알게되어서 그 돈도 조금 투자하고 그렇게 3-4년이 흘렀어요. 다행히도 2-3년전쯤부터는 경제적으로 둘이 버니깐 많이 경제사정이 좋아졌어요. 이번에 환율이 좋을때 남편이 회사에서 받은 주식을 좀 팔 수 있게되었어요. 드디어 우리한테도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겼구나하면서 목돈이 생겼네요. 남편이 제일먼저한 일은 한국에 계시는 저희 친정어머니에게 천2백만원을 송금하는 일이었어요. 엄마 이 임플란트 하시라구요. 아랫니랑 윗니 모두 하시라고 했는데 윗니는 기술적으로 안되어서 아마 못하실듯해요. 엄마가 펑펑 울으셨어요. 열심히 열심히 사시고 늘 즐겁게 사셨지만, 이가 안좋아서 음식물을 잘 못 씹으시니깐 위에 병도 생기시고 체증도 많으시고 병원신세도 지시고 그러셨는데요. 주위에서 엄마 친구분들이 엄마한테 임플란트하면 되는데 왜 안해하시면서 엄마한테 지나가는 말씀을 하셨는데도 마음에 박히는 말에도, 가난하게 사시는 엄마는 본인 이를 위한 목돈은 이제 만드실 여력이 안되시니 속상해도 그냥 그런갑다 하면서 묵묵히 견디신거지요. 돈을 받으시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참 행복해하시고 사위가 최고다 딸이 최고다 그러셨어요. 그리고 바로 그 주에 치과에 예약을 하셨지요. 친구분들이 다행히도 좋은 분들이 참 많으셔서 소개받고 바로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하셨어요. 아뿔사, 코로나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이 시기에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하시면서 아무것도 못드시고 면역이 떨어지신 틈에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된통 고생을 하셨어요. 아프실때, 제가 참 후회가 많이 되었어요. 만약에 이랬더라면이라는 많은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자책을 하게되더라구요. 여행을 안가고 차라리 비행기 표값으로 엄마를 드렸어야 했는데 하면서요. 다행이도 이제는 회복하셔서 기운을 차리셨어요. 엄마의 임플란트 치료는 조금 더 미뤄졌지만 그래도 엄마는 또 고맙다고 그러시네요. 너무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결혼했다고 엄마를 제대로 못모시고 1년에 몇 번 용돈만 드리고 선물만 드리는 것으로 생색낸 제가 참 못났구나 싶었어요. 제가 많이 부족했구나 싶어요. 네 사실 제가 아직도 철없는 못난이같아요, 엄마도 좀 더 잘 챙기고 살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가 되어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용돈 드리고 이도 해 드릴 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더더욱 감사한건, 돈이 생기고 남편이, 엄마 이 해드리자 라는 말을 먼저 꺼내준거에요. 제가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대학갈 아이들 비용에 여러 우리집 경제사정에 엄마의 이까지 할 돈은 어렵지 않겠냐는 마음이어선지 늘 저는 제가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건 뒤로 미루거든요. 그랬는데 남편이 제 속맘을 알아차리고 이번에 엄마한테 돈 보내드리자고 바로 그날 돈을 부쳐주더라구요. 엄마가 임플란트 하시고 앞으로 위도 덜 아프시고 잘 씹으셔서 오래오래 재밌게 건강하게 사시면 참 좋겠습니다. 다음에 한국가면 엄마의 임플란트 이를 볼 수 있게 되겠지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5-03 08:3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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