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5/12/01 22:12:46
Name   nickyo
Subject   동국대 학생 48일 단식과 평화시위


단식,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보통 단식이라고 하면 곡기를 끊고 약간의 소금, 물만으로 연명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까지는 건강한 사람에게 큰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열흘이 지나기 시작하면 눈에띄게 신체 기능이 저하하며
한달이 넘는 단식은 회복이 어려운 후유증을 남긴다고 할 만큼 심각한 자해행위라고 볼 수 있다.


폭력시위, 정확히는 '무력에 의한 불법시위'가 대중에 의해 거세되면서
단식과 1인시위는 예전에 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가장 평화적이고 가장 마지막의 방법이 되었다.
내 요구를 관철시키기위해(보통은 그 요구의 상대가 이미 자신을 폭력적인 탄압 하에 두는 편이지만) 상대에게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아닌
'내가 목숨을 걸고 있소.' 라는 의미로, 자신에게 그 폭력성을 온전히 가두어 몸을 깎아 말을 하는 셈이다.


현재 동국대에서는 일면 이사장 스님과 보광 총장 스님을 상대로 장기 단식투쟁이 진행중이다.
48일이라는 시간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당신의 11월을 전부 뒤로 돌리고, 10월의 중순도 전이었던
날씨가 따뜻하고 단풍이 지기도 전인 그 어느 날부터 곡기를 끊는다는 것은..
그 이후에 벌어졌던, 당신에게 있었던 10월의 절반과 11월이 누군가에게는
오로지 죽음을 각오로 본능에 저항해야만 했던.. 지극히 평화롭고 지극히 합법적인, 그러나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지독히도 폭력적이어야 했던 그 까마득한 시간을.


동국대학교의 이 상황은 비리와 관리부실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부 사정이 명명백백히 올라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이러한 것의 '명명백백'을 기다린다는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밝혀지는 내내 당신들의 악행에는 동의한다 와 별 반 다르지 않다.
언제나 '중립'과 '정의로움'은 그 단어가 갖는 환상의 역할을 통해 마치 사람을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보이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편에 서 있으며 올리는, 자기기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동국대에서는 48일간의 단식으로, 이제 다시는 장기손상 및 후유증에 대해 완전히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하며
정말 언제 죽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에 한 청년이 놓여있다. 그 까마득한 시간 앞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늘어난 건 몇백개의 좋아요와 살아요 ㅠㅠ 하는 이야기 뿐이다. 그나마 그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중 소수만이
그의 싸움을 함께하자고 하지만... 학교의 한 켠에 자리한 천막에는 누군가가 하루에 한걸음 한걸음 성큼성큼 죽음을 향해 걷건마는
평화롭지 않은가.


이제는 죽음이 너무나 일상적인 되어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은 평화로우라고 한다. 폭력과 불법은 언제나 안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평화로움은 사실 평화로운 것이 아니다. 그 평화로움으로 누군가의 좋아요를 얻고 누군가의 댓글을 얻은 꼴을 보자.
대체 뭐가 평화로워서 지지를 받아서 뭐가 바뀐다는 걸까? 좋아요가 늘어나면 이사장과 총장이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사과를 하고, 물러나겠다고 하는걸까? 평화로움을, 법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은 평화로운건가?
그 방법 말고는 효과적이라고 할 만한 전략조차 전부 말살당해버린, 그리고 그런 싸움들이 모두 좋아요와, 남의 싸움으로 해소되어버리는 지금은
어쩌면 평화로움을 요구하고 조용함을 요구하고 법을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 그건만으로도...누군가를 저렇게 몰아가게 되어버린건 아닐지 하는 쓰라림이 남는다.
48일을 굶어 뇌세포가 다 죽어나가고, 위와 장과 심장이 약해져서 한동안은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시키기조차 어렵고, 탱탱했던 피부와 살이올라 좋은 덩치였던 몸이
앙상해지고, 푸석해지고, 그 다부진 몸에서 삶의 기운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버리는 동안 지켰던 평화로움은
누구를 위한 평화였던걸까. 그렇게 죽어가지말고, 이런 취급을 당할거라면 차라리 건물을 때려부수고 총장실을 점거하는게
욕을 먹고 고소를 당해도, 죽어나가지는 않지 않느냐고. 그게 화가난다. 왜 저 사람에게는, 왜 저런 사람들이 싸울 수 있게 하지 못하는건지.
만약 그렇게 자기를 혹사하고 자기를 자해하며 사회의 룰에 맞춰 자신의 요구를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그렇게 한 만큼 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조명해주고 지지해주고 그 싸움에 대해 적어도 무게는 실려야 하는게
그게 이를테면 인지상정인 것은 아닌가싶다.



48일을 굶어버린 그를 지지한다. 그러나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경하던, 그를 도울 수 있었던 사람들 모두를 미워한다.
이렇게도 고독한 싸움이라는 것에,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보던 세상은 어느새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렸고
이젠 이런 것도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무심한 세상에서
어쩌면 평화로우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야말로
시끄럽게 굴지말고 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에 울적하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12-16 17:25)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0
  • 항상 어두운데 관심을 가져주셔서,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는 저를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요.
  • 친구가 느즈막히 동국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대략의 사건 개요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투쟁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 하...ㅠ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기타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65 31
1417 기타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44 31
1416 기타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16 20
1415 기타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45 18
1414 기타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36 36
1413 기타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60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61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8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22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80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19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47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84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601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43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10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90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90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790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63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2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1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84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3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54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