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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1/31 02:22:37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내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명절연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나는 돌이키고 싶지 않다.  기억을 더듬고 싶지 않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날이 지나갈수록 내 기억은 시나브로 날근날근거리며 닳아 떨어져 빈틈을 남기고 말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나는 그러기 전에 기록해야 하고, 기억이 무너져 내릴 때면 이 글을 찾아 읽고, 그리고 다시 널 기억해야 한다.
그게 나에게 네 평생을 선물해주고, 대신 내 영혼의 일부를 가지고 떠나간 너에 대한 예의일 터이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아침에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주저 앉았다.
광주에서 걸려온 이모의 전화는, 요 몇년 새 급격히 쇠약해진 이모부가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의사는 환자가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자식들을 불러 임종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라 말했다고 했다.

이모부는 항상 우리 가족에게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고향인 보성에 약국을 내고, 아내와 함께 반백년을 자리를 지켜온 분이었다.
자주 만나진 못하더라도 얼굴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지 않은 용돈을 쥐여주고,
가족모임에선 아무도 모를 때 먼저 계산을 해두고,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생색을 내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내 생물학적 부친인 홍사장의 외도가 발각되어 집안이 박살난 뒤,
갈곳 없는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이모부는 가족 여행에 우리를 불렀고 어떠한 종류의 자격지심도 들지 않도록 배려했다.
회사를 조퇴해가며 홀로 어린 처제의 고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해 빠이롯뜨 만년필을 선물한 신랑으로, 어머니는 이모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간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운행을 개시했다.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언질에도 이모부는 그날을 넘겼다.
고비를 넘어가나 싶자 장천공이 의심되는 바이탈 이상이 확인되었고, 연휴가 시작된 금요일 밤에 긴급수술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말과는 달리, 이모부는 그날 오후까지도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뒤에는 지병인 신장과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모든 굴곡은 연휴가 절반 넘게 지난 월요일에나 대강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착각이 들 때 즈음, 내게 안배된 고통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연휴 마지막 날 나와 어머니는 다른 친척들과의 점심 약속에 참석했다.

다미는 10년 전 슬개골 수술을 받은 이래로 달리기 어려운 몸이 되었고, 1년 전 즈음부터는 급격히 노쇠하여 걸음걸이도 불안정해져왔다.
어릴 때에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사람에게 몸을 붙이지 않으면 잠들지 않을 정도였지만, 몇년 전부터는 혼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침저녁으로 집앞 산책을 나가 용변을 보던 다미는, 이제 패드에 적용하여 수시로 뒷베란다에 나가 볼일을 봤다.
그리고 시나브로 뒷베란다에 바람을 쐬러 나가는 빈도는 높아져왔다.
나와 어머니는 의아해하면서도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고, 가끔은 빨리 들어올 것을 재촉하고, 때로는 열어주지 않았다.

먹성도 예전 같지 않아, 반년 전부터는 사료를 끊고 좋아하는 고기, 우유, 치즈만 먹기 시작했고,
한달 전 즈음부터는 원래 눈을 뒤집어가며 먹던 치즈조차 입맛이 돌 때에만 종종 먹었다.
하루 이틀 굶다가 가끔 컨디션이 좋을 때 끼니를 챙겨먹는 날들이 일상이 되어 갔다.
다미는 내가 시간의 흐름을 애써 외면한 사이 현저히 늙어가고 있었다.

점심 약속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다미는 드물게도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에서 떠나가는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언제나처럼 집 잘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갔고, 늦은 오후에야 커피를 마시고 들어오는 길에 헬스장을 들렀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다미는 한시도 앉거나 누울 생각 없이 쉼없이 집 안을 맴돌이하고 있었다.
먼저 집에 도착한 어머니의 말로는 좋아하는 방석 위에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듯 하여 녀석의 가슴팍을 들어올린 이후로,
무엇이 괴로운지 종종 켁켁대며 뒷베란다를 계속 오가고 있다고 했다.

다미가 무엇인가를 잘못 먹었을 때 켁켁대는 일은 종종 있었고, 뒷베란다를 오가는 주기는 최근 계속 짧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 또한 지나가는 한때의 컨디션이겠거니 하며, 내 방에 앉아 듄을 읽다가, 다미가 나가고 싶어할 때마다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런 시간이 서너시간 넘게 지속될 때 즈음, 나는 그제야 이상을 깨달았다.
다미는 뒷다리의 힘이 풀려 미끄러져 주저앉을 때까지도 맴돌이를 멈추지 않고 있었고,
잠시 앉아있다가도 기운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대로 다시 일어나 걸었다.

이제 그 시간은 나에게 현실적인 악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앉고 서기를 몇번 반복하던 녀석이 완전히 탈진하여 지쳐 누웠을 때, 나는 어머니와 둘러앉아 다미를 연신 쓰다듬었다.
괜찮아 라는 말은 다미를 향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자신과 그 말을 듣는 다른 가족을 향한 것처럼 들렸다.
급하게 검색한 글에서는, 심비대와 판막변형으로 인한 폐부종이 발생했을 때 이런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소형견들이 이러한 증상으로 짧은 생애를 마무리한다는 말도 덧붙었다.

집 인근의 2차 병원에서는 전화기 너머로, 일단 아이를 데려와야 진단과 처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보내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그때는 흘려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떤 의미로 말했던 것인지 나는 안다.

잠시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고, 헐떡대는 다미가 조금이라도 덜 괴롭길 바랐다.
그래서 옷을 챙겨입었고, 어머니가 조심스레 가슴팍이 눌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미를 안았다.

영하 18도를 기록하던 주차장에 내려갔을 때, 이중주차 때문에 어머니 차를 꺼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은 새벽 1시를 이미 넘어 차를 빼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다음 날은 평일이고, 앞차의 주인인 1층 남자는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하는 몸이었다.

급하게 카카오택시를 호출하고,
개를 태워도 되는지 묻기 위해 기사와 통화를 시도하고,
전화가 결국 연결되지 않은 채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할 즈음,
어머니는 다미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어머니는 지하주차장에서 4층 집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녀석을 안은 채 단숨에 달음박쳐 계단을 올랐다.
다미는 결국 죽어가고 있었다.

녀석이 매일 앉아있던 방석 위에 가장 좋아하는 깔개인 낡은 오리털 패딩을 깔고, 다미를 눕히고 색색대는 숨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는 평상시의 능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움직임을 보인 대가로 심각한 두통에 시달렸고,
나는 다미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길 바라며 패딩을 덮어 씌우면서, 연신 머리를 쓰다듬을 수 밖에 없었다.
괜찮다, 사랑한다, 괜찮다, 사랑한다, 전부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다미는 그 와중에 내게 마지막으로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어머니가 평생 겪어본 적 없는 두통에 괴로워하고,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다미는 죽어가고 있었다.
다미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더 이상 입밖으로 늘어진 혀조차 가누기 힘들어졌을 때, 나는 녀석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고도 십분 정도 다미는 지극히 가는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고, 나는 그걸 깨닫는 것이 늦었다.
그렇게 나는 녀석을 몇번이라도 더 쓰다듬어줄 기회를 스스로 날려보낸 것이다.

다미의 몸에서 맥동이 완전히 사라진 건 2023년 1월 25일 1시 47분 경이었다.
그날 오후까지도 나는 내가 그 날짜를 기억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밤중에 울음을 참으며 장례식장을 알아보았고, 외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 반려동물 화장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미는 평생을 좋아하던 오리털 패딩과 하얀 수건에 감싸인 채, 답답할 때마다 나가 놀던 뒷베란다 입구에 잠시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다미가 좋아하던 뒷베란다에 아예 내놓자고 했지만 그 추운 곳에 녀석을 혼자 둘 순 없었다.
나는 집안에서 사람이 죽어 임시로 보관할 때에는 가장 서늘한 곳에 두어야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몸이 지친 것과는 상관 없이 잠이 오지 않아, 나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 마셨다.

다미를 보내주러 가는 길에, 차안에서 나와 어머니는 다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무서워하는 병원에서 보내주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는 이야기,
기르던 개를 같은 증상으로 보낸 어머니의 친우가 장장 보름에 걸친 맴돌이와 안락사 결정에 지금까지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이야기,
며칠씩 고생하지 않고 떠나가서 잘 되었다는 이야기, 안락사를 고민하지 않게 해준 녀석이 언제나처럼 마지막까지 착했다는 이야기,
다미만큼 착하고 사람에게 잘 앵기는 강아지를 다시 만나기는 정말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 같은 것들.

나는 너무 울다보면 눈가에 소금기가 맺혀, 살이 헤지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는 것 또한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미는 그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착실히 패드 위에 설사를 했고, 모든 것이 끝나기 두어시간 쯤 전에는 미리 토했다.
그래서 다미는 흔한 오물조차 남기지 않았고, 장례식장 직원은 알콜과 물티슈로 염할 것이 별로 없었다.
다미는 내 품에 안겨 잠들던 때처럼 옆으로 선처럼 누워 평온해보였다.
작은 화장로로 들어간 다미는 한참을 타올랐고, 남은 유골은 한줌 남짓에 불과했다.
눈물 너머로 겨우 보이는 그 가루들 사이에,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하며 언제나 무조건적인 긍정을 보내주던 작은 영혼이 담겨있었다.

나는 녀석을 낯선 산에 흩뿌려 허공에 사라지게 할 수 없었고, 땅을 파 뼛가루를 묻기에는 땅이 단단히 얼어있었다.
그래서 지금 다미는 작은 도자기에 담겨, 노란색 천에 싸여, 우연히도 재작년 같은 날 찍었던 사진과 함께, 늘 누워있던 곳에 있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는 참을 수 없는 공허감에 휩싸여 그 앞에 고기를 잘게 썰어주고, 우유를 따라주며 지난 일주일을 보냈다.

내가 34년을 사는 동안, 다미는 17년 간 나와 함께 있었다.
다미가 없었던 17년이 지나고, 17년을 함께 하고, 이제 앞으로는 계속 녀석이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앞으로 나래비를 선 채 나를 기다리는 날들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차츰 다미를 잊어갈 것이다.
다미를 안을 적에 녀석이 나를 마주 안으며, 자신의 턱에 난 그 보드라운 털을 내 목에 부빌 때의 감촉과,
침대위에 버티고 서서는 컴퓨터 책상에 앉아있는 내게 안아달라고 보채며 앞발을 들어올리던 몸짓과,
한동안 목욕을 시키지 않았을 때 다미의 옆구리에 코를 박으면 나는 꼬순내와 녀석의 입냄새,
엉덩이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부분을 주물러 줄 때에 그 반응과 잠들었을 때 쌔근거리던 숨소리,
장판 위를 총총거리며 걸을 때 나던 그 발소리의 고유한 리듬까지도.

만약 이모부가 연휴 사이에 돌아가셨더라면, 나는 혼자 괴로워하다 주검이 되어버린 다미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 상상은 존재만으로도 내 횡격막을 갈비뼈째로 잡아뜯어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노무사 시험을 처음 떨어졌을 때 내 책상에 앉아있으면 창문 너머로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1년이라는 아까운 시간과 고통스러운 노력들, 전념하기 위해 끊어버린 모든 인간관계.
그 날들에 대신 들어찰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을 비용삼아, 나는 슬롯머신을 돌렸고 실패했다.
며칠 동안 위장에 술을 들이부으며 혼자 조용히 울부짖을 때, 다미는 언제나처럼 방문을 긁고, 들어와서는 안아달라고 보챘다.

수험실패, 군입대, 첫 실연, 마지막 실연, 지루한 법정 싸움과 계속되는 낙방.
그 모든 날들에 비집고 들어와 언제나 아무런 조건 없이 날 필요로 하고, 내 옆에 있었던 건 녀석 뿐이었다.
다미는 평생을 내게 주었고, 그 온기에 힘입어 나는 여기까지 버텨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녀석에게 영혼의 일부를 저당잡히는 건 공평한 거래다.
그러니 다미가 그것과 함께 죽어버린 것도, 내가 항상 녀석을 기억해야 하는 것도 합당할 수 밖에 없다.

며칠 동안 생각날 때마다 다미가 좋아했던 것과 싫어했던 것, 행동양식과 기준들을 떠올려 모아쓰고 있다.
더이상 많은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야 하고,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게 마지막까지 내게 꼬리를 흔들어준 우리 착한 멍멍이에게 해줄 수 있는, 내가 해야만 하는 몇 안되는 일이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2-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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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 거예요.
  •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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