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2/13 22:29:36
Name   아이솔
Subject   인생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이 나라에서 평범한 사람이 인생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뭘까요?

도박? 마약? 이런 건 어쨌거나 본인 의지로 시작된 거죠.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고. 지금 할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고 보통의 경우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조차 못하지만, 아주 약간의 불운 혹은 악의를 지닌 한 사람만 마주해도 가드 불능으로 인생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벼랑끝에 몰렸지만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그건 바로 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장치)와 자전거를 타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인사사고를 내는 순간 그렇게 됩니다.
이렇게요.
image



자동차를 타든, 오토바이를 타든, 화물차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교통사고로 대인피해가 발생하면 그것은 과실치상죄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등의 중과실이나 6주 이상의 중상이 아닌 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보험사를 통해서든 직접 해결하든 민사적 절차만 밟으면 그만입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1항에 의하여 종합보험에 가입되었을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종합보험이란? 의무보험인 책임보험은 대인피해에 대한 보장액이 현저히 적고 또 부상 정도에 따라 온전히 보장되지도 않기에, 대인배상을 무제한으로 하는 통칭 대인2를 따로 가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끔 보이는 책임보험만 가입한 운전자가 미쳤냐는 소리를 듣는 이유가 바로 이거죠.

책임보험은 보험사가 가입 거절을 할 수 없지만 종합보험은 그렇지 않기에, 오토바이 운전자의 경우(영업용은 특히 더) 종합보험을 어떻게 들고 유지할 것인지가 각자의 난점입니다.

자, 그렇다면 도로교통법상 엄연히 '차'로 분류되어 처벌도 동격으로 적용되는 자전거와 킥보드는 어떨까요?

[종합보험이 없습니다.]

없다구요. 정말이에요. 않이! 엇떧케 책임보험만 들고 운전을 할 수가 있어! 그러게요... 상품이 없는데 어떻게 가입해요...(조세호 짤)

그러므로 자전거나 킥보드는 사람을 콩하고 찧으면 바로 경찰조사 들어가서 싹싹 빌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다. 끝!



정확히는, 자전거에게는 일상생활책임보험이, 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장치에는 (D사를 제외하곤 보장내역이 매우 부실한) PM운전자보험이 그나마 보험상품으로 있습니다. 이거라도 가입해둬서 민사 합의를 마치면 형사 처벌은 상당히 감경이 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형사 면책이 되는 '종합보험'은 아닌 것이고, 그렇기에 민사 합의와 별도로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선 형사처벌불원서를 써달라 피해자에게 직접 읍소해야 합니다. 아님 전과 남는거고요 뭐... 아니 자동차는 형사합의금도 보험사에서 알아서 나가는데?

그러게 그걸 알면서 위험하게 누가 자전거나 킥보드 타고 사람 치래? 이런 속터지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아니, 보행자를 보호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1톤 짜리 고철덩이는 형사 면책이 되고 사보험도 빵빵한데 훨씬 허약한 애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어떻게 말해도 모순이잖아요. 그리고 이거 생각하면 할 말 많아지는데, 진단서는 그냥 아프다하면 2주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는건 그렇다 치고, 그걸 검찰이나 법원에서 아무 검증없이 인정합니다? (병원: 아니 사람이 아프다잔슴? 검찰: 아니 병원에서 사람이 아프다잔슴? 법원: 음 검찰이 낸 서륜데 거기서 검토 어련히 잘했겠잔슴?)

한마디로 자전거와 킥보드가 보이면 보험사기를 쳐라, 라고 국가에서 그냥 권장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저는 이렇게 밖에 정리가 안됩니다.


이것이 현 상황이므로, 자전거와 개인형 이동장치의 주행 수칙을 재정의합시다.

1. 누가 뭐라건 나는 자동차다, 최소한 오토바이다라는 마음을 갖고 주행을 하자. 법이 그렇단다.
2.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만큼은 절대로 치지 말자.
3. 뒤에 덤프트럭이 있지 않은 한 자전거도로보다 차도가 낫다. 가해자보단 피해자가 낫기 때문이다.
4. 차도 우측 주행은 규제가 아닌 권장사항이다. 인도에 사람이 많을 경우 무시하자. 차가 무섭다고 인도로 바짝 붙다 사람이라도 미끄러지면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5. 인도 겸용 자전거도로는 행정적 사기다. 아무것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차도로 못가게 하려는 명분일 뿐이다.
6. 하천변처럼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구분된 도로도 믿지 말자. 심지어 자전거도로에 그어진 중앙선도 법적으론 효력이 없다.
7. 차도 아닌게 왜 차도를 차지하냐고 지랄하는 차들에겐 뻐큐를 날리자. 니가 빵빵대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 ㅋㅋㅋ
8. 큰소리는 국산차 앞에서만 치고, 포르쉐 이상이 보이면 멀찌감치 피하자.
9. 숄더체크를 틈만 나면 하자. 99%의 사륜차는 나를 도로를 공유하는 존재로 존중하지 않는다.


더 미친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지난 2년여 생계는 전기자전거를 통한 배달이었습니다. 즉 영업용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그나마 있던 책임보험마저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B플랫폼은 시간제 영업배상책임보험이 운행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가입됩니다. 그런데 쌍벽을 이루는 C플랫폼은 작년 4월에서야 (의무가 아닌) 시간제 보험을 출시했는데, 직전 달 고속터미널역에서 화물차에 치인 40대 여성 라이더의 사망 사고로 급물살을 탄 것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189676)
아, 돌아가신 분은 전기자전거를 타셨는데요, 운송수단별로 순차적으로 출시하겠다던 C사의 보험은 아직도 오토바이만 가입 대상입니다. 제 체감 상 서울에서 비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이 30%는 되는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C사를 쓰고 있다면 죄다 무보험, 책임보험도 아닌 ㅋㅋㅋ무보험ㅋㅋㅋ 이란 겁니다!!!
진정으로 미친 나라와 그 이상의 미친 회사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보험사 의사결정자를 만날 수만 있으면 진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오토바이는 비싸다 그래도 어쨌거나 있기라도 하지, 자전거나 킥보드가 얼마나 손해율이 난다고 판단되면 상품조차 출시할 수 없는 건지? 사륜이 사람을 죽이지 자전거가 사람을 죽이나?

저는 한문철TV를 증오합니다. 아니 사고사례 전파로는 유용하나 그 시청자들을 증오합니다. 뭐 민식이법이 악법? 자전거와 킥보드는 도로의 암적인 존재? 진짜 악법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고 종합보험의 공소권 없음 특혜로 부당한 꿀을 빨아온 자들이 그딴 소리를 하는게 웃깁니다. 민식이법 이상한 법인거 알겠으니까 종합보험 특혜랑 같이 없애자고 딜치면 받을 사륜 있습니까? 교통흐름 때문에 5030은 문제라면서 이륜차의 정차시 차간 주행은 불법이라(얄미워서) 안된다는 눈에 붙였다 코에 붙였다 하는 논리까지.

장롱면허만 있는 제가 이렇게 지식을 쌓은 계기가 또 있죠. 그 얘기는 나중에 '전과 2범이 될 뻔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쓸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2-25 22:0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8
  •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친구가 평소 전동킥보드 자전거 둘 다 잘타고 다니는데 꼭 알려줘야겠네요ㅠㅠㅠ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5131 34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314 33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957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194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2304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185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816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112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126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408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272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614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260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63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87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606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88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840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69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3021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2010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268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2075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285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839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