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3/14 09:34:41
Name   쉬군
File #1   KakaoTalk_20230307_153230066.jpg (279.4 KB), Download : 6
Subject   아빠.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지난 주 주말, 오랜만에 급 따뜻해진 날씨로 올해 첫 동물원을 다녀왔습니다.

예상보다 더 따뜻한 날씨였고 사람도 북적였지만 오랜만에 동물원이라 거의 반나절을 돌아다니며 2만보 가까이 걸어다닌거 같네요.

저희 부부는 동물원을 참 좋아합니다.

아이가 좋아하기도하고, 아이를 데리고 놀러가는데 이만큼 가성비 좋은 곳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저희 아이의 성장을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여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도 몇번 글을 남겼지만 저희 아이는 조금 특별합니다.

50개월에 말을 시작했고, 여전히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는 관심이 없는 소위 말하는 발달지연을 겪고있는 아이지요.

가만히 놀고 있을때는 여느 아이와 다름없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두면 '저아이는 조금 특별하구나...'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와 첫 동물원을 갔을때, 저희 부부는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동물원 입구에서 들어가기도 전에 한시간이상 떼를쓰며 울고, 지나가는 부모님들과 할머님들이 모두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막상 들어가니 동물에는 관심도 없이 그저 동물원에 있는 내내 유모차에 앉아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도 슬프기도 했구요.
물론 잠시 내려서 신나게 달리며 놀긴했어서 그게 어디냐며 위안했지만, 다른 또래 아이들이 엄마아빠 손을 이끌며 동물이름을 외치며 구경을 하고 꺄르륵 웃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그랬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난번보다는 나아졌을려나..하는 기대로 동물원을 다시 데려갔을때도 여전히 동물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얼룩말 우리를 지날때 갑자기 일어나더니 얼룩말을 한참 구경하더군요.
유튜브에서 보고 퍼즐로 맞췄던 얼룩말이 마음에 들었던건지 정말 한참을 멍하니 얼룩말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저희 부부도 우리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동물이 생겼다며 기뻐 했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번의 동물원을 더 가면서 관심을 가지는 동물도 늘어나고, 동물에게 관심을 주며 구경하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물론 아이가 스스로 주도한다기 보다는 저희가 이끄는대로 따라다니며 동물 구경만 하는 정도였지만, 아주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향해 먼저 달려가고 동물 이름을 외치기도 할때마다 이만큼 더 자랐구나..를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지난 주 동물원을 갔을때 출발 전부터 평소와는 훨씬 다르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내일 동물원에 갈거야~"라고 말을 해줬더니 일어나자마자 "동물원~ 동물원 가고싶어!" 라고 말을 하고,
"친구들 데러갈까?" 라고 물으니 자기 가방에 동물 피규어들을 스스로 챙겨 담기도하고,
동물원에 도착해서도 들어가는동안 떼 한 번 쓰지않고 엄마아빠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가기도 하구요.

입장해서는 저희 부부는 더더욱 놀랍니다.
동물원 지도를 보여주며 "어떤 동물을 보러갈까?" 라고 물으니 스스로 보고싶은 동물을 선택하고 자기 가방을 뒤져 보고싶은 동물의 피규어를 꺼내 손에 들고 제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갑니다.
동물우리에 가서도 한참을 구경하며 동물 이름을 외치기도 합니다.
감각이 예민해 외출하고 한두시간이면 피곤해하던 아이가 서너시간이 지나도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저희도 절로 힘이 나더라구요.
물론 또래아이들이랑 비교해보자면 저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너무나 마법같은 모습이였습니다.
요즘 해양생물에도 관심이 조금 생긴거 같던데 아쿠아리움도 다시 데려가볼까하는 기대도 생겻어요.

----

한때는 아이가 특별한게 너무 속상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하루에도 감정기복이 수십번씩 왔다갔다 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제가 이렇게 흔들리면 아이도 혼란스럽고 힘들겠다..싶은 생각이 퍼뜩들면서 내가 내 욕심에 아이를 너무 몰아붙인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들었고, 모든걸 내려놓기로 했죠.
우리아이는 우리아이일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말자. 그리고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아이의 속도는 중요하지않다. 다른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조금 늦게 보여주는 것 뿐이지 이걸로 힘들어하거나 슬퍼하지말자, 다짐합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아이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이 큰 이벤트로 다가와 놀라움을, 기쁨을, 행복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부모님들이 볼때 저게 뭐 큰일인가 싶은 사소한 행동 하나도 저희 부부는 엄청 호들갑을 떨고 칭찬해주고 즐거워 합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해줄때마다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런 엄마아빠의 모습이 자기도 좋은지 다음엔 더더욱 열심히 보여주고 따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 저희 부부는 더더욱 놀라며 행복해하죠.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주면 아이는 천천히, 하지만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육아의 길에 속도가 중요한게 아님을 아이를 통해 배워갑니다.
저희가 이끌어줘야할 아이가 저희 부부에게 더 중요한걸 알려주고 있으니 저희도 더 열심히 이끌어줘야겠죠.

저와 비슷한 상황의 부모님들, 아니 모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항상 힘내시고 사랑과 기쁜일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추신) 아들아. 다음에 동물원을 가면 아빠가 웨건을 타고 니가 밀어주는 이벤트를 해보자. 즐겁긴 했지만 아빠의 늙고 병든 몸으로 2만보를 걷는건 너무 가혹한 일이였단다...이제 젊은 니가 밀어줘도 되지 않겠니?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3-26 22:1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1
  • 추신 ㅋㅋㅋㅋㅋ
  • 쉬군님도 황구도 행복만 가득하길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84 일상/생각20개월 아기 어린이집 적응기 18 swear 23/03/21 3009 29
1291 문화/예술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2. 샐리의 짝사랑 14 서포트벡터 23/04/05 3027 12
1326 일상/생각현장 파업을 겪고 있습니다. 씁슬하네요. 6 Picard 23/09/09 3034 16
1272 일상/생각내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명절연휴 6 당근매니아 23/01/31 3041 33
1251 일상/생각농촌생활) 7.8.9.10.11월 23 천하대장군 22/11/15 3047 34
1301 일상/생각팬은 없어도 굴러가는 공놀이: 릅신이 주도하는 질서는 거역할 수 없읍니다. 8 구밀복검 23/05/20 3054 23
1300 정치/사회편향된 여론조사를 알아보는 방법 10 매뉴물있뉴 23/05/18 3075 25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77 29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0 11
1296 일상/생각힐러와의 만남 6 골든햄스 23/04/24 3084 18
1380 정치/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7 카르스 24/03/26 3093 9
1307 과학유고시 대처능력은 어떻게 평가가 될까? - 위험 대응성 지표들 18 서포트벡터 23/06/26 3104 31
1289 문화/예술천사소녀 네티 덕질 백서 - 1. 원작 만화처럼 로맨스 즐기기 16 서포트벡터 23/04/03 3121 9
1302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3151 22
1249 정치/사회슬픔과 가치 하마소 22/11/02 3169 15
1262 기타2022 걸그룹 6/6 10 헬리제의우울 23/01/03 3178 12
1283 기타아빠.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27 쉬군 23/03/14 3198 61
1269 기타2022 걸그룹 결산 10 헬리제의우울 23/01/23 3211 2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3215 69
1345 정치/사회한국 철도의 진정한 부흥기가 오는가 31 카르스 23/12/16 3227 7
1298 일상/생각재미로 읽는 촬영 스튜디오 이야기. 8 메존일각 23/04/30 3228 10
1271 일상/생각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한 때 12 스라블 23/01/27 3233 25
1333 일상/생각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자들과 솎아내기의 딜레마 12 골든햄스 23/10/01 3237 20
1312 정치/사회학생들 고소고발이 두려워서, 영국 교사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3 카르스 23/07/21 3245 20
1276 일상/생각내돈내산 뷰티템 리뷰 13 Only 23/02/08 3258 2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