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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12 16:36:35
Name   nickyo
Subject   프랑스 극우당의 승리에 대한 논평에 대한 이야기
1. 프랑스에서 FN의 압승은 파리 테러로 인한 일시적 퇴보가 아니다. 이 일은 다수를 차지했던 중도파 자유주의자들을 드디어 FN이 흡수했다는 걸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중도파란 '주류의 죄책감'을 공유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윤리적인-서구-백인-남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중동 사태는 서구의 침탈적 개입 때문이지, 그러므로 우리가 감내해야 해.", "직장 내 임금 격차는 남성중심적 사회 때문이지, 그러므로 우리가 감내해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FN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프랑스 정치의 방향이 정해졌다.

2.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포퓰리즘을 단순한 극우라고 생각하기에 권위적 보수주의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포퓰리즘은 20세기 후반 진보진영의 감수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예를 들면 유럽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여성, 환경, 성소수자, 동물권 등의 문제에서 기성 정당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3. FN의 정책 또한 그렇다. 마린 르 펜이 "우리가 우익이라고? 오바마가 우리보다 더 오른쪽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절반 이상 사실이다. 오바마와 비교한다면 르 펜의 정책은 오히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콜빈에 더 가깝다. (나는 콜비니즘 또한 어느 정도는 포퓰리즘을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영국의 좌파 매체인 스파이크드는 진작부터 그를 거세게 비판해왔다.)

4. 나는 FN이 아주 빠르게 세를 확장해나가던 시절에 프랑스에 있었다. 그리고 공산당이나 NPA 활동가였던 지인들이 FN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놀랄 만큼 빠르고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큰 규모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의 전향은 생각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종래의 이념과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FN으로 돌아선 것이다. "FN이 빈곤과 실업 문제에 더 적극적"이라거나 "NPA는 여권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말하던 그들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사회당은 물론이거니와 공산당이나 NPA, 좌파연합을 모두 '기성 정당'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FN을 사르코지가 만든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새로운 대안처럼 받아들였다.

5. 역사적 파시즘조차 처음부터 노골적인 차별과 폭력을 내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나치는 노동자와 하층 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분배, 복지, 환경, 동물권 등의 문제에서 공산주의보다 더 적극적인 지표를 제공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와 달랐던 점은 하층민의 박탈감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나치는 유태인 학살조차 끔찍한 인종 청소가 아니라 사악한 자본가 무리를 처단하는 윤리적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인들은 그게 큰 잘못이었다는 걸 패전 후에야 깨달았다.

6. FN 지지자들도 지금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한국의 젊은 좌파들이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도입을 환영하는 것 처럼 말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제는 좌파 정책처럼 보이지만 복지를 축소하고 특히 이민자들에게 주어지는 공공서비스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이다. FN의 정책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좌파적이다. FN 지지자들은 르 펜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더 늘리고, 성 차별을 없애고, 환경을 보전하며, 사르코지 식의 금융화와 국가독점개발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7. 지금 나는 '정책만으로는' FN의 포퓰리즘을 좌파와 구분할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FN을 한국 노동당과 구분할 방법이 뭔지도 모르겠다. 무슨 근거로 FN을 극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 마리 르 펜이 나치 부역자였기 때문에? 아니다. FN도 나치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약자를 향한 도덕심에 호소했다. 이 점이 제일 중요하다. 극우파는 "내가 너보다 우월하니까 너를 팰거야"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부당하게 빼앗기고 억울하니까 너를 팰거야"라고 한다. 이것이 극우파의 저변에 흐르는 주요 정서다. 태평성대에는 이런 생각이 발 붙일 틈이 없다. 그러나 혼란기에 접어들면 중도파마저 극우를 지지한다. 프랑스의 경우 과거에는 구 식민지나 제3세계를 피해자라고 인식했던 반면에 지금은 자국민을 피해자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8. FN이 진짜 좌파와 다른 점은, FN은 카타르나 사우디의 투기적 석유 자본, 환경 오염과 온난화를 부추기는 제3세계 산업, 폭력적인 종교,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이민자, 어눌한 억양의 성추행범 등 눈에 보이는 적(사실은 만들어진 가상의 적)을 규탄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개인의 어려운 실천이 요구되는 좌파와 달리 FN은 눈에 보이는 적들을 처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훨씬 쉬운데다 윤리적 타당성까지 제공하므로, 중도파의 위선에 의지하는 사람이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9. 피해자를 향한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이 어떻게 윤리를 통과해 극우로 빠져드는가? 최근 아이유 음반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때 사람들은 "아동학대나 성추행 등을 경험한 피해자가 있으므로", 또한 "피해자들이 아이유 노래를 듣고 상처를 입을 수 있으므로"라는 이유로 그녀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넥타이에 목이 졸려 학대를 당한 피해자가 있으므로 넥타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진짜 학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도 아니며, 진짜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어떤 광적인 분위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극우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FN을 지지하는 포퓰리스트들도 자신들이 유사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해결책을 모색하는 윤리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장 두려운 부분이 이거다. 극우는 절대악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외려 선한 것처럼 가장하고 행동한다.

10. 이제 어제까지의 세계는 끝났다. 후세 사람들은 파리테러와 프랑스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5년을 '장기 20세기'가 끝나고 '단기 21세기'로 접어든 시점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진정한 난세의 도래다. 100년 전처럼 좌파와 포퓰리즘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더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좌우파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윤리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극우파적 행태는 한국에도 많다. 좌파는 그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11. <임금 노동과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공정한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임금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고 썼다. 이걸 더욱 더 확장해보자. "복지 확대나 기본소득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계급 철폐", "성 상품화 반대나 스캔들 공론화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성차 철폐", "진보대연합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대의제 철폐"라고 말하는 것이 왜 안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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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닌 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공유가 허락된 글을 이동해 왔습니다. 작성자의 성함에 대해서는 혹시나 몰라 익명으로 올립니다.

저는 위 글에 대해 거의 대부분 동의합니다. 물론 9번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이유 논란이 약간 부적절한 인용이 아닐까 생각은 합니다만, '윤리가 극우의 무기'인 이유에 대해선 동의하는 편입니다. 어쨌거나 위 글의 방점은 11번에 있겠죠. 하지만 동시에, '계급철폐' 와 같은 어떤 급진적인 사회변혁의 표어가 '급진적'으로 실행되었을때, 우리가 마오쩌둥과 레닌을 기억한다면 쉽게 그러자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습니다. 물론 그 때의 표어와 지금의 표어는 다른 내적 의미를 지닐테고, 그 때의 사회적 토대와 지금은 또 다르겠죠. 어쨌거나 11번은 정말 '그러자'고 하는 것 보다는, 급진적 좌파의 용어가 극우와 결별해야 하는 지점, 이를테면 '합리성'이라는 판단의 태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경계지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정책이 극우가 아닌데 왜 극우인가' 혹은 '극우가 좌파적 정책을 수행하면 잘 된거 아니냐'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도 사실 이 부분이 상당한 의문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인 논조는 역사적으로 극우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마지막에는 우리가 알듯 극우적 파시즘으로 귀결하고야 말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극우'라는 것을 조금 더 들여본다면 극우의 핵심적 가치, 내지는 공유하는 감정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인지상정'이라거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거나, '공평' 같은 것들이요. 극우는 일반적으로 조금 더 단편적이고, 조금 더 명백하고 단순한 지점에 대해 '명쾌한'해법을 제시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떤 사회와 마주치게 하느냐에 따라서 극우는 때때로 급진적인 좌파처럼 행동할 수도 있는 거겠지요. 파리의 중도파가 어째서 극우로 돌아섰냐는 말에 위의 글이 대답이 되는 이유도 아마 그런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글은 마지막에와서 약간은 모호하면서도 원론적인 '좌파적 입장'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조 바깥의 급진적 실천을 요구하기 전에는 언제나 구조 내부에 있는 이념과 정치를 무시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때, 어쩌면 21세기란 합리주의가 양 진영에 정착한 순간 우익의 승리가 담보되어있는 정치지형이 세워진 것은 아닐까 합니다. 각자의 이해와 이익에 맞는, 그것을 우선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관인 사회에서 그런 인간들로 구성된(그리고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한 배움의 과정을 겪어나오는) 사회에서 합리성이란 개인의 아주 작은 단위부터 거대 정치지형까지를 아우르는 하나의 태도일거라 생각합니다. 이 태도는 결국 개인 단위에서의 합리성, 공동체, 정치국가 단위에서의 합리성이 별개로 작동함과 동시에 각자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극우와 급진적 좌파라는 구별 자체가 무력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좌파의 '대안사회'는 모델도 정확치 않고, 없애야 할 것은 많으나 동시에 지리멸렬하고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극우는 지금 산재해 있는 문제에 대해 배타적이고 미시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해결책들을 내놓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대의정치의 명분과 실리를 가져다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그 문제를 겪는 시민들에게도 도움을 주게 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죠.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극우는 이렇게 되리라'하는 결과를 맞춰놓고 이 문제들을 분석하는 순간 다시한번 좌파는 대중과 또 멀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됩니다.



우파와 좌파의 경계가 모호하게 가려진 지금, 오히려 우리의 사유와 판단을 얻어낼 근거들은 기존의 시각이나 합리성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와 자본주의 발전에 의해 더욱 복합적이고 보편화된 파편과 경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화 속에 무리지어진 '국가'와 '민족'.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선진국들과 중진국들과 그 아래 제3세계까지 엮여있는 자본주의 생산체계의 복잡성은 한 국가의 정치가 국내적으로는 자국민에대한 매우 높은 만족을 줌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철저하게 자국을 위해 타국을 탄압할 준비가 되어있는, '보편적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들이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는 시대에서 전체를 지적하고 바라보는 좌파의 입장이란 더욱 힘들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선진국의 극우는 이제 더 이상 자국민을 나누는 것이 아닌 또 다시, 게르만족의 우수함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자국 내의 좌파, 국제적 우파의 지위를 획득한 채 행동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추측을 배제하고서라도, 국가 단위의 배척과 자국에 대한 우선주의가 도덕적으로 정당함과 동시에 전체적으로 더 부도덕한 상황을 만든다는 모순 속에서 우리의 합리성이 우리의 삶의 틀 안에 갖혀있다면 그 누구도 '극우의 사고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합리성이란 이기주의를 어디까지 정당하게 여기느냐의 문제일테고... 우리의 합리성이 우리 틀 바깥을 향해서도 유지하려 했던 20세기의 좌파적 시도들은 이렇게 폭력과 공포 아래에서 다시금 힘든 시기를 맞이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사유의 근본에 함정이 있는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됩니다. 합리적이라 믿는 '희생과 댓가'에 대한 공평함에 맞춰진 판단들이 과연 희생과 보상을 적절하게 가리고 적절하게 선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과연 우리의 생각이 정말로 공평할 수 있는지도 회의적이 되네요.


이젠 지나가버린 구닥다리 이론처럼 되어버린 세계체계론이나, 세계화에 대한 비판들이 무시당하고 세계화가 찬양받고 많은 사회들이 세계화 속에서 '개화'된 20세기와 21세기 극초반을 지났고, 이제는 근대의 역사적 잔재를 전부 청산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다시금 불완전한 세계화의 문제, 국가로 경계지어진 개인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자본과 금융이 이동하며 생기는 갖가지 문제와 파편화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음을 느낍니다. 결국 이렇게 '극우'는 얼굴을 바꿔 우리 곁에 또 커다랗게 자리잡는것인가 하는 씁쓸함이 남네요. 문화와 인종, 국가와 역사가 남겨둔 갈등의 응어리들이 현대에 이르러 테러와 폭력, 극우적 반발과 사회에 남겨지는 증오와 공포를 보며 보편적 인권과 평등, 평화와 박애,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들이 얼마나 손 쉽게 우리로부터 멀어지는지를 다시금 느낍니다. '인간답게'사는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먼 일인지 새삼 어마어마하게 무겁게 느껴지네요. 우리가 자본주의의 단점과 싸워보기도 전에 자본주의는 세계화를 이룩하였고, 세계화를 제대로 비판해보기도 전에 세계화의 복합적인 모양새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거시적이고 통합적인 사유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파편화된 생산조건과 다층화된 계급 사이에서 훨씬 더 다방면에 펼쳐진 모순들을 보며 과연 진보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어떤 대답을 통해 저항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의 방향키를 휘두르지는 못할지라도, 진보의 위치에 서있으려면 훨씬 더 어렵게 살아야 됨을 반성하게 됩니다. 불균형적으로 이뤄져있는 정치와 경제의 모순을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며 다시금 기존의 합리성과 윤리관념을 벗어나 사유할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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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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