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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5/29 02:16:58
Name   열한시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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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철수를 석방하라'




'이철수를 석방하라'(원제: 'Free Chol Soo Lee')는 우연히 접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남깁니다.

번역 제목은 이외에도 '철수에게 자유를', 또는 요새의 유감스러운 추세인 그냥 읽어버리기 ('프리 철수 리') 가 있군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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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보여주듯이, 그리고 맨처음 타이틀이 넘어갈 때 잘 알려진 블록버스터 제작사나 배급사는 보이지 않고 대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배급에 관여한 mubi 로고가 보인다는 점에서, 이미 중반까지의 내용은 쉽게 짐작이 됩니다. 그 내용이란, 이철수라는 가엾은 20대 초반 한국계 미국인이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억울한 살인 누명을 썼다는 사건이지요. 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1970년대 미국 경찰과 재판부가 속전속결로 그를 잡아넣은 결과물이었고, 한인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구명 운동을 펼칩니다. 결국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끝에 최초 판결은 무효가 되고, "나는 천사는 아니지만, 동시에 악마도 아니다"라고 교도소 안에서 외치던 이철수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찾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소위 말하는 model minority적인 모범시민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다니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소년원에도 들어갔다가 3개월 간은 정신병자 취급도 받고, 나와서도 이미 한 건의 절도 범죄를 저지른 상태였습니다. 그가 누명을 쓴 차이나타운 노상 총기살인사건이 있기 전에는 차이나타운에서 나이트클럽 호객꾼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재미로 빌린 권총을 실수로 발사하여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그를 용의자 후보로 올릴 정도의 이유는 있었던 것이지요. 다만 경찰은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가 갱단으로 쉽게 엮일 수 없는 사이라는 인종적 역학관계에는 둔했고, 사실 동양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분간할 능력이 없는 백인들 3명만을 증인으로 의존하여 그를 지나치게 빠르게 특정하여 잡아넣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억울한 한국계 미국인 이철수가 부당하게 교도소에 갔다가 석방되었다는 매우 기분 좋은 이야기일텐데, 다큐멘터리는 불편한 사실들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그가 절도 전력을 1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당시 재소자와 싸움이 붙었고 상대 재소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지요. 여기서 저는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도 보통은 아닌데...?" 물론 이 교도소는 강력범들만 집어넣던 악명 높은 교도소였고, 이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상황에서 감옥 내 생태계에서 약자로 보이지 않기 위한 그의 자기방어로 변호됩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심이 싹텄습니다. "과연 이 사람이, 범죄에도 발을 담가봤고 감옥 내에서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사람이, 나와서 착실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깔끔하지 못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비행청소년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그의 불행한 유년기 가족사와 관련이 되어있기었에, 이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인자였고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그의 구명운동은 하나의 대세가 됩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고, 교인들은 특별 헌금을 내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재판에는 항상 한국인 무리들이 참관하게 됩니다. 재밌는 이야기로 "Free Chol Soo Lee!" 라고 써붙이고 길거리 홍보운동을 하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Chol Soo Lee라는 동양 음식을 공짜로 나눠주는 행사로 이해했다는군요. 어찌되었든 그는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캘리포니아 한인들이 그간 겪어왔던 은은한 설움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고, 그는 얼떨떨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인권운동의 파도에 올라타게 됩니다.

한인 저널리스트, 법조인, 기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철수는 자유를 되찾게 됩니다. 교도소 내에서는 서신으로, 그리고 몇몇 방문자들로부터 전해들었지만 그는 정말로 한인 사회 내에서 유명인사였고 인종차별의 피해를 받았으나 구명된 일종의 아이콘이 된 것입니다. 한동안은 강연을 다니고 온갖 축하를 받고 유명인사와 같은 작은 유명세를 누리게 됩니다. 다만 한인 사회 내 유명세로만 먹고 살 수는 없고, 대학 교육을 받거나 하지는 못했으니 한인 교회 관련 사무실에서 안내 직원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새 인생이 시작됩니다.

'컴퓨터 세일즈맨으로 추천해서 일을 시작하도록 해줬어요. 그런데 3개월 지나고 물어보니 해고되었다더군요. 이유를 물어보니, 시간 맞춰서 나오는 것을 잘 못 했대요. 늦잠 자고...' 그의 하락세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석방된 후 그가 지나치게 파티를 좋아하고 술을 찾더라는 사실이 그를 도와주었던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감지됩니다. 이러한 파티에서 마약을 접하기 시작한 그는 그대로 마약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게 됩니다. 코카인 등에 중독되어, 자신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집에 불쑥 찾아가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칼을 들고 다가가다 총구 앞에 서기도 합니다. 그의 구명을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도왔던 사람들이 그에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은 그를 믿었던 후원자들에게 실망을 주게 됩니다. 모범적 삶에 대한 지나친 기대 및 중압감은 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름대로 유명 인사 취급을 받다가 별 볼 일 없는 근로자로 사는 것도 싫었을 테고, 무엇보다 10년의 끔찍한 감옥 생활 후 그는 이전과는 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마약 소지 혐의로 이번에는 정당하게 감옥에 가게 됩니다. 1년 반의 형을 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최악으로, 석방된 다음에는 교도소 경험과 함께 축적된 뒷세계 명성으로 인하여, 정말로 중국인 갱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십년 전에는 한국인이 중국인 갱단에 쉽게 섞이는 인종이 아니라는 점이 석방의 한 근거였지만, 지금은 그가 제 발로 걸어들어가게된 것이지요. 이 갱단에게서 어떤 집에 방화를 저지를 것을 주문받은 그는 그러려다가 실수로 넘어져 자신도 큰 화상을 입습니다. 이 화상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화상으로 인해 얼굴까지 일그러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년시절의 복잡함은 단순히 이민과 관련된 것보다 좀 더 복잡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강간으로 인해 낳은 혼외자식이 그였던 것입니다. 거기다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는 가족에게서 버림을 받았고, 그래서 미군과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떠나게 됐던 것입니다. 심지어 처음부터 이철수를 데리고 간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당시 홀로 먼저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는 친척의 손에 맡겨져 한국에서 10대 초반까지 성장하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전후 한국에서 자랍니다. 그러던 중 웬일인지 이제는 독신인 어머니가 언젠가 한국을 찾더니 내 자식이니 데려가겠다고 하여 이철수는 미국 땅에 놓이게 된 것이죠. 중국인 이민자를 주로 대상으로 하던 미국의 학교에서 그는 중국인이 아니었기에 영어를 빠르게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본인을 미국에 데려온 어머니는 자주 별 이유도 없이 본인을 마구 체벌합니다. 어머니는 정황상 그가 강간범인 송모씨 (즉, 이철수의 이름은 사실은 송철수)와 이로 인한 버림받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체벌을 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그의 구명운동이 대세가 된 다음에도 일정 시점까지는 관련 행사에 얼굴을 비치지도 않았습니다. 철수는 차라리 정말 가난했던 50년, 60년대에도 그를 친자식과 같이 챙겨주었던, 먹을 것이 생기면 본인들의 친자식에게 절반, 그에게 절반을 주었던 친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에도 그 가난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는군요.

그는 앞서 중국 갱단이 방화를 사주했다는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자백하기로 하고, 그 댓가로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던 언론인 K.W Lee, 법조인들, 그리고 인권운동가들도 이 기간 동안 그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됩니다. 당시 운동을 후원했던 사람들은 이철수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서 자진 이탈하였을 때에야 다시 그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이철수는 악화된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좀더 후회가 물들었고 화상이 스치고 지나간 얼굴을 하고 다시 강연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구명 운동가들을 다시 찾아가 감옥이 어떻게 사람의 인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지 대학가에서 강연을 하고, 그에게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소 늦었지만 떳떳하게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인생 풍파에 지쳤기 때문인지, 병원에서 그는 자신의 장 질환에 대한 적극적 치료를 거부합니다. 그는 그 결과로 62세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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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예상되었던 앞부분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넘겨짚었으나 다큐멘터리 영화에 충실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었고 후일담까지 가감없이 보여주어 담백하면서도 큰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사건은 단순히 흑과 백, 선과 악,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으로 나눌 수 없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였기에 그런 것 같아요. 기대와 실망, 절망과 구원, 그리고 유년기의 그림자 등에 대하여 생각할 때 계속 떠올리게 될 좋은 영화였기에, 스포일러 내용을 아시더라도 감상을 추천드립니다. 옛날 시절 한인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눈이 심심하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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