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8/01 16:28:57
Name   카르스
Subject   한국 가사노동 분담 문제의 특수성? - 독박가사/육아 레토릭을 넘어서

한국의 남녀 가사부담이 선진국에서는 제일 불평등한 축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Charmes (2019)에서 퍼온 것인데, 선진국들 비임금 가사노동에서 여성의 "상대적인" 분담 비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한국은 여성 가사노동 전담률로 대만, 포르투갈, 일본과 함께 최상위권, 아니 더 나아가 1위입니다. 가사노동 부담이 제일 불평등한 나라인 셈이죠. 자료마다 구체적인 순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사분담 불평등으로 한국이 선진국 최상위권이라는 결론은 동일합니다. 이로인해 독박육아/독박가사라는 말이 나오고,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며 출산율을 낮추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많이 나옵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분명 엄중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대적 불평등을 논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oecd.org/coronavirus/policy-responses/caregiving-in-crisis-gender-inequality-in-paid-and-unpaid-work-during-covid-19-3555d164/

바로 한국의 남녀 가사부담의 극심한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의 절대적 가사노동시간은 선진국에서 최하위권이라는 데 있습니다. 가사부담이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북유럽과 비슷하거나 더 적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한국의 절대 가사 노동시간은 꽤 낮은 편입니다. 위 사진의 Charmes (2019)은 남녀의 "절대적인" 가사분담 시간 수준을 나타내는데, 한국 여성(W)의 절대적 가사 노동시간은 선진국에서 대만 다음으로 낮으며, 성평등등도가 제일 높은 북유럽보다도 낮습니다. 아래 사진의 OECD (2021)도 결론은 비슷합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한국의 심각한 가사노동 불평등이 절대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극심한 불평등이 여성의 극도로 긴 가사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이 이유에 대해 떠오르는 가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설은 한국의 매우 긴 노동시간, 둘째 가설은 한국에서 유독 발달한 대도시화와 단체주택 문화.

하지만 첫째 가설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문제는 한국은 단순 가사노동을 넘어 가사노동+노동시간을 합한 총 노동시간도 매우 낮은 축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이 트렌드는 남녀에 무관하게 나타납니다. 

위의 그림은 Charmes (2019)에서 가져온 것인데, 남성(위 사진), 여성(아래 사진)이 비임금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에 사용하는 총 노동시간을 계산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한국은 낮은 순으로 찾는 게 훨씬 빠릅니다.



출처는 https://ourworldindata.org/working-more-than-ever

두번째 문제는 긴 노동시간이 문제라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남녀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늘어야 했는데, 한국은 장기적으로 노동시간이 빠르게 줄었음에도 그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Our World In Data에서 보여주는 국가별 연 노동시간 추이(위 사진)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노동시간이 길지만 선진국과의 격차가 많이 좁혀졌는데, 생활시간조사(아래 사진)에서는 나타나는 전체 가사노동 시간은 증가하기는 커녕 느리게나마 감소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만 남습니다. 

한국은 도시화를 넘어 (초)대도시화의 나라입니다. 한국인의 절반이 2600만여명이 살아 선진국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서울 광역권에 살아갑니다. (참고로 제일 인구가 많은 선진국 대도시는 일본 도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광역권도 수도권에 비하면 체급이 크게 밀리고 그래서 문제지만, 인구가 100만 단위이니 결코 작지 않습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이 유럽 선진국에 가면, 광역권 인구 기준 제1도시가 될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대도시에서는 가사 노동을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외주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가사 노동을 최소화하는 단체주택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정원에 무성히 자란 잔디를 깎거나 지붕을 수리하는 가사노동을 할 일이 없지요. 그렇기에 남녀를 막론하고 절대적 가사 노동시간이 적습니다. 한국과 대도시화와 단체주택 거주의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대만 일본(여기는 단독주택 거주도 꽤 많긴 한데 대도시화는 비슷하죠) 도 절대적 가사노동시간이 짧은 축인 것을 보면 이 가설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이 참이라 해도, 또 다른 과제가 생깁니다. 첫째, 한국 여성의 절대적 가사부담은 적지만 상대적 분담률 불평등이 심각한 걸로 불만이 자자합니다. 그렇다면 가사부담 인식은 '절대적으로 낮은 부담'보다 상대적인 공평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공평함이라는 정서가 중요하다는 건 여러 조사를 통해 알려져 있지만, 저 정도로 중요할까요? 절대적 분담과 상대적 분담이 인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절대적인 가사노동시간의 감소는 여성의 일과 출산의 기회비용을 낮추는 요소로 꼽힙니다. 미국 여성 역사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술의 발전과 베이비시터 등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줄었기에 노동참여가 늘어났고 출산율이 늘어났다고. 그런데 (노동시간을 감안해도) 절대적 가사노동시간이 작은 한국 여성들의 고용률과 출산율은 왜 저렇게까지 낮을까요? 바로 위에서 말한대로 '절대적 부담'보다 '상대적 분담'이 더 중요해서일 수도 있고, 낮은 가사노동시간의 유리함을 압살할만큼 여성 고용과 출산에 미치는 사회적인 부정적 요인이 압도적이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가치관적인 것이든. 이 경우 한국의 여성 고용/출산을 저지하는 사회적 요인은 (이미 알려진 걸로도) 매우 심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 생각합니다.

출처:
Charmes, J. (2019). The Unpaid Care Work and the Labour Market: An analysis of time use data based on the latest World Compilation of Time-use Surveys (pp. 161-p). Geneva: ILO.
OECD. (2021). Caregiving in crisis: gender inequality in paid and unpaid work during COVID-19. OECD Publishing.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8-13 12:4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5
  • 와 덕분에 좋은글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추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85 일상/생각챗가놈 생각 4 구밀복검 23/03/25 2303 19
1284 일상/생각20개월 아기 어린이집 적응기 18 swear 23/03/21 2328 29
1260 요리/음식차의 향미를 어떤 체계로 바라볼 수 있을까? 6 나루 22/12/20 2332 13
1210 일상/생각농촌생활) 5월 초 - 6월 초 8 천하대장군 22/06/07 2344 15
1300 정치/사회편향된 여론조사를 알아보는 방법 10 매뉴물있뉴 23/05/18 2385 25
1263 경제때늦은 2022년의 경제학 (+인접분야) 논문읽기 결산 9 카르스 23/01/04 2399 15
1257 여행너, 히스패닉의 친구가 돼라 5 아침커피 22/12/17 2414 15
1251 일상/생각농촌생활) 7.8.9.10.11월 23 천하대장군 22/11/15 2415 34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431 69
1301 일상/생각팬은 없어도 굴러가는 공놀이: 릅신이 주도하는 질서는 거역할 수 없읍니다. 8 구밀복검 23/05/20 2438 23
1262 기타2022 걸그룹 6/6 10 헬리제의우울 23/01/03 2472 12
1299 일상/생각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9 골든햄스 23/05/07 2478 49
1307 과학유고시 대처능력은 어떻게 평가가 될까? - 위험 대응성 지표들 18 서포트벡터 23/06/26 2489 31
1272 일상/생각내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명절연휴 6 당근매니아 23/01/31 2490 33
1326 일상/생각현장 파업을 겪고 있습니다. 씁슬하네요. 6 Picard 23/09/09 2502 16
1298 일상/생각재미로 읽는 촬영 스튜디오 이야기. 8 메존일각 23/04/30 2510 10
1315 정치/사회한국 가사노동 분담 문제의 특수성? - 독박가사/육아 레토릭을 넘어서 24 카르스 23/08/01 2511 15
1302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2521 22
1312 정치/사회학생들 고소고발이 두려워서, 영국 교사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3 카르스 23/07/21 2525 20
1269 기타2022 걸그룹 결산 10 헬리제의우울 23/01/23 2537 22
1296 일상/생각힐러와의 만남 6 골든햄스 23/04/24 2561 18
1283 기타아빠.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27 쉬군 23/03/14 2568 61
1333 일상/생각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자들과 솎아내기의 딜레마 12 골든햄스 23/10/01 2570 20
1249 정치/사회슬픔과 가치 하마소 22/11/02 2576 15
1286 꿀팁/강좌농업용 관리기 개론 8 천하대장군 23/03/23 2649 1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