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12/31 01:30:21
Name   Soporatif
Subject   아보카도 토스트 개발한 쉐프의 죽음
친구의 피드에서, 스물 둘에 아보카도 토스트를 개발한 호주 쉬프 Bill Granger가 오십 네 살의 나이에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사십 육 세. 새해가 오고 제 생일이 지나면 사십 칠 세가 되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제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감이 오기는 커녕 갈팡질팡 우왕좌왕 좌충우돌 하면서 허덕이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 여태까지 살면서? 하고 그 호주 쉐프의 비보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고 십 년 간 애지중지 잘 키운 것.
그 분야에 실망했고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와 학교를 마치고 면허번호를 받고 또 그 직업을 기반으로 어린 아이와 둘이서 해외에 나와 그나마 수월하고 빠르게 정착한 것.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얻은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그나마 자유로워진 것.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같은 언어를 잘 구사하는 것.
새벽에 일어나 짐에 가서 운동하는 루틴을 잘 유지한 것.
비교적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 먹는 생활습관을 유지한 것.

참으로 사소롭고 개인적인 성취들이네요 적어놓고 보니.
강남에 아파트를 사 두었다든가 예전에 산 비트코인으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든가 예전의 꿈을 이루어 유명 작가가 되었다든가 직업적으로 굉장한 것을 이루었다든가 개인적으로 결혼생활을 잘 유지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든가 이런 것과는 거리가 참 먼, 멀리 멀리 돌아와 겨우 이뤄낸 작은 성취들이네요.

더이상은 욕심이 없지만,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삶이라는 시간에 대해 좀더 욕심을 내어 볼까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아이에게도 더 좋은 엄마이고 싶고 일적인 면에서도 더 신뢰받는 그리고 스스로 자신감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동안 여력이 없어 들여다 보지 못했던 재테크라는 분야에도 신경을 써 보고 싶고 제가 사랑하는 요리와 사진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보고 싶기도 하구요.

적어 놓고 보니 전 아직 욕심이 많은 사람이네요.

멀리 바다 건너 살다 보니, 또 아이하고조차 한국어 보다는 영어로 소통이 더 잘 되는, 모국어를 점점 잃어가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공허하고 외롭고 가끔 한국어로 쏟아내고 이해받고 또 타인을 이해하며 소통하고 싶어 우연히 발견한 이곳에 가입했는데 참 편안한 기분이 들어요.

언젠가 육아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면 한국의 바닷가 근처에 가서 심플하되 나 자신에 집중하고 또 아낌 없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2023년 마무리 잘 하시고 2024년 잘 맞이하시기 바래요.
2000년에 떠들썩하게 밀레니얼을 이야기하며 두려움 반 희망과 호기심 반으로 그 해를 맞아했던 그 때를 떠올립니다. 믿어지지 않는 숫자에요. 2024.

.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1-16 08:3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9
  • 삶에서 정말 중요한 성취들, 강남의 집 한 채나 암호화폐 부자같은 외연적인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을 이뤄내셨네요. 새해에도 화이팅입니다!
  • 요리와 사진을 탐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게시판에 등록된 Soporatif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87 32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60 31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33 20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63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45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69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76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58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36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87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30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63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95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611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51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23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99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96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800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73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8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7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92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7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62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