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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2/27 23:02:35 |
Name | 골든햄스 |
File #1 | B1D0207B_4DBE_408B_8D16_BF78A295793B.gif (259.4 KB), Download : 8 |
Subject | 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
종종 ‘응원하고 있어요’ ‘햄스님이 그간 쓰신 글을 봐왔습니다(두둥!)’ 라는 반응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세상 살기도 힘든데 저 같은 것에 마음 한 오라기라도 써주셨구나 싶어 기분이 몰캉몰캉해집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지금은 참 괜찮아졌는데 이걸 알려드리지 못해 혹 계속 걱정하고 계시지 않을까 염려가 됐습니다. 홍차넷에 2022년 10월 "교수님, 제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https://redtea.kr/free/13248) 라는 글을 쓴 이래로, 삶의 많은 부분을 홍차넷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제 상처를 이해받고, 아니, 적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 저에겐 신세계와 같았고 이곳에서 한때는 모든 사회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심각한 번아웃, 희귀병(섬유근육통) 후유증, 신경증, PTSD, 경제적 문제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다정히 받아주신 홍차넷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후 2024년 2월 말경인 지금, 저는 병약하고 트라우마 있는 한 사람 정도(?)로 크게 상황이 호전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와도 법적으로 최대한 분리가 된 상태입니다. 아직도 심신의 힘이 달릴 때가 많지만, 적어도 목표한 것을 차근차근 이뤄나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무언가에 홀린듯 제 인생에 남은 부모의 자취를 돌아봤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둘 다 살아본 아버지를 쫓아보듯 두 지역 다 가보기도 하고, 진주 경상대 출신인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경상대까지 가보기도 하고, 어릴적 화장실도 없이 엄마랑 단둘이 살던 아현동 달동네 (이제는 재개발되어 그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포카칩 파란맛, 파란 등산점퍼, 문어초밥, 퓨전사극 같은 걸 보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초밥을 보고 ‘이런 고급 음식을 내가 어떻게 먹냐’ 는 식으로 대응하다 (전형적으로 늘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화와 부끄러움이 쌓여 외면하는 식) 점점 제가 사드렸더니 ‘야. 문어초밥 이게 이상하게 그리 맛있다!’ 는 식으로 말씀했었습니다. 전 바보 같이, 문어초밥 하나를 두고 웃고, 그리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좋은 문어초밥을 사주고, 또 사주고, 좋은 등산복을 사주고, 점점 우리도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게 되고 술과 폭력으로 싸우는 일은 줄어들 거야. 석사 논문이 가난한 공장 생산직 여성이든 잘 배운 여성이든 옷차림 취향에 큰 차이가 없는 걸 증명한 것이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글쎄, 제가 보기엔 유행의 기준이 높아 힘겨운 서민들의 심사로 해석될 수도 있을 법한데) 엄마에게 패션이란 무엇이었을까요? 평생 저와 제 친구들을 외모로 까내리고, 자신의 외모를 자랑스러워하던 엄마. 늘 절 한심히 여기며 자신의 사교성과 외모를 뽐내던 엄마는 이제 제 곁에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죽고 그 유골이 제게 오면 꼭 해바라기 밭에 거름으로 뿌려야지,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평생 저를 어둠의 굴에 가둬놓았던 엄마, 아빠가 죽어서라도 해를 보는 꽃의 영양분이 되어 양지를 바라보았음 했습니다. 일종의 보복이라 하면 치졸한 보복심리였습니다. 이제 저는 제 새로운 가족(배우자가 될 남자친구)과 새로운 생활을 준비합니다. 힘들 때 먼저 연락하며 ‘피자, 치킨 시켜줄게. 놀러와.’ 라고 말해주는 따스한 친구도 생겼습니다. 여러 사람이서 집들이를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즐거운 경험들도 처음 해보았습니다. 병이 심해 영종도로 휴양갔을 때, 그곳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제가 나을까요?” 라는 제 간절한 물음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글쎄요.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 하신 적이 있었는데, 홍차넷에서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한강에서 한 회원 분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하고,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독서모임을 하고, 희노애락을 공유하며, 한 ‘동네’처럼 홍차넷을 느껴왔고 그곳에서 제가 새롭게 태어나고 자라는 걸 느꼈습니다. (덕분입니다. 꾸벅.) 이제… 엄마와 아빠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것을요. 해바라기 밭은 제 마음 속에 있으면 될 일이고, 엄마와 아빠는 알아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해바라기 밭에서 살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사실 전 남들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해보지 않은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이제야, 머리를 감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면 조금 놀라우시면서도 이해가 되실 거예요. 기초적인 살림살이부터, 제 자신이 누구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남들에겐 쉬운 게 제겐 어렵답니다. 그리고 늘 꿈꾸던 것, 이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만드는 것, 그를 위한 공부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도 도서관을 조금 일찍 나왔지만요. 금융수학 공부도 해보고 싶고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싶고 대중예술도 하고 싶습니다. 학원 한 번 제대로 못 다녀본 제게 과학 상자를 사주고 싶습니다. 전부 홍차넷 분들 덕입니다. 특히 이 좋은 공간을 만들고 관리해주신 토비님, 그리고 다들 각종 다양한 방식으로 이 따스함을 지키고 유지해온 분들 덕분이요. 어떤 사람은 서른 살에 태어나는가 봅니다. 저는 이제부터 멋지게 살아볼 테니, 지켜봐주세요. (AMA를 고민했는데, 아직 기복이 있고 대인공포도 있는 상황이라 더 확실히 회복되면 열어볼게요. 다들 감사합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24-03-12 07:4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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