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4/06/03 17:52:45
Name   카르스
Subject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이 나라의 사회구조적 변화를 해결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든 인상은
"낙관적 시나리오에는 못 미치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1대 국회 내 통과가 무산된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그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낙관적, 비관적 시나리오를 예로 들어보자면 
낙관적 시나리오: 21대 국회 임기 막판의 기적적인 타결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 전후)
vs  
비관적 시나리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있어 양쪽 의견을 좀처럼 못 좁히다가(예: 소득대체율 이견 5%p 이상) 21대 국회 내 통과 무산. 
양쪽 모두 책임이 커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갑갑한 상황.

실제 상황:  21대 국회 내 통과 무산. 여기까지는 비관적 시나리오로만 보이지만
1) 여야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까지 합의. 연금개혁 시급성을 강조하며 불발을 아쉬워하는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성과. 
2) 야권의 결단 있는 양보에도 불구하고 여권 일각의 반발로 무산되었기 때문에 여권의 책임이 주도적임. 나아가 정치권의 최소 한 축은 연금개혁 의지가 강하다는 희망도.

낙관적으로 보긴 어렵지만 마냥 절망스럽지도 않고, 희망의 씨앗은 많이 남아있는 일처리다.
 
연금개혁을 넘어 근래 사회쟁점화된 이슈들도 비슷하다.
이태원 사건(정치적 책임공방과 인터넷 음지의 악성컨텐츠를 제외한 다른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교사들 악성민원 사건(완전하지 않지만 부분적인 절차적 개선은 있었다)도 비슷한 식이었다.
완벽하다곤 못 해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의 훈련병 사망사고도 비슷한 수준으로 처리될 거고, 딱 그만큼 훈련 환경이 개선되겠지.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개짓거리와(여기까지 말하면 정치글이 되기에, 구체적 책임소재와 그 비율은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인터넷 음지에서 벌어지는 짓거리는 참 할많하않이지만, 
그 두 영역을 벗어난 현실의 일처리는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흘러간다.

단순 이슈를 넘어선 사회구조적 변화에 대한 대응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이한 낙관론을 정당화할 정도로 잘 돌아가진 않지만, 최소한 좌절이 정당화될 정도로 비관적이지는 않다. 

1) 저출산 고령화,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이민 유입: 한동훈이 말한 이민청은 없고 이민유입의 노동력 측면이 과도하게 강조된 문제는 있지만 
이민 유입을 정부가 거절하거나, 이에 반발하는 유의미한 시민운동이나 정치적 움직임이 있지는 않음. 이쪽으로 위험한 자유통일당은 다행히 원내정당 진출 실패.   
2) 코로나19 전후의 경제적 혼란 : 재정 관련해서는 R&D를 포함한 삭감빔에 극악의 세수진도율에 감세에 정말 할많하않. 
하지만 적어도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률의 관점에서 한은과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잘 하고 있음. 
3) 장애인 인권: 악명높은 지하철 시위는 서울시 대 전장연의 싸움으로 지지부진하게 흘러감. 대신에 해당 이슈가 환기가 되고, 성동구청장 정원오처럼 이동권 어젠다를 받아들이고 이준석의 반전장연 노선을 비판하는 정치인이 생겨나고, 과거에 비해 장애인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등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음.  
4) 성소수자 인권: 겉으로는 여야 모두가 대놓고 적대하거나 쉬쉬하는 문제적 행태를 보임. 하지만 물밑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음.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지역구의원 LGBT 탄생, 서울 퀴어 퍼레이드의 규모 확대, 처음으로 국회에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 임신한 레즈비언의 커밍아웃 등등. 타 선진국에 비해 느리긴 하지만 분명한 긍정적 변화. 
5) 탄소배출 감축: 1인당 배출량은 6년 전에 정점 찍고 현 정부에서도 감소하는 중. 한국의 절대적 1인당 배출량은 높은 수준이고, 정부의 배출수준 감축 목표가 타 선진국에 비해 약한 수준이긴 하나, 이 주제로 최소한 개선되어가는 모습은 보인다. 

등등 

복합적 도전 내지 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이 아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은 잘못된 비관임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일궈낸 부족한 성과를 인정하면서,
절망에 빠질만한 특정 이슈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부족한 성과를 확장하려는 실천의지로 옮기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적어도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은 잘못됐다고 말할 긍정적이 사회 변화를 보여왔으니까.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6-18 09:2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 추천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2 김비버 24/08/13 1248 13
1406 기타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270 30
1405 기타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110 34
1404 기타[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807 7
1403 기타[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509 12
1402 기타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272 13
1401 기타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113 8
1400 기타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329 33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561 28
1398 기타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2635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571 23
1396 기타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2624 29
1395 기타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305 29
1393 기타2024 걸그룹 2/6 24 헬리제의우울 24/05/05 1724 16
1388 기타잡담)중국집 앞의 오토바이들은 왜 사라졌을까? 27 joel 24/04/20 2928 34
1382 기타우리는 아이를 욕망할 수 있을까 22 하마소 24/04/03 2300 19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1557 8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1340 13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19 골든햄스 24/02/27 2448 56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873 7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911 69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 24/01/31 1694 10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4025 2
1351 기타안녕! 6살! 안녕? 7살!! 6 쉬군 24/01/01 2175 29
1348 기타만화)오직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것. 아트 슈피겔만의 <쥐> 1 joel 23/12/24 1934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