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2/12 14:10:38
Name   Obsobs
Subject   산후우울증에 대한 소고
[출처: 중앙일보] 대구 20대 주부, 생후 5개월 아이 창밖으로 던져 사망
http://news.joins.com/article/19527933

기사에 나온 주부는 평소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산후 우울증으로 인한 영아살해가 기사화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죽음이라는 사실과 사회가 기대하는 모성에 대한 통념이 합해져서 기사를 보는 이에게는 충격, 분노,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사건입니다.

DSM-5(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에서는 주요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의 세부진단으로 산욕기 발병형(peripartum onset, 한글 번역이 맞나 모르겠네요)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전 DSM-IV에서 명시한 산후 발병형(postpartum onset) 주요우울증 환자들을 보니 50%는 출산 전에 이미 주요우울삽화(major depressive episode)가 있었다고 하여 발병시점을 "임신 기간~출산 후 4주" 로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어의 익숙함 때문에 산후우울증이라고 적겠지만, 출산전부터 증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생각해주세요.

산후우울증은 일반적인 명칭이며 좀더 세분화 하자면 다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s, Baby blues)
: 출산후 겪는 우울감을 말합니다. 출산 후 85%의 여성들이 경험한다고 합니다. 일시적이며 대부분 2주 이내 호전이 됩니다. 우울감, 불안, 짜증, 기분변화 등이 증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오래 지속된다면 다음의 산후우울증을 생각해봐야겠죠.

2)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
: 3~6%(많게는 10~20%)의 여성들이 임신기간 및 출산 후 몇주(개월) 동안 주요우울삽화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울감 뿐만 아니라 의욕 저하, 신체증상(불면, 식욕저하, 집중력 저하, 피로, 기력저하), 인지증상(부정적 사고, 자살사고) 등을 동반하죠. 몇개월간 지속되다가 소실되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입니다. 심하면 자신도 문제지만 아이에게 방임, 학대, 영아살해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죠. 

3) 산후정신병(Postpartum psychosis)
: 산후우울증에 정신병적 증상(환각, 망상, 이상행동 등)이 동반된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이전의 우울/조울증 과거력, 조울증의 가족력, 초산부에 많고 총 출산의 1/500~1/1000에서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건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자료에는 산모의 0.1~0.2%라 하네요) 산후우울증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한 자살, 영아살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대부분은 입원해서 치료를 권장합니다.

산후에 경험하는 우울감을 딱 세가지로 칼같이 분류할 수는 없지만, 이 세가지를 기준으로 스펙트럼 상에 놓여있다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산후우울증을 보는 여러 시선들

 "예전에 어렵게 살 때는 이런거 없었는데 요즘와서 산후우울증이니 뭐니 하는거 보니 요즘 세대가 나약해서 그런거 아니냐"
: 과거 대가족사회의 경우에는 출산 후 양육에 대한 낮은 부담(돌아가면서 봐주니), 영유아에 대한 낮은 중요도(아이를 많이 낳았던 시절이니...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는 현대로 갈수록 높아졌죠),  등의 요인이 일종의 보호요인이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여기에다가 정신병 수준이 아닌 우울증은 병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사회문화적 분위기까지요) 현대사회의 경우 핵가족화(아이를 오롯이 엄마 혼자 돌보게 되어 양육부담이 가중), 경제적 부담(맞벌이의 부담), 지지체계의 부족 등의 요인 때문에 산후우울증이 더 부각이 되는 거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 애들 너만 키우냐. 모성이 어쩌고 저쩌고..."
: 태어난지 몇주 안된 아이 키워보시면 아시겠지만, 엄마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도 수시로 자고 깨는 아이에게 맞추어주는 것 자체가 힘든데, 거기다가 집안일까지 해야하니... 게다가 출산 전에 다 자기가 하던 일이 있을텐데 하루종일 아이만 보고 매달려있는 그 역할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맞벌이가 흔해지는 요즘은 더하겠죠. 그리고 아이도 아이 기질이 있고, 엄마도 엄마 나름의 성격과 기질이 있는데 이게 늘 100% 잘 맞지는 않습니다. 아이 양육하는 것이 편하고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육하는 일 자체가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도 잘 자고 잘 먹고 규칙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잘 먹지도 않고 쉽게 자지 않고 징징거리는게 일상인 아이도 있습니다. 엄마가 잘 맞추어줄 수도 있지만, 모성이라는게 화수분처럼 무한정인 것도 아니죠. 미디어가 '어머니'라는 존재에 부여한 '모성에 대한 기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만만찮은 스트레스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자녀 관계가 당연한 관계처럼 보여도 둘 다 생전 처음 보는 관계인데 그거 맞추기가 쉽겠습니까. 어머니들은 이때까지 쉽지 않은 일을 쉬운척 하며 해오신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산후우울증에 미치는 요인들

신경생리적 변화(호르몬 변화)
: 스트레스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HPA axis response는 다릅니다. 남자는 성취에 대한 스트레스에,  여자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더 스트레스 호르몬(cortisol)이 잘 분비됩니다.(지속적으로 높은 cortisol은 뇌의 해마(hipoccampus)를 손상시키며, 이는 우울증과도 연관됩니다.) 산후우울증에서 혈중 cortisol level이 높아져있다고 합니다. 성호르몬과의 연관성은 아직까지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도로 보입니다. 성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르테론)과 세로토닌(우울증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간의 관계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성호르몬과 관련있는 우울증은 임신, 폐경, 월경전 상태에서도 관찰되기 때문에 일률적인 어떤 관계를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고 있는 실정으로 보입니다.

심리사회적 요인
: 낮은 출산 연령, 불충분한 사회적 지지, 부부관계 불화, 낮은 사회경제적 상태, 친정엄마와의 나쁜 관계, 최근 불운한 인생 사건들, 원치 않은 임신, 임신에 대한 양가감정, 고용 불안정, 많은 수의 자녀 등이 산후우울증의 위험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정신질환을 설명하는데 있어 스트레스-유발 모델은 어떤 소인(유전적 소인, 신경생리적 소인, 심리적 소인 등)을 가진 사람이 스트레스의 유무(혹은 스트레스를 다루는 정도. 탄력성Resilience이라고도 합니다)에 따라서 정신질환이 발병한다고 봅니다. 심리사회적 요인의 유무/이 요인을 다루는 방법의 적절성 여부가 질환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치료 및 예방을 위한 노력

질환의 심각도, 위험 요인에 따라서 접근방법이 달라집니다. 심각도에 따라 약물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구요. 여러 심리사회적 요인들을 교정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리사회적 요인에 대해 접근하자면 환자 개인의 변화/가족 등 지지체계 확립/사회적 제도 개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점점 '가족'이 축소화됨에 따라서 기존 대가족의 기능이었던 양육에 대한 지식 전수, 양육 부담 나누기, 자녀 교육이 점점 사회/국가로 이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나 국가가 이런 기능들을 잘 대체하고 있느냐. 교육에 있어서는 그랬을지 몰라도(사교육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공교육이 자리잡긴 했으니깐요) 양육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미비한 것 같습니다. 산후우울증 예방을 위해 제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1. 출산휴가의 보장(남/여), 2. 육아휴직 보장(남/여), 3. 공적 보육 서비스의 확충 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지체계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남편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친정, 시댁으로 이어지는 가족들, 친한 이웃관계가 있겠네요. 아이 엄마에게 소위 말하는 '친한 언니들'이 주변에 있느냐 없느냐가 꽤 중요한 부분인거 같기도 합니다.

P.S.
[출처: 대구MBC] 아이 창밖으로 내던진 20대 엄마 영장

http://www.dgmbc.com/news/view2.do?nav=news&selectedId=193651&class_code1=030000&news_cate=
지역 방송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네요. 초산, 조울증의 과거력, 지지체계 부족... 볼수록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2-21 21:3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7
    이 게시판에 등록된 Obsobs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5137 34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317 33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959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196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2308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188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818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115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128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410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275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617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262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65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90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608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88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843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70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3023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2010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268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2077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285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839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