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6/03/02 19:07:17
Name   사슴도치
Subject   [괴담]그 날 찍힌 사진에 대해.
*이 글은 픽션입니다.*

이 이야기를 어디 가서 크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믿어 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도 조금 찜찜해서요.

몇 달 전,  경기도 외곽 쪽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습니다.

재개발 지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농촌도 아닌 애매한 지대였습니다. 밭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뒤로는 낮은 산이 이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해가 거의 지고 있었고, 주변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밭 한가운데에 허수아비들이 서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평범한 허수아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이상했습니다. 얼굴 부분이 짚으로 대충 묶인 게 아니라, 못이랑 나무 조각이 얼굴을 관통하듯 박혀 있었습니다. 어떤 건 망치가 그대로 꽂혀 있었고, 어떤 건 녹슨 못이 눈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더 이상했던 건, 허수아비 가슴에 작은 나무판이 매달려 있었는데, 거기에 붉은 글씨로 ‘저주’, ‘액운’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중앙에 서 있던 허수아비는 가슴에 낡은 흑백사진까지 달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남자의 얼굴엔 X자가 그어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도 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도 사진 소재로는 강렬하다고 생각해서 몇 장 찍었습니다. 플래시를 터뜨리니 짚 사이의 그림자가 더 또렷하게 살아나더군요. 한 10분 정도 촬영하다가, 괜히 더 있고 싶지 않아서 바로 차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카메라에서 파일을 옮기고 하나씩 확인하는데, 이상한 점이 보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구도와 다르게 찍힌 사진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찍은 기억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화면 속 허수아비는 제가 본 것보다 훨씬 가까이, 거의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찍혀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중앙 허수아비를 가슴 위쪽까지만 프레이밍해서 찍었는데, LCD 화면에 남아 있는 사진은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줌을 당긴 것처럼요. 저는 촬영 내내 단렌즈를 쓰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그 정도 크기로 찍으려면 한두 걸음 더 다가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표정이었습니다.
짚으로 대충 엮인 얼굴이라 분명 형태가 단순했는데, 사진 속 허수아비는 입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봤을 때는 단순히 짚이 삐져나온 정도였는데, 사진에선 크게 입을 벌려 소리치는 표정처럼 보였습니다. 못이 박힌 눈 부분도, 제가 기억하는 각도와 다르게 정확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촬영 시간 기록을 보니, 마지막 사진은 제가 그 밭을 떠난 뒤 12분 뒤로 찍혀 있었습니다. 그 시간엔 이미 차를 타고 국도에 올라와 있었을 때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만졌을 가능성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촬영 내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저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삼각대를 세운 적도 없습니다.
더 이상한 건, 그 사진을 다시 보려고 하면 가끔 썸네일이 깨집니다. 파일은 남아 있는데, 미리보기 화면이 잠깐 검게 변합니다. 마치 로딩하다가 멈추는 것처럼요.

혹시 이런 경험 해보신 분 계신가요?
사진을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삭제하는 게 나은 건지 고민 중입니다.

괜히 다시 그 장소로 확인하러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솔직히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6-03-17 07:5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 호에에엑 무셔엉!
  • 와 이걸 왜 읽어서 밤에 잠도 못자게ㅠㅠㅠㅠㅠ
  • 긴가민가해서 더 소름!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4263 11
1391 일상/생각방문을 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9 kaestro 24/04/29 4027 11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5072 11
1438 기타애착을 부탁해 - 커플을 위한 보론 (1) 소요 25/02/07 2825 11
1449 꿀팁/강좌스피커를 만들어보자 - 4. 재질과 가공 (완) 10 Beemo 25/03/17 2876 11
1458 기타코로나세대의 심리특성>>을 개인연구햇읍니다 16 흑마법사 25/04/15 2794 11
1484 기타취향이시겠지만 딥하게 이야기 좀 해봅시다 21 호미밭의파스꾼 25/07/25 3984 11
1526 경제빚투폴리오 청산 25 기아트윈스 25/12/26 1907 11
1537 정치/사회한덕수 4천자 양형 사유 AI 시각화 11 명동의밤 26/01/21 1921 11
1550 창작[괴담]그 날 찍힌 사진에 대해. 21 사슴도치 26/03/02 1503 11
1551 기타2026 걸그룹 1/6 5 헬리제의우울 26/03/08 746 11
70 꿀팁/강좌뉴스를 제대로 읽어보자(스크롤 압박) 16 벨러 15/09/18 8572 12
209 일상/생각어느 시골 병원 이야기 35 Beer Inside 16/05/28 8972 12
180 과학적록색맹과 Vitamin C 이야기 22 모모스 16/04/07 7950 12
207 역사와이프 팝니다 38 기아트윈스 16/05/21 10935 12
247 기타원어민도 못푸는 수능34번 문제? 34 Event Horizon 16/08/09 9644 12
269 과학양자역학 의식의 흐름: 월급 D 루팡 31 Event Horizon 16/09/22 10777 12
301 일상/생각11월 12일 민중총궐기 집회 후기입니다. 15 nickyo 16/11/13 6972 12
307 요리/음식청와대에서 구입한 리도카인은 뭐하는 물건인고? 17 모모스 16/11/23 11759 12
336 정치/사회대리모 문제 37 烏鳳 17/01/03 8668 12
352 꿀팁/강좌읍,면,동 주민센터 방문시 알아두면 좋을 팁. 6 레이드 17/01/23 8158 12
374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1) 배경지식, 용도결정 편 6 이슬먹고살죠 17/02/23 10221 12
375 과학외계 행성을 (진지하게) 발견하는 방법 11 곰곰이 17/02/24 9528 12
416 여행2017년 3월 여행기 1편 "그냥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을 뿐" 6 황금사과 17/04/22 7753 12
447 IT/컴퓨터탭 내빙(Tabnabbing) 보안 공격 10 Toby 17/06/07 10679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