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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2/28 15:14:21
Name   눈부심
Subject   매너의 진화


요즘에야 낯선 이의 얼굴에 대고 트림을 한다거나, 허락없이 엉덩이를 만진다거나, 침을 뱉으면 누구나가 예의없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우리가 어떤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어떤 건 예의바르고 우아한 행동 등이라고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건 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성취한 문명화의 결과입니다. 동물과 다름없이 행동하다가 천천히 예의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발전시켜 온 것들이에요. 혹자는 매너가 개인에 지워진 압박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옛날의 우리가 어떠했는지를 돌아 보면 미래의 우리는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도 보일 거예요.

만 오천년 전쯤 영국의 소머셋 동굴에 살던 인간의 생활은 이랬습니다. 당시 그 곳의 인류는 사슴류의 뼈로 만든 작살 같은 것을 도구로 사용했고 개를 길들이고 여가시간엔 생생한 벽화를 그리기도 했어요. 하도 오래 전이라 현대 우리와 골격도 다를 정도였는데 매너도 엄청나게 달랐죠. 사람들이 보는 데서 섹스를  아무렇게나 강압적으로 하고 인간을 먹기도 했어요. 적을 죽이면 머리를 잘라다 뇌를 꺼내 그 머리뼈를 제사 때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로마제국에 이르러서는 향후 1000년 동안 더 이상의 에티켓은 안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매너에 엄청나게 민감했었습니다. 상류층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을 하고 코털을 다듬고, 폭력을 제재하고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도 신경을 쓴 편이며 특히 구취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요. 구취를 없애겠다고 쓴 방법들이 엽기적이라 그렇지 남들에게 구취를 풍기지 않겠다는 의지는 컸어요. (굴껍질이나 뼈를 갈아 쓰거나 특정 종자의 말오줌을 이용해 구취를 없애려고 했다는군요.) 로마인들은 특히나 자기들을 문명의 인간, 올리브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북방지역 사람들을 야만인(독일계, 켈트계)이라고 구분 짓고 더더욱 위생과 매너에 철저했다고 합니다.

1152년 프랑스여왕 Eleanor Aquitaine은 영국 헨리 2세와 결혼을 했어요. 그녀는 남편을 위한 애정시를 썼는데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실제 의도는 신사로서 숙녀를 대하는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꼬집은 시라고 합니다. 숙녀들은 이 시를 배우며 군인들이 여성들과 함께 있을 때 마땅히 행동해야 할 양식에 더 높은 기준점을 두게 되고 이에 더불어 당시의 기조이던 기사도정신과 함께 매너가 진화하게 되죠. 쉽게 말해 성희롱을 일삼던 시대가 나아지게 된 거예요.

한편 1209년 영국에서는 Daniel of Beccles가 ‘문명인의 책’이라는 저서를 펴냅니다. 그가 저술한 공공예절에는 트림을 할 때는 천정을 볼 것, 적이 변을 누고 있을 때는 공격하지 말 것, 숙녀를 앞서 지나가지 말 것, 또는 숙녀의 옷을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지 말 것, 건물 복도에서 말에 오르지 말 것, 코 후비지 말 것 등이 있어요. 상류사회에서 남자들이 여성들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예의를 지키고 특히나 코를 파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공감대는 상당했다고 합니다.

1450년대 이탈리아 베니스의 무라노라는 지역은 화려하고 섬세한 유리잔으로 유명했습니다.(위키에 의하면 유리세공자들의 지위도 높아서 상류층과 혼인이 가능했고 유리세공기술이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나라를 떠나 살 수 없었다고 하네요.) 당시 3000명에 달하는 유리세공자들이 아주 섬세하고 장식적으로 화려한 유리세공기준을 고집했는데 유리는 원래 깨지기 쉬워서 조심해야 할 재질이긴 하지만 인간의 조심성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매너이고 그 마땅한 매너가 지켜지는 수준 하에서라면 유리세공의 세심한 기준이 지나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래요. 문명인이라면 유리잔 같이 깨지기 쉬운 물건은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 당연하며 조심성과 우아함을 요구하는 그런 행동은 성가신 것이 아니라 문명인이 따라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너가 중시된 풍조를 반영한다고요.  

매너와 우아함이 단순한 사회덕목이었다가 그 시대 상류사회의 유행이 되었어요. 포크도 널리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매너에의 집착은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헤게모니로 발전하게 되어 마침내 1750년 장 자크 루소는 <학문예술론>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의 에세이는 당시 서양의 사상에 혁명적인 물결을 불어옵니다. 그동안 매너를 지키고 문명인이 된다는 것에 열광하고 그런 행동양식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던 서양 사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본질이 야만적, 동물적이라고 본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루소가 최초로 길들여지기 전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본성의 순수함을 찬양했거든요. 사회적 매너로 광택을 내지 않은 자연인들이야말로 정직하고 솔직하며 위선에 가득찬 상류 파리지앵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했죠. 상류사회의 거만하고 가식적인 매너문화는 우리가 원시시대부터 지니고 있던 순수한 인간본성을 상실케 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유럽의 독자들은 인간본성에 대한 시각을 뒤집은 그의 저서를 읽고 깜짝 놀랍니다. 도덕주의자들은 인간이란 본래가 남을 해하고 무차별하게 성을 탐하고 위험하다고 보고 이를 억누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루소는 매너문화의 도가 지나쳐 위선이 되었으므로 가식을 벗고 자연과 원시의 정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요. 이런 루소의 사상은 현대에도 영향을 미쳐 시골에서 소박하고 털털하게 살면 루소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1827년 미국 뉴욕. 프랑스 역사학자 Alexis de Tocqueville이 미국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점을 책으로 엮어 냈는데 미국사람들의 다소 평등한 문화를 목격하고 미국이 근대로 접어들며 귀족주의가 자취를 감추고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유럽은 계급에 따라 매너문화도 확연한 차이가 났는데 미국에서는 귀하신 양반 앞에서는 모자를 벗는다던가와 같은 예의범절도 없고 가난한 상인인지 부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옷차림을 하고 모두들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거든요. 그치만 그는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유럽은 매너가 어떠냐에 따라 탁 까놓고 계급이 차이가 났던 이유로 그 문화가 잔인했지만 미국의 평등한 풍경은 자유롭게 평등한 분위기 속에 여전히 계급구조는 존재했기 때문에 또 다른 위선을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마지막에는 요즘 정상회담에서 세계 수장들이 만나면 타이도 안 매고 있고 하이 파이브도 하고 그런다고 하는 별 시덥지 않은 얘기가 나오네요. 끝.

+ 지난 금요일 회사에서 팀멤버 모두 한 그릇씩 먹을 것 가져와서 나눠 먹는 Potluck이란 걸 했어요. 저는 음식 먹을 때 입만 다물면 예의 다 차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옆 남자동료가 자기 접시 가지고 와서 먹는데... 정말 아무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입 꼭 다물고 우적우적 씹던 전 좀 아차..싶었어요. 이걸 또 소리가 하나도 안 나게 먹어야 하나 싶고. 막 열심히 씹으면 먹는 즐거움이 큰데 -.-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3-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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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 이 내용 엄청 재밌어요
  • 너무 재밌어요
  • 늘 좋은글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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