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5/06/14 14:40:30
Name   니생각내생각b
Subject   문학을 사랑하는 고등학생께

안녕하세요. 홍차넷에는 처음 글을 남겨봅니다.
간간히 와서 읽다 보니 모든 글들을 다 읽지는 못해서 뒤늦게 보게 된 글이 있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고등학생으로서' 라는 글을 보고 고전시가는 따분하기만 하다는 말씀에 안타까워서 짧게 적어봅니다.

1.
우선 이걸 보고 들어가시지요. 조선의 여류 시인 김운초의 시 중에 한편입니다.

寒梅孤着可憐枝 한매고착가련지
滯雨顚風困委垂 체우전풍곤위수
縱令落地香猶在 종령락지향유재
勝似楊花蕩浪姿 승사양화탕랑자


가느단 가지 끝에 매화 한 송이
끊임없는 비바람에 외로이 떠네
힘겨워 땅에 져도 감도는 향기
부랑(浮浪)한 버들꽃과 견주지 말라

저는 이 시를 보고
'매화는 눈보다 삼할 쯤 덜 희지만 향기라면 눈을 이기고도 남는다'는 다른 시의 구절을 떠올리고는 혼자서 감탄했습니다. 시정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구나, 라구요.  
저는 원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원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행간마다 내가 아는 잡지식이 와서 달라 붙을때 혼자만 아는 쾌감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그 즐거움은 고전을 읽을때 극대화 되는 것 같습니다.  


2.
또 저는 고문古文은 고문苦問이라 하시는 분들께 늘 말씀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시라' 고요.
우선 소리를 내어 읽어보라는 것은 위에 보여드린 시만 해도 아실겁니다 꼭 병음이나 한매~~~하는 창으로 읽지 않더라도 몇번 반복해서 읽어보면 라임과 플로우가 느껴지실겁니다. 한매/고착/가련'지', 체우/전풍/곤위'수', 종령/락지/향유'재', 승사/양화/탕랑'자', 이렇게요. 

이건 동서고금의 절창이라는, 지겹게 외우셨을 정지상의 대동강을 한번 보시면 더 쉽습니다.

우헐장제초색다 雨歇長堤草色多  비개인 제방에는 풀들이 파릇한데
송군남포동비가 送君南浦動悲歌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불러보네
대동강수하시진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강물은 언제나 다 마르려나
별루년년첨록파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눈물 뿌려서 보태는데.


2.
그리고 현대문학이나 시를 읽을때도 작가나 한 문장, 한 작품에 꽂히기도 하는 것이지요?
고전시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때 꽂히는 것에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건 내 감정에 취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헤칼트님께서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신 따분한 고전시가 중에 하나일 것이 분명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거듭해서 나오는 '유산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게 이상하게 고전시가 하면 계속 머릿속에 콕 박혀있는 구절이 하나 있거든요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粉粉雪이라


해석하기도 쉽습니다

버들, 위, 꾀꼬리, 날다 / 조각,조각, 금
꽃들, 사이, 나비, 춤추다 / 가루, 가루, 눈

그러니까,

버들 위로 나는 꾀꼬리 조각조각 금가루를 뿌린 듯
꽂들 사이 춤추는 나비 눈날리듯 노는구나 

라고 제맘대로 해석해도 됩니다.
파란 버들가지 사이에 노란 꾀꼬리가 반짝거리면서 흩어져있는 것, 각양각색의 꽃들 사이로 하얀 나비들이 눈가루처럼 흩날리는 광경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바로 봄의 풍경입니다. 또한 저에게 이 고전시가는 한량한 봄의 풍경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첫사랑의 간질거리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담임선생님이셨던 국어선생님께서 시험문제에 일명 빈칸채우기(!)를 낸다고 하셔서 이 긴 걸 다 외울 수밖에 없었을 때, 한창 외우느라 골 패고 있을때 교통사고처럼 치고 지나간 첫사랑이었거든요.  내 마음속에 금가루처럼 눈가루처럼 점점히 흩어져 콕 박혀있는 그 부풀어오르는 감정들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조금이나마 고전에 대한 원망을 좀 해소하셨는지요?
너무 저만 알아듣는 글로 썼나 싶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우선 적어봅니다.
물론 저도 일명 요즘의 일본소설 유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되는 감성이거든요-_- 
옛부터 김용을 모범으로 삼고 마이클 크라이튼을 지향점으로 알며 르귄여사를 존경하고, 한국 작가로는 성석제님밖에 몰라서(..는 오바라서 김훈, 박완서까지는 수비범위입니다?) 묻지마 구매를 일삼는 저로서는 특히나 더요.
또 현대 한국 문학에 대한 조예가 없어서 힘든 것도 있습니다. 전 역사고 문학이고를 막론하고 갑오개혁 이후에 일어난 모든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_-

 이 글이 편식쟁이의 편견을 깨주실 좋은 읽을거리들을 추천해주시는 멍석이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6-17 15:4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니생각내생각b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11 정치/사회한미 관세협상 요모조모 (1) 10 소요 25/11/17 873 15
    1510 일상/생각아빠랑 결혼만 안 했어도...! (남편: ???) 11 CO11313 25/11/16 1219 15
    1509 일상/생각내가 크던 때와, 내 아이가 크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 9 Klopp 25/11/12 912 12
    1508 기타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의 승리 연설문 7 골든햄스 25/11/07 1400 5
    1507 체육/스포츠JTBC 마라톤 후기 및 근황 7 Omnic 25/11/02 1059 14
    1506 문화/예술2025 걸그룹 5/6 8 헬리제의우울 25/11/02 925 20
    1505 기타반야심경과 금강경의 지혜로 입시 스트레스를 헤쳐나가는 부모를 위한 안내서 3 단비아빠 25/10/28 1130 6
    1504 기타요즘 단상과 경주 APEC 4 김비버 25/10/30 1131 13
    1503 기타3번째의 휴직 기간을 시작하며 2 kaestro 25/10/30 1012 6
    1502 일상/생각우리 회사 대표는 징역을 살까? 3 Picard 25/10/21 1742 14
    1501 정치/사회민속촌은 국립이 아니다. 10 당근매니아 25/10/20 1624 4
    1500 일상/생각여러 치료를 마쳐가며 2 골든햄스 25/10/19 1144 24
    1499 여행시안(장안) 혼여 후기 10 온푸 25/10/17 1397 10
    1498 경제보론-증여받은 현금은 과세되나? 13 택시기사8212 25/10/16 1292 9
    1497 경제증여시 비과세되는 경우를 ARABOZA 7 택시기사8212 25/10/15 1399 15
    1496 음악루저갬성 뮤지션의 내맘대로 계보 7 당근매니아 25/10/14 943 10
    1495 꿀팁/강좌스마트폰 한글 자판 가이드 9 반대칭고양이 25/10/09 1322 12
    1494 일상/생각(스압)첫글입니다. 육군 병과별 가족사진 모음 8 바지가작다 25/10/08 1176 7
    1493 체육/스포츠도쿄6대학야구리그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9 길을 잃다.. 25/10/07 950 7
    1492 기타육아 회복 시간 8 CO11313 25/10/03 1236 31
    1491 일상/생각매끈한 이상과 거친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기 2 하마소 25/10/01 1223 8
    1490 일상/생각15kg 감량하고 10km 달리기 완주하기까지 24 kaestro 25/09/22 1709 37
    1489 기타50개월 어린이(?) 유치원 적응기 11 swear 25/09/22 1311 15
    1488 기타노란봉투법 (안)간단 정리 2 당근매니아 25/08/26 1958 35
    1487 일상/생각염화미소와 알잘딱깔센의 시대 8 루루얍 25/08/21 2077 1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