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11/27 23:00:01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몽골제국은 왜 헝가리에서 후퇴했을까
많은 역덕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떡밥 중의 하나가 바로 1242년, 몽골군의 헝가리 후퇴예요. 신나게 다 깨부수면서 서진을 계속하던 무적의 군대가 헝가리 인근에서 어물어물하다가 한 1년 만에 후퇴해버렸는데, 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가 불분명하거든요.

역대로 많은 가설들이 제기되었는데 무엇하나 속시원하게 몽골군의 후퇴를 설명해준 건 없었어요. 가장 유력한 가설로는 1241년 12월 오고데이 칸의 사망 이후 벌어진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혹은 스스로 칸이 되고자) 사령관 바투가 후퇴를 결정했을 거라는 거예요. 바투는 칭기즈칸의 장자인 주치의 둘째 아들인데, 첫째 아들이 병약했으므로 사실상 칭기즈칸의 장손이나 다름없었지요. 따라서 계승권 문제가 벌어졌을 때 바투가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으로 급히 돌아갈 이유는 충분했다는 거예요. 이 가설의 문제는... 바투가 실제론 카라코룸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그냥 헝가리에서 후퇴하더니 러시아 언저리에서 자리잡고 킵챠크 칸국을 일궈버렸지요.

다른 가설에 따르면 몽골군이 애초에 헝가리 땅에 욕심이 없었다고해요. 단지 자기들을 배신한 어떤 유목민 부족을 응징하려고 했는데 얘들이 헝가리로 도망가서 보호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1241년에 이미 헝가리 동부를 쳐부수고 점령한 이상 이미 필요한 응징은 다 했으니 돌아간거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조조가 유비 잡으려고 손권 땅에 쳐들어갔다해도 적당히 공격하다가 "유비를 충분히 혼내줬으니 돌아가자"라고 할까요? 그래서 몇 가지 문헌적 증거가 있지만 이 가설도 나가리예요.

또 다른 가설은 몽골군이 겪었을 군사적 어려움에 주목해요. 초원에서 싸울 때와는 달리 유럽식 성벽과 요새를 돌파하는 건 기병 위주의 몽골군에게 어려운 미션이었을거라는 거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시 충분하지 못해요. 왜냐면, 똑같이 성벽과 요새로 무장한 헝가리 동반부는 이미 1241년에 시원하게 박살난걸요 'ㅅ'; 그 외에도 몽골군은 이미 공성병기 활용에 도가 튼 상태이기도 했구요.

또 또 다른 가설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교도로부터 서방세계를 지켜주... 이건 패스.

헝가리인의 타고난 호국상무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사즉생 생즉사의 각오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싸운 결과... 이것도 패스.

유목민족사에 있어 세계적 전문가 중 하나인 니콜라 디 코스모(Nicola Di Cosmo) 교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몽골군은 거의다 기병이고, 추측컨대 헝가리에 진입한 군대의 규모는 병력 13만, 말은 최대 50만두에 이를 거라고 해요. 그렇다면 말 먹이는 문제, 말이 원활히 이동하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어서 후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펀딩을 알아봤으나 이렇게 마이너한 필드에 돈을 팍팍 줄 재단은 없었어요. 없으면? 남의 밥에 숟가락을 얹어야지요 ㅋ

디 코스모 교수에 따르면 기후학(Climatology)은 요즘 가장 펀딩이 잘 되는, 돈이 펑펑 몰리는 분야래요. 장기 기후변화가 존재함을 증명하려는 측,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려는 측이 모두 돈을 많이 쏟아붓는 중이라 어지간해선 펀딩 걱정이 없대요. 그래서 기후변화관련 팀 하나랑 협업을 제안해서 성사시켰나봐요. 그 결과 나온 논문이

http://www.nature.com/articles/srep25606

요고예요. 이제 대충 이걸 요약해볼께요.



돈을 부어서 재구성한 당시 유럽지역 기온변화표예요. 빨간 별이 헝가리 지역이구요. 약 4 년간 평균이상의 온난한 기후였는데 하필 1242년에 뙇 추워져버렸어요. 이 지역에 관해 남아있는 기록 중에 1241년 겨울이 좀 추운데다 눈이 많이 왔다고 기록한 문헌이 있는데 그 것과 일치하는 결과래요. 그렇다면 하필 1241년 겨울에 몽골군이 헝가리 서부로 진공했는지 이해할 수 있대요. 이 지역은 다뉴브강이 복잡한 수계를 이루고있어서 기병이 통과하기 쉬운 지역이 아닌데 이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면 필시 기병이 건널 만큼 수계가 다 얼어붙었을 거래요. 야호 진군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이 해는 그냥 추웠을 뿐 아니라, 엄청 습한 해기도 했어요. 녹색이 습한 날씨, 갈색이 건조한 날씨를 나타내요. 1242년은 예년과 다르게 몹시 습한 해인 게 보이시나요? 강설량이 높았다는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주지요. 추운 겨울에 눈이 잔뜩 왔다가 봄이 오면서 죄다 녹았을 거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지역이 배수가 무척 안되는 지역이래요. 한 150년 전인가 200년 전인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치수공사가 제대로 시행되기 전까진 뻑하면 강물이 범람했고, 비나 눈이 많이 오기라도하면 물이 안빠져서 곳곳에 웅덩이와 늪지가 생겼대요. 위의 자료에 따르면 1242년 봄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구요. 헝가리 평원 전체가 진흙탕이 된 상태. 풀이 자라야할 땅이 다 질척질척해져서 봄이 왔는데 풀이 제대로 안자라는 상태. 그래서 50만두에 이르는 말들이 끼니도 못챙겨서 비실비실한데다 여기저기가 진창인 덕분에 기동성조차 많이 떨어진 상태가 된 거지요.

이때 상황을 악화시켰던 몇 가지 요인이 더 있었는데

1. 몽골군은 헝가리의 봄이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작년에 점령한 동헝가리의 농경지를 그대로 냅뒀어요. 갈아엎어서 초원으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장기적으로 점령을 할 요량으로 그냥 남겨놓고 기초적인 행정조직도 짜놨대요. 만약 여길 다 갈아엎어뒀더라면 말 먹일 곳이 충분했을지도 모른대요.

2. 몽골군은 말에게 건초를 안먹인대요. 그냥 놔먹이지. 만약 건초형(?) 군대였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먹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대요.

3. 1242년을 시작으로 헝가리에 대기근이 들었대요. 사람이 많이 죽은데다 기후가 갑자기 춥고 습해지면서 그 해의 곡물산출량이 확 떨어졌다는 거지요. 이젠 말 뿐 아니라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할 판이 됐어요.




디 코스모 교수는 여기에 더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정황상의 증거를 몇 가지 더 제시해요.

1. 당시 실제로 헝가리가 늪지가 되어서 몽골군이 고생했다는 증언이 하나 있대요.

2. 그래서인지 몽골군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충분히 배수가 잘 되어서 길이 좋고 풀도 잘 자랐을 산지를 통해 퇴각했어요. 위 짤 가장 아랫쪽에 파란 점선으로 표시된 곳이 몽골군 퇴각로예요. 평지로 안가고 일부러 산지를 골라서 멀리 돌아가지요?

3.  게다가 실제 고고학적 조사 결과 1240년대 중반부터는 헝가리지역 집터가 평균 5cm가량 더 높은 곳에 형성된대요. 1240년대 초반 홍수-늪지대화의 영향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해요.

이 결론을 다 정리한 짤이



요고예요.

물론 기후가 다는 아니었겠지만 이런저런 요인에 더해서 기상악화도 후퇴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정도가 디 코스모 교수의 결론이에요.

어때요? 설득력 있나요? :)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2-12 11:15)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 내용이 알차고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 정말 잘 정리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발라톤물과 마트라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헝~가리 만세~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기타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56 31
1417 기타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38 31
1416 기타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10 20
1415 기타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41 18
1414 기타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36 36
1413 기타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54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56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7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21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80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18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45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83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600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43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10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88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86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789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63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81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30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81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1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53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