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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07 21:18:05
Name   뤼야
Subject   이탈리안 식당 주방에서의 일년(2)
아침에 일어나서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빠진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네요. 식당 주방이라는 데가 바쁠 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하거나, 들어온 주문을 제대로 쳐내지 못하면 일이 두배는 더 많아지죠. 바쁜 시간 주방인원 전체가 받는 프레셔는 어마어마합니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조그만 실수에도 민감해지죠. 칼이 날아다닌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예민해집니다. 불위에 얹어진 음식은 촌각을 다투며 상태가 달라지므로 예민해지지 않으면 최상의 상태로 음식을 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입니다.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문지가 연달아 인쇄됩니다. 주문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큰소리로 주문의 내용을 외칩니다. 셰프부터 설거지 하는 사람까지 방금 들어온 주문이 무엇인지 들어야합니다. 여러명의 조리사가 화구 앞에서 팬을 잡습니다. 주문이 밀려드니 설거지 하는 막내를 부릅니다. 가장 하기 쉬운 파스타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설거지가 주업무지만 틈틈히 어깨너머로 조리하는 법을 익혀두었다가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면 팬을 잡을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과외지도를 받듯이 누가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것? 기대하면 안됩니다. 요령껏 익히고 기회를 봐서 질문해야합니다. 질문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배우려는 자세가 너무 부족해도 눈밖에 납니다.  

예를 들어 "49번(주문지) 까르보나라잡아!"라고 하면 팬을 꺼내고 재빨리 포마스 오일을 두르고 분량의 베이컨, 양송이, 양파를 넣습니다. 너무 많이 넣어도 너무 적게 넣어도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셰프의 눈은 무섭습니다. 자기 일이 아무리 바빠도 밑엣것들이 제대로 하는지 못하는지 금새 알아챕니다. 같이 들어온 주문이 여러개일 경우 같은 시간에 조리를 끝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앞서 나온 파스타는 식고 불어서 맛이 없어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셰프의 책임이 됩니다. 주방장은 팬도 잡고, 주문이 꼬이지 않도록 인력을 배치하고, 떨어져가는 식재료를 채워넣도록 지시하고, 서빙하는 시간을 조율합니다.

그때 팬을 잡은 막내가 실수를 저지릅니다. 파스타를 불에서 내리기 바로 직전 계란 노른자를 넣어서 재빨리 휘저어 크림소스와 완전히 섞이도록 해야 하는데 팬이 무거워서 꾸물대다가 노른자가 너무 익어버렸습니다. 소스에 노릇노릇하게 계란 노른자 덩어리가 보입니다. 주방장이 보곤 한마디 합니다. "버려!" 막내는 의기소침해집니다. 언제 다시 팬을 잡을 기회가 올지 아니면 영영 설거지만 하다가 끝날지 앞이 캄캄합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실력이 없으니 할 수있는 일이라곤 설거지밖에 없습니다. 개수대가 터져나가도록 쌓인 설거지가 막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려있던 주문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홀에 나갔던 접시들이 주방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셰프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맡은 일을 잘해낸 사람들은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버립니다. 누구누구라고 일일히 지명하지 않아도 누가 남아 잔소리를 들어야하는지 다들 알고 있습니다. 내게 쏟아지는 잔소리가 아니라도 열심히 새겨듣습니다. 다음에는 더 잘하리라! 마음으로 칼을 갑니다. 봐주는거 없습니다. 인정사정 없습니다. 그런건 가족끼리 지인끼리 오순도순 맛없어도 맛있게 먹는 음식에나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주방에서의 실수로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그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아무 불평도 없이 다시는 그 업장을 찾지 않습니다.

주방에서 참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보고서와 씨름하거나, 좋은 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론을 가르치던,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부였던 제게 요식업계는 제가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인생의 격전지였습니다. 이탈리아 현지에 요리 유학을 다녀온 셰프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설거지로 시작해 제법 실력을 인정받아 여기저기서 콜을 받는 요리사가 된 청년도 있었고, 배우가 꿈인 연극영화과 출신의 절대미각 청년은 틈틈히 영화이론을 공부하기도 하고, 자기가 출연한 단편영화를 제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정작 그는 요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는데, 그가 만든 파스타는 셰프가 만든 것보다 더 맛이 있었다지요.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홀이 마감을 하고, 손님상에 나갔던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더 큰 설거지 거리들이 쌓입니다. 육수를 끓였던 들통, 각종 조리도구, 수십개의 팬, 식재료를 담았던 바트 도대체 설거지가 끝나는 일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설거지가 많습니다. 주방바닥 물청소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땀에 절은 조리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집에 오면 새로 생긴 화상자국과 재료를 손질하다 칼에 밴 자국까지 상처투성입니다.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온 몸이 아프니까 오히려 통증에는 무감각해집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재미있습니다.

완벽하게 간을 맞춘 파스타에 후추와 파슬리를 살짝 뿌리고 가니쉬를 얹는 순간에 느껴지는 희열, 맛있다는 칭찬이 들어왔다는 전언, 새콤함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토마토 소스, 바질의 신비로운 향, 루꼴라가 비싸지면 열무를 대신써도 아무도 모를거라는 농담, 봉골레에 들어간 바지락이 예쁘게 입을 열어 바글바글 소스와 함께 끓을 때 나는 맛있는 냄새, 서로다른 맛과 향을 가진 치즈, 반짝반짝하게 닦아둔 팬들, 색색의 접시들, 예상한 만큼 부풀어오른 반죽 그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소리없이 타오르는 화덕의 불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적외선 온도계를 쏘아봅니다. 섭씨 320도. 아직 피자를 넣어서는 안됩니다. 온도가 더 올라서 높은 온도에서 재빠르게 구워내야 맛있는 피자가 완성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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