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6/20 20:31:52
Name   SCV
Subject   내가 만난 스승들 #1 - 1994년의 예언가.
안녕하세요. 간만에 티탐 게시판에 글을 써보네요.
쓸 이야기는 많은데 게을러서 & 바빠서(?) .. 미루다가 오늘 야근하다 심심해서 써봅니다.

저는 살면서 일복 만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하고 있는데요,
오늘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 살면서 좋은 스승을 참 많이 만났구나 싶어서 여러분들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스타트는, 제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 중 하나인데요...
1994년, 초등...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입니다.  편의상 A선생님이라고 할게요.
A선생님은 무뚝뚝한 인상에 말수가 좀 적으신 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혜안을 가지고 계셨던 분입니다.
서울 경기도 아니고 그 시골에서 말이죠.

1. "너희 세대는 발표(요즘으로 치면 PT)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세대일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그 시절에 조별과제(...) 를 통해서 주제를 공부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한 후 발표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요즘처럼 컴퓨터도 프로젝터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전지에다가 각종 매직과 색연필을 동원해서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했는데,
    아버지를 통해서 얻어온 접었다 폈다 하는 지시봉... 을 써서 대 히트를 쳤던 기억이 나네요.

2. "너희 세대는 보고서(지금으로 치면 소논문)를 체계적으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잘 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문헌에서 인용구를 인용해서 쓰는 방식과 참고문헌 기재 방식 (보고서 맨 뒤편에 책 이름, 저자, 출판사, 쪽 수를 적게 하셨음) 을 가르쳐 주셨고
     간략하게나마 논문의 형식 - 제목 / 조원들 이름 / 요약 / 서론 / 본론 / 결론 / 배운 점 / 참고문헌 순서로 작성하는 법 - 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참고문헌으로 쓰려고 집에서 각자 백과사전을 맡은 분야별로 가져와서 교실 뒤에 꽂아두고 썼던 기억이 나네요.
     다들 손으로 쓰던 시절에 집에 486과 HP Deskjet 500이 있던 저는 프린터로 뽑아가서 히트를 쳤던 기억이 ㅋㅋ

3. "앞으로는 모든 것이 컴퓨터로 연결되는 시대가 온다" 라고 하시면서..
     책 공부도 좋지만, 컴퓨터를 배워라. 컴퓨터를 쓰지 못하면 공부도 일도 하기 어려운 세상이 온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로 요즘으로 치면 IoT ?  물론 1991년 빌게이츠의 컴덱스 기조연설을 본 저로서는 (PC LINE 신년 부록 VTR... 무려 VTR 테잎을 줬....)
     이미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컴퓨터를 중심으로 밥솥도, 문도, 자동차도 다 연결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말씀에 다들 그저 넋놓고 듣고만 있었죠.

4. 이건 혜안하고는 다른 이야긴데 인상 깊어서..
    제가 학교폭력의 피해자(...) 였던 시절, 반의 일진이었던 녀석이 "이번 시험에서 컨닝시켜주지 않으면 널 때릴거야" 라는 말을 듣고 고민하던 차에 방과 후 선생님에게 몰래 가서 말씀드렸드랬죠. 선생님께서 "내가 알아서 할테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거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날.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시험 감독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 선생님도 별 수 없나보구나 하고 체념하며 일진에게 답을 제공하려던 순간, 갑자기 선생님께서 고함을 치십니다.
    "야 SCV !!! 너 어디 시험 중에 옆자리로 고개를 기웃거려? 너 이리 앞으로 나와."

    순간 다들 얼어붙었고, 저는 시험지를 들고서 그날 하루종일 교탁에 앉아서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일진 녀석은 똥씹은 얼굴이 되었고, 성적이 개판이 되었죠. 압박에서 벗어난 저는 성적이 올랐고,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짐작했던 친구들은 있었겠지만, 다들 그저 보여주다 걸렸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죠.

    졸업하고  10년쯤 후에  교장선생님이 되셨고, 교장선생님이 되신지 불과 3년만에 정년퇴임을 하셨네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아 생사조차 알기 어려운데.. 그간 무심했던 제자를 기억이나 하고 계실런지.


또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으면 보따리 풀겠습니다 ㅎㅎ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7-03 08:15)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8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97 역사현대에도 신분제도는 남아있을까? 10 메존일각 19/04/21 5421 11
489 일상/생각익숙한 일 13 tannenbaum 17/08/08 5419 18
1014 기타30개월 아들 이야기 25 쉬군 20/10/05 5411 47
302 기타서원철폐 21 피아니시모 16/11/16 5408 4
950 일상/생각자아를 형성해준 말들 30 ebling mis 20/04/21 5404 32
854 역사"향복문(嚮福門) 이름을 바꿔라!" 고려 무신정권기의 웃픈 에피소드 메존일각 19/09/01 5401 13
978 체육/스포츠깊게 말고 높게 - 축구력과 키의 관계 22 다시갑시다 20/07/03 5395 9
326 일상/생각. 14 우웩 16/12/19 5394 21
327 역사러일전쟁 - 제독의 결단 6 눈시 16/12/21 5393 5
787 의료/건강어떻게 의사는 사고하는가 - 2. 진단=사후확률Up & 진단의 두 축 3 세란마구리 19/04/03 5392 10
317 일상/생각이것은 실화다. 10 성의준 16/12/06 5392 11
622 기타나는 비 오는 아침의 엄마 12 짹짹 18/04/23 5384 42
927 의료/건강세계 각국의 중국과의 인적교류 통제 상황판 (업데이트끝. 나머지는 댓글로) 8 기아트윈스 20/02/28 5380 17
244 정치/사회성별과 투표참여, 그리고 정치지식과 선거관심도 9 난커피가더좋아 16/08/04 5378 11
341 일상/생각[회고록] 나 킴치 조아해요우 19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1/09 5375 18
506 일상/생각메론 한 통 2 Raute 17/09/04 5373 13
1056 IT/컴퓨터주인양반 육개장 하나만 시켜주소. 11 Schweigen 21/01/24 5367 40
595 일상/생각따듯한 난제 10 Homo_Skeptic 18/02/23 5365 35
363 일상/생각살아온 이야기 26 기쁨평안 17/02/11 5365 38
399 일상/생각쪽지가 도착했습니다. 36 tannenbaum 17/03/27 5356 24
903 일상/생각[펌글] 좋은게 좋은거라는 분위기가 세상을 망쳐왔다 21 Groot 19/12/27 5353 8
944 정치/사회해군장관대행의 발언 유출 - 코로나 항모 함장이 해고된 이유. 4 코리몬테아스 20/04/07 5346 11
1243 과학"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해고당한" 뉴욕대 화학 교수에 관하여 64 Velma Kelly 22/10/06 5341 27
456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1 - 1994년의 예언가. 22 SCV 17/06/20 5341 18
865 여행몽골 여행기 - 1부 : 여행 개요와 풍경, 별, 노을 (다소스압 + 데이터) 8 Noup 19/09/26 5338 1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