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7/07 20:30:13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중국 상고음(上古音)으로 본 '한(韓)'의 유래
전 요즘 윌리엄 박스터 센세의 워크샵에 참석중이에요. 이양반은 2014년에 로랑 사가 선생과 함께 공저한 (2014) 책으로 유명해진 분인데, 중국 상고시대 (대략 기원전 1200~200) 음운학의 권위자라고 보시면 돼요.

오늘 워크샵에서 나온 이야기가 지금 -n으로 끝나는 한자음의 많은 부분이 예전엔 -r이었다는 거였어요.

많은 증거가 전/후한 즈음의 기록에서 오는데 예컨대 다음과 같아요.

한나라의 기록자들은 흉노의 우두머리를 선우(單于)라고 음차했어요. 그런데 중세 중국어음 (대략 7세기~11세기)으로 이걸 읽으면 dzyen-hju가 돼요. 뎬휴? 여튼 여기까지는 의심의 여지가 음슴. 이걸 한나라 때의 음으로 재구축하는 데는 약간의 가정이 필요하지만 여튼 꽤 강력하게 *dar-ɦwa 였다고 논증할 수 있대요. 그러면 다르후와 내지는 다르ㅋ와 정도가 돼요. 이건, 역시 추측의 영역이지만, 높은 확률로 중세 몽골어 다루가 (daruɣa)와 관련이 있을 거래요. 다루가는 총독, 지도자 같은 뜻이래요.

또 사기의 대완열전에 보면 저기 서쪽의 중동 지명 중에 환잠(驩潛‎)이라는 곳이 나와요. 이게 중세 중국어음으로는  xwan-dzjem 콴뎸 정도. 여기까진 의심의 여지가 음슴. 이걸 상고음으로 읽으면  ㅋ화르쪰( *xˤwar-dz[e]m) 정도가 돼요. 곧 오늘날 우리가 '호레즘' 정도로 부르는 ‘콰라즘(Khwārazm)’이 그곳이랍니다. 참고로 영어의 알고리즘(Algorithm)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대요 ('알 콰라즈마').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개발자 여러분은 코드 짜고 회의할 때 알고리즘이란 말 대신 '알환잠'이라고 해봅시다. 상사에게 사랑받을 듯.

같은 방식으로 韓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도 추적해볼 수 있어요. 설문해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글자는 우변에서 뜻을, 좌변에서 음을 따온 형성자예요. 좌변은 당시에 지금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썼는데 倝 요고 비슷해요. 지금은 '간'이라고 읽는 군요. 이 '간'이 소리를 구성하는 구성성분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글자의 상고음은 '카르 (*[k]ˤar-s)' 비슷한 소리가 나요. 카르 뒤에 붙은 -s는 이게 동사로 쓰일 때의 어미변화니 여기선 무시하셔도 됨.

여튼 韓의 상고음을 이런저런 증거를 통해 재구성한 결과가 '가르(*[g]ˤar)'래요.

Baxter센세는 이 재구축의 결과를 보강해줄 증거로 일본측 사료에서 한반도 남부의 여러 나라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 거의 일관되게 '가라(kara)'라는 말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한이나 가라나 사실 한반도 주민들이 자기네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을 주변국에서 알아서 음차해간 결과라는 거지요. 그 소리는 아마도 주변국 사람들 귀에 가라, 가야, 카라, 가르, 뭐 이런 식으로 들렸을 거구요.

여기까지가 박스터의 분석이고 이 이하로는 그냥 제가 해본 거예요.

같은 방식으로 마한, 진한, 변한 같은 이름을 상고음으로 읽어보면 뭔가 되게 순한국말처럼 들려요.

馬韓은 므랔가르 *mˤraʔ [g]ˤar
辰韓은 데르가르 *[d]ər [g]ˤar
弁韓은 브론가르*C.[b]ro[n]-s [g]ˤar)

마지막 브론가르의 경우 앞에 붙은 C는 뭔지 몰라도 자음이 하나 더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는 기호예요. 그러니까 이건 크브론가르일 수도 있고 르브론가르일 수도 있고... 알 수 없음.

고려 高麗 구려 句麗 등으로 불렸던 고구려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을 시도해볼 수 있어요.

구려의 경우는 크로레, 코레, 고레  *[k]ˤ(r)o [r]ˤe-s
고려의 경우는 코레 *Cə.[k]ˤaw [r]ˤe-s 정도인데 저 앞에 붙은 대문자 C에서 볼 수 있듯 그 앞에 어떤 자음이 더 붙어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어쩌면 코코레였을지도 모름.

어떤 경우에도 '가르'랑 많이 달라보이진 않아요. 그렇다면 '가라'는 현대한국어의 '나라'에 대응하는 일반명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어요. 우리가 외국의 나라이름에 습관적으로 '~나라'라고 붙이듯 (당나라 한나라 명나라) 고대 한반도 거주민들도 자기들이 'XX나라'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그래서 므랔나라 아래에 50여개의 나라가 있었고 데르나라 아래에 20여개의 나라가 있었고 르브론나라 아래엔 30여개의 나라가 있었고 저 북쪽엔 자기들을 그냥 '나라'라고 하는 좀 힘쎈 애들도 있었고 그랬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자꾸 가르가르 록타르 오가르 하니까 와우가 막 땡기네요.

제발 한국인이면 호드합시다.

-끗-




참고자료:

여러가지 고대음 재구축 결과를 종합해둔 사이트로는

http://starling.rinet.ru/

요론게 있구요.

Baxter&Sagart (2014)의 재구축 결과는

https://www.google.co.uk/url?sa=t&rct=j&q=&esrc=s&source=web&cd=1&ved=0ahUKEwjN4azYiPfUAhVJJ1AKHX3kBkgQFggoMAA&url=http%3A%2F%2Focbaxtersagart.lsait.lsa.umich.edu%2FBaxterSagartOCbyMandarinMC2014-09-20.pdf&usg=AFQjCNFeoegsJx1QV_4xpyTtw8ESkwcpzw&cad=rjt

여기에 무료로 공개되어있어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7-17 08:09)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9
  • 호드는 춫천 르브론가르에서 킹의 향기가...
  • 오.
  • 新 한민족 참역사: "환족의 기원은 사실 드레노어 대륙을 지배하던 갈색 피부의 유목민 집단."
  • 브론가르... 브론그.. 브론즈.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19 과학과학적 연구의 동기부여는 시대를 어떻게 대변하는가? 30 다시갑시다 19/06/18 6213 37
891 창작은밀한 통역 3 작고 둥근 좋은 날 19/11/23 6215 23
777 일상/생각영국은 섬...섬... 섬이란 무엇인가? 38 기아트윈스 19/03/04 6218 26
150 정치/사회생생함, 그 이상의 효과 38 마스터충달 16/02/05 6226 17
1110 과학예측모델의 난해함에 관하여, .feat 맨날 욕먹는 기상청 47 매뉴물있뉴 21/07/25 6230 42
839 역사일반인이 이해하는 이순신의 거북선 형태 2 메존일각 19/07/30 6234 12
669 일상/생각진영논리에 갇힌 모 토론회 참석자들에 대한 소고 12 烏鳳 18/07/26 6236 18
140 일상/생각세습되는 우리의 술자리들 10 nickyo 16/01/10 6240 8
481 여행나의 호텔 기행기 - Intro & 국내편 (1) 16 Dr.Pepper 17/07/25 6242 6
911 경제파이어족이 선물해준 세가지 생각거리 6 MANAGYST 20/01/19 6243 10
662 의료/건강발사르탄 발암물질 함유 - 한국 제네릭은 왜 이따위가 됐나 11 레지엔 18/07/12 6253 23
453 정치/사회대학원 교육과 학습에 관한 연구 리뷰 22 호라타래 17/06/15 6254 10
1035 게임체스에 대해 배워봅시다! [행마와 규칙] 29 Velma Kelly 20/12/02 6254 20
436 체육/스포츠김성근의 한화를 돌아보다. 31 kpark 17/05/24 6264 6
572 역사무굴제국의 기원 26 기아트윈스 18/01/06 6264 24
609 일상/생각저는 소를 키웁니다. 26 싸펑피펑 18/04/02 6264 48
468 역사중국 상고음(上古音)으로 본 '한(韓)'의 유래 38 기아트윈스 17/07/07 6269 19
330 역사러일전쟁 - 완. 포츠머스 조약 4 눈시 16/12/26 6279 7
670 여행(스압, 데이터 주의) 오키나와 여행기 ~첫째 날~ 9 소라게 18/07/27 6279 17
736 기타이야기의 마무리 44 지금여기 18/11/27 6288 50
798 문화/예술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고택의 현황과 활용상 문제 22 메존일각 19/04/24 6295 11
50 일상/생각그냥 12 어느 멋진 날 15/07/22 6301 1
574 문학내 것이 아닌 것에 낄낄대며 울기. 메도루마 슌, 물방울 4 quip 18/01/08 6302 8
783 의료/건강어떻게 의사는 사고하는가 - 번외. ROC와 카파통계량 9 세란마구리 19/03/22 6303 11
91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6303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