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도나 네팔 같은 영적인 나라를 다녀오면 지금까지의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바뀔까 기대하지만 그건 ‘군대가면 사람된다’는 말만큼 드문 일이다. 내 경우를 보면, 작년 네팔에 한 달간 있었는데 가기 전에도 나무와 호수, 숲을 좋아하는 자연인이었고, 다녀와서도 복잡한 도시의 야경과 호텔을 사랑하는 차가운 도시녀자였다.
한달이라고 하지만 삼 주는 자원봉사 일정이었고 후반 일주일만 휴가로 계획했다. 가능하다면 3박4일이나 4박5일 정도의 트래킹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안나푸르나의 휴양도시인 포카라에 도착한 날부터 크게 앓아서 내 휴가 일정은 요양이 되었다. 호텔방에서 혼자 정신을 잃어가는데 이번 여행으로 SNS를 통해 연락하게 된 한국에 계신 분이 현지에서 사람을 보내줘서 약을 먹을 수 있었고 - 놀라운 SNS의 순기능! - 그 분이 소개한 게스트하우스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일주일간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면 호수 산책을 하고 갓 나온 빵을 사서 돌아오고 책을 읽고 게스트하우스 가족을 도와 식사를 차리고, 탈탈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장을 보고 이웃집 행사에 놀러가는 생활을 했다. 손님들이 오고 가고…네팔이라 그런지 인도에서부터 장기여행을 한 사람도 있었고, 현지인처럼 산 속 마을에서 한달씩 살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고,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이 핫한 장소를 최대한 많이 둘러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밤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인생에 가장 멍하고 만족스런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일정이 끝나갈 무렵 기운을 차리자 안나푸르나 기슭에라도 가보고 싶었다.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지만 몇 시간밖에 안 걸리는 코스니 좀 멀리서부터 천천히 올라가서 1박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마음이 생기면 움직여야지. 그래서 8월말 우기의 숲으로 혼자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축축한 나무의 기운에 둘러쌓이자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산을 탈 때의 리듬감이 살아났다. 그 동안 수많은 외지인이 스쳐 지나갔을텐데도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길을 알려줬다. 그렇게 몇 개의 숲과 마을을 지나 안개에 휩싸인 오스트레일리아 캠프에 오후 2시경에 도착했다. 양말을 벗자 양 발목에 500원짜리보다 더 큰 멍 두 개와 그 가운데 선명한 상처가 보였다. 네팔의 우기는 거머리로 유명한데 다행히 두 마리만이 내 피를 쪽쪽 빨아먹고 사라졌나보다. 비수기라 사람도 없고 짙은 안개에 휩싸여 바로 코 앞도 안 보이는 그 곳에서 챙겨간 책을 보고, 장기 투숙 중인 일본인 요가 수련생 겸 작가와 롯지 직원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이 곳이 해발 2050m로 한라산보다 높아 내가 태어나 가본 곳 중 제일 높은 곳이라는게 신기했다. 밀도높은 안개로 엄청나게 습했다. 으슬으슬 추워서 핫팩을 세 개 뜯어 이불 속에 넣고 잠들었다.
이윽고 새벽이 되자 롯지 직원이 문을 두들겨 깨웠다. 아직 어둡지만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푸르고 깨끗한 하늘을 배경으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하얗고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뾰족하게 끝이 갈라진 삼각형 모양 설산, 마차푸차레는 포카라에서 볼 때보다 훨씬 가까워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인간이 감히 저런 곳을 오르겠다고 도전했단 말인가. 인간이란 진정 오만하고 불경한 존재였다. 신을 믿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신성함이 느껴졌다. 시시각각 해가 뜰 수록 다양한 색채로 반사되는 산봉오리를 홀린듯히 바라봤다.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일어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날은 흐려지고 어제처럼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캠프가 이제 첫 시작인 다른 숙박객들과 다르게 난 이제 내려가면 그만이므로 천천히 아침을 먹고 다른 롯지 까페에 구경가서, 밀크티를 마시며 그 집 고양이랑 놀다가 어제 올라온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내려갈 때 힙색만 맨 한국 중년 남성과 어깨 너머까지 올라오는 큰 배낭을 맨 가이드 겸 포터, 이렇게 2명으로 구성된 트래킹 팀을 만났다. 네팔의 3대 공용어가 네팔어, 영어, 한국어라는 말을 입증하듯 포터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짐의 차이도. 말로만 듣던 것과 눈으로 본 것은 차이가 커서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내 스스로 내 짐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스스로 걷는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과 효율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산코스는 바로 내려가는 길이라 짧았다. 나는듯히 가볍게 내려와 버스를 타고 포카라 호숫가로 되돌아왔다.
한번 산에 들어가니 숨겨진 유전자가 발현된 것처럼 참을 수 없었다. 아쉬웠던 나는 다음 날도 전망대까지 걸어가겠다고 포카라 뒷 산을 올랐다. 혼자 산을 타는게 익숙한 나는 별로 겁이 없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한국으로 출발해야 하는 날이었다.
돌아오면서 언젠가 안나푸르나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안나푸르나를 한 바퀴 돌아 걷고 또 걷겠다고.
그래서 스쳐간 여행객들이 여러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전해준 이야기들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물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프로젝트에 장기 출장에 이직 준비에 정신없었고, 올해는 이직한 직장 적응과 진로 고민으로 어느 정도 잊고 있었다. 엊그제 출장 숙소의 로비 서가에서 소설가 정유정씨가 쓴 네팔 여행기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꿈결같은 지명들을 늘어놓았다. 마낭, 바훈단다, 쏘롱라패스, 묵티나트, 카크베니, 고레파니, 푼힐…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내가 두고온 곳들이다. 당장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준비는 할 수 있겠지. 작년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같이 갈 사람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아침일찍 출발해 이른 오후에 숙소에 도착한다. 산 속이라 밤도 일찍 내려앉아 책을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 긴 밤 같이 간 사람과 대화를 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다.
내가 전적으로 돌보지 않아도 되는 대등한 사람. 되도록이면 동성, 혹 이성이라도 연인 관계는 아닐 것. (충분히 안 씻고 더러울 자신이 있지만 그 모습을 연인에게 보이는 것은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 언젠가. 하지만 너무 길게 보진 말자. 갈 수 있을까? 가야지. 어렵게 보면 모든 일이 어렵지만, 쉽게 보면 또 쉽게 풀리기도 하는게 사람 일이니까. 이미 내 안에 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 방 벽에는 사람들에게 받은 풍경 사진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고, 이야기가 적힌 종이와 짤막한 정보가 담긴 메모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지금은 빈약하지만 점점 그 방에 필요한 것들이 쌓일 것이다. 그저 바란다면 그 방에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기 전에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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