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10/08 12:16:02
Name   알료사
Subject   나라가 위기인데 연휴가 길어서 큰일이야
토비님께서는 저의 도배를 막으시려면 탐라 글자수를 늘려주십시오..

.
.
.

탐라 복습하다가 나라가 위기상황인데 연휴기간 길다가 뭐라 하는 꼰대들에 대한 얘기가 있네요 ㅋ

저희 직장에 딱 그런 어르신? 이 한분 계십니다. 60대초반이신데 저를 볼때면 그런 말씀을 하셔요.

그럴때면 저는 뭐 마음에 들어하실만한 대답을 해 드립니다.

이번에도 "그러게요.. 열흘이나 넘게 쉴 필요가 있는지.. 지겹기만 하고 좋지도 않을거 같은데요.." 하고 맞장구 쳐 드렸죠 ㅎ

동성애 관련해서도 한말씀 하시더라구요.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동성애 퇴치해야 한다나?

그리고 동성애 페스티벌이나 기타 관련 집회는 허용하면서 외 동성애 반대 집회는 허용 안해주나고 퉅툴대시더라구요.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또 저는 적당히 응대해 주죠.

"그들이 서로 좋아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성애 인정 안하면 교양 없는 사람 취급받던데요? (그 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뉘앙스로, 그러면서 그런 대세 의견을 알림ㅋ)  저는 2000년대 초반 왕의남자가 히트친거나 기타 드라마에서 동성애 미화시키는것도 크다고 생각해요. (역시 그런 미디어의 악영향이라는 뉘앙스로, 어쨌든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걸 알림)"

그런 식으로 제가 호응을 해드리니까 더 이야기 상대로 저를 찾으시는거 같아요.

시간 날때면 저를 찾아와서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 3D업종 피하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 그러면 저는 "맞아요 제가 김치냉장고 공장에서 철야 뛰던 시절에는 말이죠.. 어쩌구 저쩌구..." 하고 썰 풀어 드리고..  "그런데 제 친구들 중에 놀고 있는 놈들이 있는데 걔네들은 나름 이런이런 사정이... 어쩌구 저쩌구... "하고 사족을 달죠.

신기하게도 일반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떡밥이 될만한 일들에 대해서 두루두루 전형적인 각 떡밥들에 대한 꼰대틱한 의견들을 하필이면 저에게 제시를 하십니다. 눈팅이라도 하시는건지.. ㅋ 같이 말씀 나누실만한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이 있는데도 굳이..

지난 대선때 어느 후보 찍었냐고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구요. 제가 "문재인 찍으려 했는데 당선 확실한거 같아서 심상정 찍었다" 라고 하니까 당황해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때까지 저와 나눴던 대화들을 돌이켜보면 도저히 있을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셨겠죠.. 뒤통수 맞은 기분이셨을거에요..

거기에 근처에 있던 제 또래 동료가 "도대체 홍준표 찍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수가 없어" 하고 비아냥거렸을 때, 제가 거기에 대해서 별다른 반대의견을 내비치지 않자 거의 배신감까지 느끼셨을수도..

저는 다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삶에 정치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박정희가 다시 살아 돌아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지금 시대에 박정희가 그때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을 리도 없고, 박정희가 대통령 종신제를 추진하는 일보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 찾아오는 진상고객 한 명을 처리하는일이 우리한테는 훨씬 중요하다."

당연히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제 진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그 어르신의 배신감을 최대한 달래드릴만한 말이(홍준표 찍은 유권자를 비난하는 동료를 반박할 말이) 저에게는 그것 뿐이었습니다.

좋은 분입니다. 헌신적으로 일하셔요. 직원식당에서 밥 먹으려고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왔다가 어떤 상황 터지면 식판 내던지고 달려가시는 분입니다. 퇴근시간 걸릴때즈음 일 맡게 되어 그것이 그날의 <저녁 있는 하루>를 파괴해버린다 해도 마다 않는 분이세요. 고객들이 데려온 아이가 울면 매점에서 마이쭈 사다주며 달래주시고, 거동 불편한 노인들 보면 가시는 곳까지 부축해 드립니다. 모르긴 해도 60 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을겁니다.

그분을 말로 이기고 싶지 않아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고, 그 생각을 바꿔야 세상이 바뀌기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분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전 그냥 지금 이 세상에서 살래요. 안바꿔요.

그런데 전 확신합니다. 만약에 제가 동성애자라서, 어느날 제가 그분께 사실 저 동성애자에요 하고 커밍아웃한다면 그분은 분명히 저에게 용기 잃지 말고 살아가라고 좋은 세상 올거라고 격려해주실거라는걸. 그분이 세상의 모든 동성애자를 증오해도 저만은 아껴주실거라는걸.

제가 만약에 해고당해서 그분께서 평소 말씀하시던 <젊은 사람들이 마땅히 일해야 할 3D업종>에서 일하게 된다면, 그분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지금 이 직장에서의 제 경험을 활용할만한 <편한>직장을 알아봐주실 거라는걸.

저는 성소수자나 외국인 노동자 등 취약계층과 잘 어울려 살고 싶은 만큼이나 그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우리 기준에서 꼰대라고 불릴 만한 분들과도 똑같이 어울려 살고 싶어요.


* Toby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0-27 12:42)
* 관리사유 : 추천글로 선정되어 복사합니다.



25
  • 공감.
  • 춫천
  • 역시 섹시하신 분
  • 아버지하고 대화하면서 느낀 것을 이 글에서 봅니다.
  • 조사 하나하나까지 공감합니다.
  • 멋지네여
  • 그러게요. 다같이 잘 살아야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17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5 메아리 18/10/16 7480 24
765 일상/생각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 10 The xian 19/01/31 7308 24
827 과학블록체인의 미래 - 2018 기술영향평가 보고서 2 호라타래 19/07/03 6984 24
91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6305 24
971 정치/사회그냥 이야기 12 Schweigen 20/06/16 4388 24
1013 일상/생각나는 순혈 오리지날 코리안인가? 50 사이시옷 20/10/05 6206 24
1054 일상/생각내가 맥주를 마실 때 웬만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칙 52 캡틴아메리카 21/01/21 6390 24
1058 문학오늘부터 5월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20 순수한글닉 21/02/04 4798 24
1065 정치/사회수준이하 언론에 지친 분들을 위해 추천하는 대안언론들 20 샨르우르파 21/03/03 7940 24
1098 기타한국 만화의 이름으로. 고우영 수호지. 15 joel 21/06/15 5339 24
1101 역사왜 작은 어머니를 숙모라고 부를까. 24 마카오톡 21/06/30 5277 24
1116 정치/사회동북아에서 급증하는 무자녀 현상 (부제: 초저출산이 비혼'만'의 문제인가?) 23 샨르우르파 21/08/13 5827 24
1152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3752 24
1241 기타대군사 사마의 감상. 나관중에 대한 도전. 10 joel 22/09/30 3568 24
1246 과학이번 카카오 사태에 가려진 찐 흑막.jpg 코멘터리 18 그저그런 22/10/25 4846 24
1305 창작서울에 아직도 이런데가 있네? 7 아파 23/06/01 4196 24
1332 일상/생각나의 은전, 한 장. 6 심해냉장고 23/09/30 2478 24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2200 24
210 기타아들이 말을 참 잘합니다. 37 Toby 16/05/30 6424 25
361 꿀팁/강좌사진찍으러 갈까요? 22 사슴도치 17/02/07 7761 25
428 일상/생각'편 가르기'와 '편 들기' 17 소라게 17/05/12 6390 25
501 철학/종교정상영웅 vs 비정상영웅 93 기아트윈스 17/08/26 10006 25
525 기타나라가 위기인데 연휴가 길어서 큰일이야 26 알료사 17/10/08 6774 25
540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1편 19 droysen 17/10/30 9187 25
620 일상/생각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26 탐닉 18/04/22 6594 2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