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04/23 20:00:21
Name   짹짹
Subject   나는 비 오는 아침의 엄마
길어요. 털고 싶어서 길게 써 봅니다.

오늘은 너무 힘든 날이었어요. 아침에 내리는 장대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애기 어린이집은 저기 옆 단지에 있고... 평소라면 칭얼거리는 애기 번쩍 들어다가 유모차에 묶어서 바로 배달하고 서둘러 출근했을텐데 장대비는 유모차 안의 아기도 유모차 밖의 저도 비 맞을 수 밖에 없거든요.

오늘따라 카카오택시는 잡히지도 않아요. 바로 옆 단지로 가는 거니 다들 거부했나 봅니다. 예상했지만 막상 아무 택시도 안 오니 답답합니다. 시간은 이제 지체하면 답이 없는 시간.

안 가겠다는 녀석 기저귀 갈고 바지 입히고 세수는 대충, 운동화 신기고 우산 들리고 나가니 장화 안 신었다고 징징. 다시 집에 들려서 장화 신기니 벌써 출근길이 늦었습니다.

바닥에 벚꽃 자루들이 붉으마니 떨어져 있는데 애기 걸음은 벚꽃 자루만치도 못 옵니다. 물웅덩이 있다고 힘들다고 하네요. 번쩍 들어서 일단 오십미터 저 앞 벤치까지 갔어요.

  이미 제 코트랑 바지는 다 젖은 상태. 한 손엔 우산과 아이 가방과 제 가방,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애기가 가장 좋아하는 연두색 우산. 너무 힘이 들어 비에 젖은 벤치 위에 잠깐 멈췄어요. 저는 애기가 두 발이 다 올라간 줄만 알았어요.  엉거주춤 서 있다가 바닥으로 만화처럼 꽝 넘어지더라고요. 다행히 엉덩이로 떨어져서 별 이상은 없어 보였지만 아기 옷은 이미 젖어서 벚꽃 나부랭이들이 잔뜩 묻고.

한 번 두 번 세 번은 쉬어서 횡단보도 두 개와 계단 두 군데를 올라가 어린이집으로 들여 보내는데 성공했어요. 아침은 결국 집에서 못 먹여 바나나 하나랑 오렌지 주스 하나, 편도선염 약 넣어 놓은 어린이집 가방이랑 같이 던져 주고요. 인사는 이쯤이면 제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들렸을거에요.

  이미 늦었어요. 미친 X처럼 비 맞으며 뛰는데 눈에서 왈칵 나오는 눈물을 못 참겠더라고요. 잠깐 멈춰서도 됐을텐데 급한 마음에 멈출 수가 없었어요. 눈물도 계속 나오는데 멈출 수가 없어요.

오늘처럼 비가 야속하고 고마운 날이 없었지요. 우산 덕분에 눈물을 가리고 비 덕분에 눈물을 숨겼어요.


--------------------
  오후에 어린이집에서 징징징징징 하는 애기 데리고 저녁을 준비합니다. 비타민 달라, 옷이 젖었다, 이 책 싫다, 쥬스 달라, 아빠 보고 싶다, 엄마 그만 하고 이리와, 트럭 보여줘, 징징징징

[울!지!마!]

소리 지르고 말았어요. 아기는 놀랬는지 눈이 똥그래져서 저를 봅니다.

또 눈에서 눈물이 나와요. 아기 앞에서는 안 울려고 하는데 오늘은 눈에서 비가 옵니다. 고무장갑을 벗고 눈물을 닦는데

-엄마, 이제 징징 안 할게.
=엄마도 울고 싶을 때가 있어... 미안해...
-엄마, 나 이제 징징 안 한다고 했는데 왜 울어?
=그러게 말이야.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5-07 19:0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2
  • 엄마는 추천
  • 존중을 담아 조용히 추천합니다
  • 엄마는 너무 힘든 위치인것 같아요..ㅠ
  • 엄마 힘내세요!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게시판에 등록된 짹짹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02 일상/생각쉽게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맞춤법. 25 에밀 17/03/30 5542 10
862 일상/생각서울 9 멍청똑똑이 19/09/19 5542 32
1208 일상/생각손절의 시대 24 nothing 22/06/01 5542 52
815 경제바뀌지 않는 국책사업의 이면 5 쿠쿠z 19/06/11 5544 19
823 일상/생각매일매일 타인의 공포 - 안면인식장애 28 리오니크 19/06/25 5545 23
689 일상/생각입방뇨를 허하기로 했다 8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8/31 5547 9
772 일상/생각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without even being asked) 10 기아트윈스 19/02/19 5548 64
399 일상/생각쪽지가 도착했습니다. 36 tannenbaum 17/03/27 5550 24
885 일상/생각사진에 대한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 :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16 사슴도치 19/11/08 5557 19
944 정치/사회해군장관대행의 발언 유출 - 코로나 항모 함장이 해고된 이유. 4 코리몬테아스 20/04/07 5576 11
903 일상/생각[펌글] 좋은게 좋은거라는 분위기가 세상을 망쳐왔다 21 Groot 19/12/27 5578 8
1049 요리/음식평생 가본 고오급 맛집들 20 그저그런 21/01/03 5578 17
341 일상/생각[회고록] 나 킴치 조아해요우 19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1/09 5580 18
622 기타나는 비 오는 아침의 엄마 12 짹짹 18/04/23 5581 42
317 일상/생각이것은 실화다. 10 성의준 16/12/06 5592 11
327 역사러일전쟁 - 제독의 결단 6 눈시 16/12/21 5593 5
1278 정치/사회인생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 22 아이솔 23/02/13 5597 18
326 일상/생각. 14 우웩 16/12/19 5599 21
865 여행몽골 여행기 - 1부 : 여행 개요와 풍경, 별, 노을 (다소스압 + 데이터) 8 Noup 19/09/26 5599 11
1002 요리/음식토마토 파스타 맛의 구조와 설계 그리고 변주 - 1 21 나루 20/08/26 5599 14
854 역사"향복문(嚮福門) 이름을 바꿔라!" 고려 무신정권기의 웃픈 에피소드 메존일각 19/09/01 5600 13
456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1 - 1994년의 예언가. 22 SCV 17/06/20 5601 18
506 일상/생각메론 한 통 2 Raute 17/09/04 5604 13
595 일상/생각따듯한 난제 10 Homo_Skeptic 18/02/23 5605 35
244 정치/사회성별과 투표참여, 그리고 정치지식과 선거관심도 9 난커피가더좋아 16/08/04 5607 1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