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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0/10 00:38:25수정됨
Name   호타루
Subject   쉬어가는 페이지 - 음악으로 이어 보는 근대 유럽사의 한 장면
이 글은 제가 연재 중인 유럽의 각 나라 소개에서 못다한 이야기 내지는 쉬어가는 페이지입니다.



지난번에 체코 이야기를 했었죠. 원래 그 글에서 사실 체코의 음악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이야기를 뒤져봐도 안토닌 드보르작 이외에는 생각이 안 나서 포기했던 바가 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음악을 키워드로 해도 은근히 이야기가 여기저기 잘 엮여요.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만 섭렵해도 유럽사의 또다른 단면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도 멀리 또는 깊이 들어갈 것도 없이 기냥 유명한 곡들 몇몇만 파도 고구마 줄기 캐듯이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요.

가능하면 차 한 잔 하시면서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음악 이야기니 음악 영상 링크가 빠질 수가 없잖아요. 간만에 클래식 음악도 들으시면서 마음의 안정을.



체코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잠깐 눈독을 들이다가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간 기간이 있었는데,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통치 기간입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30년 전쟁의 시작을 알렸지만... 정작 그 도화선의 불을 당긴 보헤미아는 몇 년도 못 가서 페르디난트 2세 휘하의 요한 체르클라에스, 일명 틸리 백작에게 제대로 박살이 났었습니다. 그 이후로 보헤미아 왕국은 완벽하게 합스부르크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그게 어림잡아 한 3백 년 가량을 끌었죠.

보헤미아에서 수많은 신교도들이 박해를 당한 지 약 150년이 지난 때, 체코에서 한 인물이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요제프 벤첼 안톤 프란츠 카를 그라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Johann Josef Wenzel Anton Franz Karl, Graf Radetzky von Radetz). 아따 이름 길다... 프라하 인근의 시골촌에서 태어난 그는 체코의 금수저...까지는 아니고 한 동수저쯤 되는, 그래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양친을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다가, 할아버지도 곧 돌아가시게 되죠. 그리고 그는 오스트리아군에 장교로 입대합니다. 마치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스러운 시작이네요.

사실 유럽사치고 크고 작은 전쟁이 올 스톱이었던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만, 이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는 다들 아시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유명한 인물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바로 나폴레옹이죠.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명백히 프랑스에 적대적인 입장이었고, 따라서 라데츠키는 그의 커리어 대부분을 대(對) 프랑스 전쟁, 즉 나폴레옹 전쟁에서 쌓게 됩니다.

그는 전형적인 용장(勇將) 타입이었던 것 같아요. 프랑스 혁명 전쟁 당시(1796) 자신이 모시던 상관이었던 장 피에르 드 볼류(Jean Pierre de Beaulieu, 벨기에 - 당시는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 출신)를 후사르(그 기병대 맞습니다)를 이끌고 구출해낸 전력도 있고, 대령 시절에 참가했던 마렝고 전투에서는 무려 다섯 발의 총상을 입기도 하는 등 전쟁터에서의 용기로 이름을 날렸다는군요. 그런 인물이었던 만큼 어쩌면 합스부르크 가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는 영예는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라데츠키 폰 라데츠 장군의 초상화. 어깨로부터 내려오는 붉은색 장식띠와 왼쪽 가슴에 붙은 큰 사이즈의 훈장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군 최고의 영예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Militär-Maria-Theresien-Orden)입니다.

뭐 이런 인물이었으니 승진은 예견된 것이었고 그는 나이 40에 별을 달고, 곧 자기 이름으로 된 부대를 지휘하게 되는 큰 영예를 안습니다. 후사르 제5연대, 일명 라데츠키 후사르가 그것이죠. 참모부에서 군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만 자금 부족으로 인해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그 자리를 사임했다가 곧 전선으로 복귀하는데, 나폴레옹 1세를 상대로 전술적인 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다가 마침내 1814년에 파리에 다른 군주들과 함께 입성하는 영광을 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데르 1세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죠.

이후 한동안의 평화가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군제 개혁을 주장했던 라데츠키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많은 정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거의 예편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그렇지만 황제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기병대장으로 승진 후 요새 감독을 맡기는데요... 이 때 유럽 전체에 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유럽 전역에 또다시 전쟁의 바람이 불고, 라데츠키는 극적으로 전선에 복귀하게 됩니다.

나이 70세에 육군원수의 자리에 오른 그는 여전히 군제 개혁을 열렬히 시행하고자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의 생각이 너무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그 때문에 나이 82세에 벌어진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운동에서 꽤나 고전했습니다만, 그래도 그는 성공적으로 독립 운동을 진압하고, 황실의 피가 아닌데도 북부 롬바르디아의 부왕의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참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죠.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독립을 방해한 인물입니다만 그는 적에게는 무자비했어도 무기만 들지 않으면 굉장히 관대하게 대했고, 통치하는 동안 이탈리아 북부의 민심을 합스부르크 쪽으로 돌리려고 무진장 애를 쓴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유화적인 정책을 폈고 이 덕분에 이탈리아에서도 아주 나쁜 인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는군요. 뭣보다 운이 좋았어요. 그게, 이미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이상, 그리고 특히 무장한 반군에게는 무자비했던 장군이었던 만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감정의 골은 이미 깊어져 버렸고, 결국 10년이 지난 후에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라데츠키는 이 반란이 일어나서 그간 자신이 애썼던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래서 이탈리아 측에서 보아도 소위 말해서 '이미지 관리'가 가능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게 조금 쓰면서 거시기한데, 우리 나라로 치면 대충 홍사익쯤 되는 인물일 겁니다. 완전히 입지전적인 인물하며, 식민지 내지는 외부 영토의 깡촌 출신하며, 철저하게 국가에 충성해서 반란을 진압한 장면하며... 그래서 좀 묘한 기분이 들어요. 식민지배를 겪은 우리 나라로서는 마냥 찬양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세운 군공이 크고 그런 점에서 명장이었으며, 북부 이탈리아의 부왕으로 있으면서 보여준 통치능력 또한 고단수였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죠. 어쩌면 그 자신은 한 번도 자기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신민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랬겠습니다만...



복잡한 감정과 길어진 역사 이야기는 이쯤에서 자르고 이제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죠. 우선 라데츠키라는 이름에서 다이렉트로 떠올릴 음악이 있습니다.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엄청 유멍한 곡이죠.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Johann Strauss Sr., Radetzky March). 이 라데츠키 행진곡이 작곡된 게 1848년입니다. 초연 1848년 8월 31일. 사실 이 당시는 여전히 라데츠키 장군이 반란을 진압하는 와중이긴 했는데... 이 와중에 큰 피해를 입었던 피로스의 승리라도 승리는 승리였던지라(쿠스토자 전투, Battle of Custoza) 양측에게 꽤 큰 심리적 효과를 주었거든요. 이 승리는 뒷날 제1차 이탈리아 독립 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초석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셌고, 그래서 이 전투를 기려서 라데츠키 행진곡이 헌정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라데츠키 장군은 반란 진압 이후 10년을 더 살았던 터라 당연히 이 곡이 작곡되었을 때는 쌩쌩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었죠. 그래서 그는 살아생전에 자기 이름으로 된 행진곡을 수여받는 엄청난 영예를 누립니다.

게다가 곡이 흥겨운 것에서도 보이시겠습니다만 이게 또 오스트리아 전역에 대 히트를 쳤어요. 어찌나 대박을 쳤던지 거의 오스트리아의 비공식 국가(國歌)쯤으로 인식이 되는 수준이었고, 고위 관료들이 이 곡이 연주될 때 박수치고 발을 구르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장 제가 올린 영상에서도 그렇죠. 저 영상은 전설적인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1987년 비엔나의 신년 콘서트에서 지휘한 것인데, 청중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죠.

하지만 이걸 아니꼽게 보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세르비아입니다. 아 이게, 오스트리아가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벌여서 세르비아를 차지하려고 했고 세르비아도 오스트리아가 오스만보다는 낫다면서 이에 호응을 했는데... 둘이 강화를 맺으면서 세르비아가 오스만 투르크령으로 확정되어 버립니다. 이 때문에 졸지에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고, 그래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감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사라예보 사건 등으로 인해서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의 감정의 골은... 그말싫. 그런고로 오늘날 세르비아에서는 이 곡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이 곡이 연주되어도 최대한 얌전히, 박수 소리조차 내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일이 많다는군요.



군대와는 딱히 관련은 없지만, 이 시기 이 라데츠키 행진곡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에서 역시 초대박 히트를 쳐서 거의 비공식 국가의 자리에 오른 곡이 있습니다.



급하신 분들은 1분 58초부터. 바로 그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Johann Strauss Jr.,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영상은 파비오 루이시 지휘의 빈 관현악단 연주인데요(2010), 곡의 분위기가 라데츠키 행진곡과는 꽤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이 곡이 처음 나온 게 라데츠키 행진곡으로부터 18년이 지난 1866년입니다. 이 당시는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서도 털리고 프로이센에게도 박살나고 하여간 동네북 신세였던지라 전국적으로 분위기가 우울했던 시기였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의 곡이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되기를 바랬다는군요. 그리고 이 곡이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단, 실패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저냥 애매한 정도)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오스트리아의 국민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죠.



앞서 라데츠키 장군이 후사르를 이끌었다고 했었죠. 후사르는 쉽게 말하면 경기병입니다. 이 경기병와 관련된 곡이 역시 위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같은 해에 첫 선을 보입니다.



급하신 분들은 2분 26초부터. 바로 프란츠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Franz von Suppe, Leichte Kavallerie).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연주네요. 이게 사실, '서곡'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곡이 아니라 일부분입니다. 오페레타라고 오페라보다 좀 사이즈가 작은 게 있는데 그 오페레타의 이름이 '경기병'이었고, 그 서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기병이 바로 후사르를 말하는 것이구요. 근데 폰 주페 입장에서는 좀 불행하게도 그의 대부분의 곡들은 유명하지 않은데, 유독 이 서곡 하나는 엄청나게 히트를 쳐서 요것만 잘라서 여기저기에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시기에 라데츠키 장군의 관대한 정책으로 극렬 독립파였음에도 별 문제 없이 본토에서 잘 살아갔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라데츠키 장군이 통치하던 시기에 쓴 곡을 소개해 드리죠. 근데 오메 이건 두 시간짜리네요. 하긴 뭐 오페라니까...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Giuseppe Verdi, Rigoletto)입니다. 1851년에 초연. 원래는 훨씬 더 과격한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쓱 들여다보고는...



...요런 과정을 거쳐서 좀 순화되었다는군요. 그래도 충분히 막장 드라마라는 게 함정이지만... 하여간 이 리골레토 역시 대성공을 거두어서, 안 그래도 국민적 인기를 끌던 베르디의 명성을 한층 더 높이는 중요한 작품이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오페라가 공전적인 히트를 치게 된 중요한 곡이 있다네요. 저도 듣고서야 아 이게 리골레토의 작품이었어? 했습니다. 3분짜리니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시간은 안전합니다. 안심하고 즐겨주십시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릅니다. 라 돈나 에 모빌레(La Donna E Mobile). 번역하면 "여자는 변덕스러워" 정도 되겠습니다. 들으면 딱 아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곡인데 하고 감이 오실걸요? 특히나 20대 아재 여러분들은 더욱. 모 마트의 CM송으로 편곡되어 쓰인 바가 있죠.



하나 더 소개할게요. 역시 들으면 "아 이거!" 하고 반색하실 노래입니다. 근데 이게 누구 작품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쉽지 않으실걸요?



역시 파바로티가 부릅니다. 그 유명한 주세페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Giuseppe Verdi, Brindisi)!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삽입곡인 이 곡 역시 아아아아아아주 유명하죠. 갑자기 술이 확 땡기네! 참고로 이탈리아에 브린디시라는 철자까지 똑같은 도시가 있기는 한데 도시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리스 어에서 유래했다나 뭐라나. 이 오페라도 1853년 그러니까 라데츠키 장군 통치기에 쓰인 오페라입니다. 역시 주세페 베르디의 몸값을 높이는 데 일조한 오페라이기도 하죠. 다만 검열이 빡빡하던 시기의 곡이라서 이것도 좀 여기저기 알아서 컷트했다고...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주어는 없습니다, 어 택배가 왔네? 당신 누구야! 읍읍 뭐 이랬던 거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미스캐스팅으로 인해 초연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합니다.



무슨 워3의 체인 라이트닝 내지는 힐링 웨이브마냥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게 퍽 재미있어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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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gr21.com/?b=8&n=66140 아이슬란드
http://pgr21.com/?b=8&n=66380 알바니아
* 아이슬란드와 알바니아는 제가 홍차넷 가입하기 전에 적었던 글이라 부득이 옆동네 글로 링크합니다.

https://redtea.kr/?b=3&n=7851 크로아티아
https://redtea.kr/?b=3&n=7966 안도라
https://redtea.kr/?b=3&n=8061 에스토니아
https://redtea.kr/?b=3&n=8192 몰도바
https://redtea.kr/?b=3&n=8296 체코

* Toby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10-25 17:0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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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부터 헤드폰 뒤집어쓰고 흐뭇해하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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