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 19/03/04 21:19:29수정됨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영국은 섬...섬... 섬이란 무엇인가? |
어떤 철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쓰는 단어들 (사실은 '개념들')은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고 오직 다른 단어 (개념)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과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배가 아님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요, 인간이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짐승이 아님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요, 종교인이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가 세속인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섬' 역시 그런 상대어예요. 섬은 오직 '뭍'과 관련해서만 섬이 돼요. 제아무리 바다에 둘러싸인 땅이라고 하더라도 그 땅을 섬이라고 불러줄 뭍사람이 없으면 그건 섬이 아니라는 이야기. 호주 사람이랑 얘기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호주인은 자기들이 섬사람이라고 생각 안해요 ㅋㅋㅋㅋ 호주는 대륙이고 뉴질랜드가 섬이지요. 반면에 호주와 비슷한 사이즈의 그린란드는 누구도 '뭍'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건 걍 섬임. 마찬가지 이유로 영국이 섬인 이유는 옆에 뭍이 있어서 그래요. 섬사람들도 뭍사람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섬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뭍사람들도 섬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뭍스러움에 대해 생각하지요. 그래서 섬과 뭍은 늘 같이 손잡고 다니는 친구이자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거울이에요. 뭍사람들의 눈에 비친 섬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만해요. 또 다른 유명한 학자에 따르면 정치공동체의 건설과 유지는 순전히 구성원들의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해요. 어떤 단위의 정치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건 그 공동체에 소속된 다른 멤버들이 다들 나랑 비슷한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상상한다는 말과 같아요.자기 스스로 A당 지지자라고 생각한다면 나 같은 A당 지지자들은 B당을 졸라 싫어하겠지, 같은 뉴스를 읽고 같은 반응을 하겠지, 그런 지지자가 수백만 명이 있겠지, 내가 그 사람들을 직접 봤냐면 그건 아니지만 분명 있긴 있겠지... 라고 상상하는 거지요. 이런 상상력의 도움이 없이는 수천명 규모를 넘어서는 공동체 건설이 불가능함요. 그런데 섬사람들은 뭍사람들과 말을 섞는 게 좀 어려워요. 지리적으로 격절되어 있어서. 그러다보니 자꾸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웅다웅하게 되고, 섬 밖의 사람들에 대해선 아웃 오브 안중이 되는 거지요. 그러다보면 급기야 자기들이 하나의 완전히 독립된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상상하기 쉬워요. 그래서 메이지시대 이전 일본 문헌을 읽을 때 '천하'라는 말이 나오면 그건 일본을 지칭하는 거고, 영국인들이 국제 럭비대회를 연다고 하면 그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참가하는 대회인거고 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이런 섬나라들이 '해외'국가들에 대해 생각할 때 느끼는 그 낯섬과 두려움의 감정은 뭍사람들이 외국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하곤 해요. 생각해봐요. 일본열도를 '천하'라고 한다면, 중국이나 한국은 '외계' 정도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외국인이 쳐들어오는 것도 안무서운 건 아니지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그건 진짜 무섭지 않겠어요? 막 프레데터가 슈바 막 와서 막 잡아먹고 막....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에서 외계인의 지구침공 모티브와 미국인의 일본침공 모티브가 왔다갔다 겹치는 걸 생각해보세요. 태평양전쟁 특공대 프로파간다가 외계인과 싸우는 일본인 독수리 오형제 특공대 이야기로 어떻게 스무스하게 전환됐는지도 생각해볼 만해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영국이 하필이면 가장 먼저 유럽연합을 뛰쳐나가겠다고 X랄을 하는 것도 이해해볼 만한 구석이 있어요.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연합 같은 게 있었더라면 제일 먼저 뛰쳐나갈 나라는 역시 일본이지 않았을까.... 상식. 상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요. 어떤 사회학자들은 상식이란 공통교육과정의 결과물이고 공통교육과정은 근대국민국가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대요. 그러니까 이게 다 프랑스놈들이 (뭍놈들이!) 에꼴 머시깽이 같은 것들을 만들면서 시작된 거라는 거지요. 이러한 교육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걸 몇개 정해서 교재로 만들어서 그걸 모르는 애들을 면박주고 벌주고 배제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식'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면박과 배제와 벌주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우리가 상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상황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제로 면박스러운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건 상식이야'라든가 '이정도는 상식 아니야?'라고 할 때 이게 우호적인 코멘트가 아님은 분명하지요. 그러니까, 어떤 지식을 상식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화자의 뒤에 든든한 권력이 버티고 있어야한다고 할 수 있어요. 하필 B, C, D가 아니라 A라는 지식을 상식이라고 부르고 그 지식을 모두에게 유통시키는 건 강한 권력이 아니면 실행시키기 어려운 과제거든요. 또 누군가가 자꾸 B나 D가 상식 아니냐고 들고나올 때 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찍어누르려면 역시나 강한 권력이 필요하지요. 이처럼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과정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권력놀음이라는 사실은 요즘 세상에 상식으로 통하지요. 음... 아닌가....? 음, 또 뭐가 있을까. 맞다. 어떤 독일 철학자는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무슨 정보를 접했을 때 일단 판단중지를 때리고 좀 닥치고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했어요. 무언가를 접하는 순간과 판단을 내릴 때 까지의 순간 사이의 시간의 길이가 인간성을 보장한다구요. 그러니까, 영국이 섬인게 상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여튼 즉발적인 반응을 지양하고 저런 이야기가 한국 인터넷 공간 방방곡곡에 널리 회자되는 건 대체 무엇때문인가 찬찬히 생각해보고 책도 찾아보고 하는 행위야말로 우리를 더욱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3-19 08:28)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6
이 게시판에 등록된 기아트윈스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