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게시판입니다.
Date 15/09/11 01:55:07
Name   Raute
Subject   한화 팬들도 잘 모르는 한화 이야기들
현재 한화의 성적은 7위로 몇시간 뒤 SK에게 질 경우 8위까지 떨어집니다. 엠팍 한게에서는 김성근에게 욕설을 퍼부은 글이 최다추전 1위에 올랐으며, 한화팬들 사이에서 금지어 취급당하던 김응용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끝없는 추락이며, 설사 기력을 되찾아 반등한다 한들 이미 야신의 후광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죠.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가 쓴 트위터가 화제인데 제가 보는 관점과 매우 유사합니다. 복귀해서 망할 게 뻔히 보였고, 망하면서 신화가 깨지길 바랐습니다. 차이라면 '이럴 줄 알고 한화 오는 거 반대했던 건데...' 정도?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되는 과정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놀람, 당혹, 혼란, 분노, 슬픔 등 누가 보면 제가 한화 관계자인 줄 알았을 거에요. 이깟 공놀이를 왜 봤을까 하는 환멸감을 느끼면서 한화 야구 따위 안 보겠다고 외쳤는데 그래도 결과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습니다. 다만, 작금의 모습을 보면서 김성근이 나간 뒤에도 내가 이 팀을 응원할 수 있을까...라는 혼자만의 작은 의구심은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저는 김성근의 한화 감독 취임을 한국야구의 퇴보이자 반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근 개인의 야구스타일을 떠나 김성근이 선임되는 과정과 이후 전개는 '제한된 정보를 가진 팬들의 오판을 따르다 팀이 나락에 빠졌다.'로 요약할 수 있거든요. KBO 구단들이 앞으로 팬들 말은 무시해야 한다는 사례로 삼아도 할 말 없을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불편한 단어지만, 한화팬들 사이에서 어떤 '선동'이 일어났고, 그들이 모르던(혹은 간과한) 이야기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1. 무능한 한화 프런트
감독 선임 과정에서 가장 비토를 당한 것은 정승진 사장과 노재덕 단장, 즉 프런트였습니다. 지금은 지역드립으로 쫓겨난 엠팍의 모 유저가 정-노 라인이 김성근의 영입을 반대한다며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팬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뭐 얘기야 뻔하죠. 몇년째 꼴찌를 하고 있는 건데 염치도 없이 자리를 지킨다부터 저놈들 몰아내야 감독님 오신다까지. 그러던 정-노 라인이 요새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죠. 한화 프런트는 KBO 수준에선 일을 잘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한화 프런트가 막장이긴 했습니다. 구단운영엔 별 관심도 없어서 제대로 된 투자도 하지 않았고, 구대성 엿 먹이고 영구결번 무산시키는 등 뭐하나 좋게 봐줄 구석이 없었죠.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한화 회장이 물갈이한 게 정-노라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부임한 건 2011년 초, 야왕으로 불릴 한대화 초기입니다. 새로 바뀐 프런트는 2군 구장 지으면서 인프라 개선을 꾀했고, FA면 FA, 용병이면 용병대로 감독 요구대로 해줬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드래프트도 신경 써서 노재덕은 포수덕후로 불렸습니다.

근데 이 프런트를 꼴찌 책임을 물으며 욕한 거죠. 한화의 암흑기는 09년부터고 미숙한 운영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11년에 와서 14년까지 노력하던 프런트에게 덤터기를 씌운 겁니다. 심지어 이들은 감독도 맘대로 못 골라봤어요. 한대화는 이미 있던 감독이고, 2013년에는 윗선에서 김응용 꽂았다는 게 지배적입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갓런트 소리 듣던 프런트가 김성근 방해한다는 글과 함께 쓰레기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망주 육성과 리빌딩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프런트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2. 철밥통 칰무원
저는 야구 지도자에 한해서는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며, 좋은 지도자는 큰 도움이 안 되고, 나쁜 지도자는 한없이 나쁠 수 있다. 무슨 코치가 오더니 선수들이 일제히 성장하더라는 말은 안 믿습니다. 그나마 혹했던 게 과거 메이저리그의 마조니인데 그 마조니조차도 못 키우는 유망주들이 있더군요. 해서 전 지도자들이 쓸데없는 감량이나 폼 개조로 선수 망가뜨리는 것만 아니면 코치 욕해봤자 의미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메이저 양키스 팬이라 타격코치 케빈 롱이 찬양받다가 쫓겨나는 걸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고요.

칰무원으로 불리던 한화의 레전드 코치들은 무능의 대명사처럼 까입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무능한 건지, 아니면 이미지가 그렇게 박힌 건지 싶습니다. 한용덕은 김인식-한대화 시절에 투수 여럿 건드려서 재미를 봤고 삼성이 노리던 걸로 유명했습니다. 장종훈은 정교한 컨택이 문제지 파워툴을 살리는 데는 재능이 있다는 평이었는데 결국 롯데 가서 어느 정도는 증명하고 있죠(롯데의 부침을 보면 명코치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KBO 수준 생각하면 1인분은 합니다). 정민철은 김응용 밑에서 그리 까였지만 후반기 불펜 안정화는 정민철의 공이란 평이 많았습니다. 즉 표본이 모자란 거지 반등의 기미는 있던 거죠.

그럼 남은 게 송진우 조경택 이상군 강석천인데... 송진우-이상군은 확실히 믿어볼만한 구석이 없었죠. 조경택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강석천은 대부분의 한화팬들도 모르는 업적이 하나 있습니다. 2008년 최소 팀 실책 기록을 세울 때 1군 수비 코치가 강석천이었습니다. 강석천은 시즌 끝나고 보직변경을 당합니다. 비단 강석천 뿐만 아니라 많은 한화 코치들이 시간을 갖고 업무를 본 게 아니라 길어야 1-2년, 짧으면 몇달 단위로 보직을 바꿔야 했습니다. 코치들이 제대로 역량을 가다듬고 발휘할 여유도 별로 없었죠.

드랩도 제대로 안 하고 포기하던 팀인데 재능있는 유망주는 어디 있을 것이며, 2군 구장도 없는 팀이 마구잡이로 코치 갈아끼우고 굴리는데 선수들이 튀어나오면 그게 더 이상할 겁니다. 하지만 선수육성의 실패는 모두 코치진들이 욕먹었습니다. 그 명성 자자한 김성근 사단이 왔는데 급성장해서 등장한 유망주 몇명이나 있던가요? 칰무원들도 한두명씩은 뽑았습니다. 인정을 못 받아서 그렇죠.


3. 2015 한화의 전력
2015 한화가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던 건 변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게 죄다 커리어 로우를 찍은 타자들, 건강에 의문부호가 붙는 선수들, 미지수인 용병 등 과연 2014년의 끔찍한 부진이 불운의 합작품인지, 단순한 기량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죠. 한화가 당연히 롯데와 기아를 깔고 간다는 전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탯 보면 견적 내기가 쉽지 않았죠.

실제로 스탯 보면 가시적으로 타격이나 투구 면에서 작년에 비해 크게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건강해지더니 커리어하이 찍는 이용규, 약으로 반등한 최진행, 타격폼 냅뒀는데 커리어하이인 김경언 정도가 활약중이고 나머지는 특별한 상승이 없습니다. 아 장타 좀 늘어난 김태균도 있긴 하네요. 김회성이니 강경학이니 막상 스탯 보면 작년의 송광민, 한상훈보다 낫다고 하기도 뭐하고요. 투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김민우가 인상적이지만 결국 그외의 새 얼굴은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 전력인 송창식 + 안정진, 여기에 권혁을 얹어 5명을 죽어라 굴리고 있죠.

까놓고 말해 2015 한화는 2014 한화보다 성적을 좋을지언정 전력이 강해진 건지, 아니면 투수들을 극단적으로 굴리고 커리어하이 찍는 타자 몇명 덕분에 운 좋게 승리를 챙기는 건지 모를 지경입니다. 썩 믿을 만한 스탯은 아니라지만 최진행-로저스 빼면 WAR 합계가 비슷해집니다... 아 수비가 있죠. 수비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수비 욕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죠. DER과 필딩률, 실책 갯수로 수비실력을 논하는 게 현재 KBO라서 글쎄요... 얼마나 좋아진 걸까요. 칰칼코마니는 올해도 나왔고 이지 플라이 놓치는 건 수도 없이 나오지만 이상하게 언급이 잘 안 되더군요.


4. 부상위험이 큰 한화
한화는 나이가 많습니다. 유망주처럼 취급받는 김회성이 서른줄이에요. 나이 마흔인 조인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핵심타자인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다 많습니다. 여기에 투수들 역시 나이가 많은데다 대부분 혹사경험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07년의 안영명, 10-11년의 박정진, 05년의 윤규진, 04, 13-14년의 송창식, 지금은 팀을 떠났지만 양훈도 혹사당한 적이 있고요. 그만큼 위험한 선수단이고 철저한 체력유지와 선수관리가 요구되는데... 20대 초중반 굴리듯이 굴려야 한다고 믿었고, 김성근의 방식을 지지했죠. 혹사는 말할 것도 없고 지옥훈련도 당연한 것처럼요.

양키스의 지라디가 꾸준히 패권 다툼을 못하면서도 욕을 먹지 않는 건 주어진 전력을 최대한 뽑아내고 있다는 신뢰를 주기 때문이죠. 노장들 체력안배 정말 철저히 합니다. 무분별한 FA계약으로 선수단이 늙어버렸는데, 그걸 세심하게 관리해서 부상을 줄이고 시즌을 완주하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인정을 받은 거죠. 우리나라에도 저런 감독이 하나 있죠. 관중일이라고 까이던 류중일이요. 그리고 그 류중일에게 숟가락 얹었다고 디스한 게 김성근, 그 김성근을 지지한 한화.


이게 김성근을 까면 '깨시민'이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김성근의 실패가 몹시 보고 싶었어요.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받고 싶기도 했고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더라고요. 기대가 무너져내려 절망하는 한화팬들을 보면... 이건 한국야구의 재앙이 되겠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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