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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2/10 16:18:26 |
Name | 사이시옷 |
Subject | 도미노 인생 |
기말고사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목과 가슴 사이를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불길한 느낌. 그래서 설마하는 마음에 맥을 짚어보니 심장이 뛰다, 안 뛰다,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더군요. 그리고 뭐.. 그때부터 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원에 있습니다. 심장은 다행히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며칠 더 두고 보자는 말에 링거 하나 안꽂고 나이롱 환자처럼 병원을 어슬렁거리고 있어요. 덕분에 이번 학기 기말고사를 못 봤고 덤으로 대학원 면접도 날려버렸습니다. 타이밍이 어찌나 절묘했던지 제 계획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렸네요. 볼링으로 치면 스트라이크, 야구로 치면 병살타 정도 될까요. 2013년에도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벼락처럼 떨어진 질병에 모든 걸 망친 적이 있어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죽고 싶을 만큼 심한 두통이 이어져 회사는 물론 일상생활마저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죠. 제가 쌓아놓은 모래성이 쓰나미를 만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통증을 없애주는 약은 통증 뿐만이 아니라 저의 정신도 같이 지워버렸죠. 약을 먹으면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듯 그냥 멍해졌었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행히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일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었죠. 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많이 억울해요. 의도하지 않은 병으로 자꾸 중간에서 무너져버려요. 다른 사람들처럼 그럭저럭 건강하기만 해도 더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을 텐데 말에요. 술 담배도 거의 하지 않고 운동도 하는데도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 속 터져요. 하지만 뒤돌아보면 중간에 무너졌기에 새로운 기회도 나타났다 느껴요. 치열하고 멋있게 보였던 도시 생활이 넘어지고 나서야 한가로운 제주 생활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어찌 보면 넘어진 것은 제 인생이 아닌 저의 자만일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은 내 계획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라는 자만이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지만 하고 싶은 일 리스트는 여전히 건재해요. 할 수 있을 만큼 되도록 무리하지 말고 해봐야죠. 중간에 무너지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천천히 다시 쌓아야죠 뭐. 부디 중간에 누군가가 중간 블록을 쓰러뜨리는 일이 없기만을 바랍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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