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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2/11 19:41:17수정됨 |
Name | 알료사 |
File #1 | bqFNs2O.jpg (78.0 KB), Download : 11 |
Subject | 충치 |
치과에서 인레이 치료를 마쳤어요. 지난주에 본뜬것을 오늘 끼웠습니다. 제 충치 중에서 가장 심각한 한놈을 처리한거고 앞으로 레진으로 7개, GI로 4개 총 11놈을 더 손봐야 합니다. 어려서 양치 교육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제때 이를 닦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본인이 안해놓고 교육탓. 지저분한 놈) 고3때 앞니 사이에 하얀 이물질이 끼어있는것을 뭐가 끼었나 싶어서 바늘(...)로 긁어서 떼어냈는데 그게 치석이라는 거였죠. 두번째 생겼을 때부터는 아무리 칫솔로 날카로운 것으로 제거하려 해도 없어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어요. 잇몸에서 피가 나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어라 이거 좀.. 하고 경각심이 생겼는데 그때라도 치과에 갔으면 조기치료가 되었을 것을.. 병원이란 막연하게 돈 왕창 깨지는 곳이고 가난한 사람은 못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는 강박적으로 양치질을 하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했죠. 통증이 있을 때 치약을 듬뿍 발라 이를 닦으면 신기하게도 잠시 동안은 괜찮았어요. 독한 치약일수록 더. 하루에 10번도 넘게 이를 닦았을 거예요. 그때 쓴 치약값만으로도 치료를 하고 남았으련만.. 스스로가 의식될 정도로 입냄새가 났고 원래도 말이 없던 성격에 사람을 만나도 더더욱 입을 열지 않게 되었어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20대 초반, 제가 어디를 가든 <일체의 잡담도 없이 일에만 열중하는 성실한 일꾼>으로 업주들의 눈에 들었던 데에는 그런 속사정도 있었죠. 군을 제대하고 25살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치과에 갔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못버티겠다는 절박함도 있었고, 때마침 급한 지출을 다 때려막고 약간의 돈이 남아서였기도 했어요.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 비용이 7만원이라는 안내를 받고 얼마나 허무했는지요.. 않이.. ㅋㅋㅋ 시부레.. 병원비 무서워서 여태 이고생을 했는데 7만원이라고? 첫 스케일링의 통증은 대단한 충격이었지요. 이 세상에 이런 고통이 존재하는가 싶은 것이 아마 화생방 이후 두번째였을거예요. 그래도 아픈 와중에 지금이라도 치료를 하게 되어서, 치료비가 생각외로 싸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좀 편했어요. 스케일링이 끝나고, 선생님이 충치가 있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 8개 정도 있고, 개당 3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라는 말을 듣고서야 아 병원 겁나서 못올만 했네, 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때의 저에게 그건 과장없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으니까요.. 거울 앞에서 입을 벌리고 치석이 제거된 치아 사이의 공백을 홀가분하게 바라보는 한편으로, 그것이 다시는 복구될 수 없는 내 신체로 인식되면서 나라는 존재의 유한함이 새삼스럽게 두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래도 아무튼 통증이 없어져서 생활이 편해졌고 입냄새도 나지 않아 좋았어요. 충치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당장 아프진 않았으니까요. 이제 그 충치가 성장해 나를 다시 괴롭히게 될 날은 먼 훗날이고, 저에게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다른 걱정들이 산적해 있었어요. 그 걱정들에 시달려가며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십년이 가고 또 몇년이 가고.. 서서히 잊고 있던 내 안의 시한폭탄의 초침이 들려오기 시작했지요. 어떤 신문 사설을 읽는데 필자가 오래 전 동료를 만났고 그 동료와 많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료의 이빨이 성한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대화에 집중이 안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옛 동료가 오래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이를 치료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주변 지인들 가운데서도 한명 두명 치아 때문에 고생하고 큰 돈을 썼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개인적으로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그동안 별렸던 자신의 깨진 치아를 대대적으로 치료하는걸 보고 저에게도 결단을 내려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걸 감지했습니다ㅋ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술자리에서 반대편에 앉은 네가 웃을때 치아가 하얗게 드러나는게 부러웠다고. 아니, 그거 조명빨이야.. 나도 이빨 상태 안좋아.. 한달 전에 스케일링을 하고선 선생님이 엑스레이 한번 찍어 보자고 하더군요. 왔구나.. 그 때가.. 엑스레이를 찍고, 입에 무언가를 넣어 겉으로도 사진을 찍고.. 결과를 화면에 띄워 보여주며 설명을 하시는데, 그래도 비교적 굳건하고 고르게 내 잇몸에 사열해 있는 이빨들을 보며 얼마나 고맙던지요. TV같은데서 많이 봤거든요. 정말로 이가 많이 망가저 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나는 너희들을 방치하고 돌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들 모두들 자기 자리에 흔들림 없이 서있었던거니. 이제 치료 하자. 썩은것 도려내고 더 강인하게 씹고 물고 뜯고 즐기자. 우리 함께 같이할 시간 아직 많이 남아 있어. ㅋㅋㅋ 치과라는 곳, 쓸데없이 사람 비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답니다... ㅋㅋ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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