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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1/28 11:53:08수정됨 |
Name | 호라타래 |
Subject | [책 감상] 오쓰카 에이지(2020), 감정화하는 사회 |
서평이라기 보다는 이런저런 감상에 가깝습니다. // 아는 분께 책을 추천 받자마자 호로록 읽었어요. 평소에 관심가지고 지켜보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인간 활동'을 부분적으로 다루는 책이거든요. 물론 다 읽고 나니 제 관심 분야보다는 넓은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어요. 책은 크게 보자면 일본의 (근대) 문학 일반과 사회가 맺는 관계가 변해오는 맥락 속에서 현재 일본 사회를 분석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지닌 일부의 언어활동이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던 상황에서, 기술 변화에 따라 언중 다수의 집합적인 언어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게 된 상황을 다루는 책이라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국 생각이 나더라고요. 책에서 언급하는 여러 일본 이슈들의 한국 버전이 손쉽게 떠올랐고요.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여러 양상들에 그대로 적용해 볼만한 통찰도 많아요. 총선 시즌이 들어오고 나서 각자가 투사하는, 혹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빌리자면 '투사하도록 유도되는' 감정의 크기가 커지면 또 어찌 보일지 모르겠네요. 1) 첫 파트에서 저자는 덴노제에 관해 이야기해요. 저자는 덴노제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국민 그리고 국가 형성 과정에 내재된(혹은 되었다고 저자가 중요하는) 여러 문제들을 풀어내요. 전후 헌법을 통해 상징화된 형태로 유지된 덴노제 속에서, 현행 덴노는 정치적인 권한 없이 일종의 감정 노동을 했대요. 특정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위로를 전하거나, 국민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방식으로만요. 흥미로운 것은 이 '마음'이라는 방식을 통해 덴노와 일본 국민 다수가 동기화 되는 현상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에요. 말하자면 전국가적인 공감인 거지요. 저자는 그 원인으로 사회의 '감정화'를 지적해요. 그리고 감정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아름다운 공감이 고삐가 풀려있기 때문이지요. 감정과 공감 사이에 공공성은 자리매김해 있지 않대요. 예를 들자면, 불쾌를 자아내는 것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 치워버려야 할 대상에 그친다네요. 2) 이어 왜 사회가 이렇게 감정화 되었는가를 IT 기술 발전에 따른 자기 표출의 보편화/민주화라는 줄기를 통해 설명해요. 말이 좋아 자기표출의 보편화/민주화이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사회가 우리의 감정을 계속해서 표출하도록 유도한다는 거예요. "말할 것이 없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억압화된 욕망만이 존재한다(p. 76)" 라고 적고 있어요. 그 주요 배경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산업이 존재하고요. 유튜브나 SNS를 떠올리면 각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약간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 같지만 동의는 하니 넘어가보면, 즉각적인 감정 표출, 수용, 그리고 위로가 계속해서 요구되고 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가 즉각적인 감정들에 압도되는 상황에 빠졌다는 거예요. 3) 다음으로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요. 저자에게 문학이 가리키는 바는 소위 순문학에 한정되지 않고, 서브컬쳐라는 이름 아래에 묶이는 라이트 노벨, 라인(네이버가 서비스하는 그 Line이요) 노벨 등을 포괄해요. 어찌보면 더 많은 사람들의 감정, 인식,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순문학 이외의 문학들이 저자의 관점에서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자 약력을 보니 서브컬쳐와 민속학이 주요 영역이더라고요. 본문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듯이, 저자에게 기저에 깔린 문제의식은 문학(혹은 리터러시 활동)을 통한 국민형성(nation-buliding)이 아닌가 싶어요. 라이트 노벨을 분석한 2장 '스쿨 카스트 문학론'이나, 하루키 등의 소설을 분석한 7장 '교양소설과 성장의 부재'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이 여실히 드러나요. 4) 저에게 흥미로운 부분은 민속학적인 구전문학의 작동원리와, AI 알고리즘을 연결하는 점이었어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구전문학은 연상되기 쉬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특징이 있대요. 본문에 언급된 민속학자 뤼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성되는 것이 끊임없이 "형식"]을 향하는 것이에요. 처음 창작자의 글에서 A -> C였다면, 구전 과정에서는 C 대신에 더 그럴 듯해보이는 B가 나타나게 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B에 어울리는 다른 무언가가 연결되게 되고요. 이런 방식은 소위 마르코프 체인(Markov chain)을 이용한 문장 형성 과정과 닮아있는데, 저자는 AI 알고리즘 전반을 여기에만 연결해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8장 'AI 문학론'이나 다른 장에 나타나는 비슷한 이야기들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조심스레 보는 게 좋을 듯해요. 5)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은 신화, 원형질 등등의 이야기와도 쉽게 연결되지요. 레비스트로스 식의 구조주의가 연상될 수도 있는 내용인데, 저는 그 부분은 겉핡기로만 알아서 더 뭔가 떠오르지는 않았어요. 다만 언어에서 드러나는 메타포(metaphor)와 신경망 활동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기억나더라고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G. Lakoff(2014)의 Mapping the brain's metaphor circuitry: metaphorical thought in everyday reason를 읽어보시면 되요. 간단하게만 언급하자면,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주된 시스템 중 하나인 메타포(metaphor)는 신경망의 활동을 통해서 확인 가능한데, 메타포(=시냅스의 연결)은 우리가 신체를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들을 기초로 삼는다는 거예요(real-world embodied experience leads to primitive conceptual metaphors, p. 2). 기본적인 단계를 넘어서는 보다 복잡한 메타포들이 사회/문화권에 따라 존재하다만, 언중의 집합적 구전활동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를 제공할 수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6) 민속학적 구전문학의 원리가 다시금 언중의 리터러시에서 두드러지는 양상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이야기인데요. (전근대-근대-현대(후기근대/포스트모던) 류의 역사적 시대 구분을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근대에 잠깐 일부 엘리트들에게 집중되었던 리터러시 권력이, 현대 시대에는 근대 이전처럼 언중 일반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바라보는 듯해요. 물론 국지적인 형태로 전승되는 구비문학과,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언어집단 전체에게 동시에 전승가능한 현대의 '구비문학'을 동시에 바라보는 건 무리이지 않나 싶네요. 또한 컴퓨터/인터넷을 통해 매개되는 의사소통에 드러나는 문자와 구술의 혼합도 세세하게 파고들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재미있기는 해도 면밀하게 따져볼 지점이 더 많지 않나 싶고요. 7) 특히 저는 왜 리터러시를 언어/문자에 한정해서 바라보는지가 의아했어요. 사회-기호론적 방식(social semiotic mode), 그러니까 우리가 의사소통 과정에서 동원하는 방식은 언어/문자에 한정되어 있지 않잖아요. 매스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도 이제 이미지와 동영상의 활용은 일반화 되어 가고 있고요. 크레스(Kress)가 주장하듯이 이제는 의사소통에 동원 가능한 양식들이 동시에 복잡하게 작동(multimodality)하는 것으로 바라봐야 하는 듯한데 말이지요. 저자는 소설에서 묘사가 줄어드는 과정을 구전문학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하려고 하지만, 저는 이미지나 영상을 쉽게 활용 가능하게 된 커뮤니케이션 생태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7) 문체의 소멸 이야기는 다른 방면에서 생각이 뭉게뭉게 들었어요. 우리가 언어를 통해 지어낸 갑옷은 언제나 총체적인 우리와는 괴리가 있어요. 상징에 기초한 기호작용은 경험적 현실에서 유리되기 쉽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 대표적으로 소설가들 중 일부? -는 언어를 통해 갑옷을 지어내는 것에 천착하고, 자신이 지어낸 갑옷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지요. 그리스인 조르바 식의 무애(無礙)를 추구하는 식자층들은 으엑하고 거리를 두겠지만요 ㅋㅋ 이런 과정을 개성화의 한 형태로 부를 수 있을까요? 저자가 '집적되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구전문학의 귀환을 이야기하는 저편에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개성화 과정이 약화되는 걸 걱정하는 것도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저는 어느 한 방향으로만 사회가 향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 저자가 이 정도의 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발을 성큼성큼 디디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고, 근대적인 이상을 강하게 견지하는 것에 대한 미묘한 반감도 들었고, 중반 이상 넘어가니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저에게는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재미가 좀 떨어졌었어요. 하지만 문학, 서사, 신화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라면 훨씬 풍부하게 맛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 제가 읽는 재미가 약간 떨어졌던 까닭은, 이 영역들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심상을 구체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다른 나라(한국을 포함하는)의 현상들과도 연결시킬 지점이 눈에 들어오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호불호가 갈릴 책이라 생각되지만, 서브컬쳐에 관심 많으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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