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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28 21:11:49
Name   Chere
Subject   오등작제(五等爵制) 논쟁 -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정확하게 모른다
* 이 내용은 수년 전 전공수업에서 토론한 石黒ひさ子, 「五等爵制再考」 『駿臺史學』 129, 2006, 1~20p의 내용을  좀 심하게 간략화 해서 기반으로 삼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낸 글입니다. 실제 논문의 주요 내용을 가져온 것도 아닐 뿐더러 가져온 내용조차 상당히 압축했기 때문에 왜곡이 조금 있을 수 있기에 보다 자세하고 해당 문제에 대해 정확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께서는 일단 원본으로 삼은 논문을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중국사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께서는 이 글의 내용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혹시라도 글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기탄없이 지적 부탁드립니다.



  봉신연의와 같은 소설이나 춘추전국시기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제후의 호칭 뒤에 붙는 특정한 단어, 즉 공이니, 후이니 하는 용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칭호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오등작제(五等爵制)라 부르며, 중국의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이 제도는 주(周)왕을 중심으로 하는 제후들간의 계급적 질서를 의미한다. 재미있는 점은 오등작제에 관한 전래 기록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칭호를 공통된 기본 구성요소로 가지고 있지만 서열의 순서 등 위계의 구체적인 형태에 관해서는 문헌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오등작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맹자(孟子)』 만장(萬章) 하편에서는 오등작제의 위계를 ‘천자(天子)‧공‧후‧백‧자남’으로 나뉜다고 설명하지만, 『예기(禮記)』 왕제(王制)에서는 작제가 ‘공·후·백·자·남’으로 구성된다고 기록한다. 양자의 차이는 天子를 오등작제에 포함시켰냐는 여부 및 자남을 서로 다른 급의 작제로 취급하는가 아닌가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춘추(春秋)』, 『좌전(左傳)』 그리고 『공양전(公羊傳)』 등의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오등작제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맹자』 만장 하 및 『예기』 왕제에서 나타나는 서열 규칙과는 다른 모습이 왕왕 발견되며, 심지어 『좌전』에서는 공・후・백자남과 백‧후‧자남 이라 하는 2종류의 삼등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불규칙성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등작제와 관련된 논쟁은 초기에는 주로 그 존재 여부 그 자체에 집중되었다. 한쪽에서는 위에서 나타나는 각 전래문헌 마다 정확한 교차검증이 안된다는 점을 들어, 작호를 정해서 각 제후를 일정하게 서열화하는 것은 전국시대에 와서 생겨난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즉 그보다 앞선 시기인 서주시기 및 춘추시기 제후에게는 칭호에 따른 서열 구분이라는 방식은 없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실제 제후의 작호는 상(商)때부터 존재해 서주시기 제도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위에서 나타나는 교차검증 문제에 대해서는 각 국의 오래된 관습때문에 제대로 전파 및 준수되지 않아서 발생한 현상으로 이해한다.  


  오등작제라는게 존재한다고 주장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면 정말로 올바른 서열 구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했는데, 어느 학자는 서주 시기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 이른바 금문(金文)을 근거로 전래문헌과 비교, 나름의 일련의 규칙성을 찾아내서 특정 전래문헌에 있는 서열법과 비교해 맞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는 연구대상이 되는 전래문헌들을 두루 비교하며 해당 내용이 과연 원본인지 아니면 편집된 내용인지를 판단해 해당 기록의 신뢰성을 저울질 해 보다 정확한 오등작제의 서열구조가 적힌 텍스트를 찾아내려고 했다. 쉽게말하자면 전해져 내려오는 텍스트 속에 "진짜"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물론 고고학 발굴자료에 좀 더 주목하는 학자들은 새롭게 서열 구조를 정립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러한 시도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어서 여러가지 서열 구조가 발견되었다. 이제 서주시기 오등작제의 존재를 믿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있어 오등작제 논쟁의 주요 쟁점은 단순한 제도의 존재 여부에서 벗어나 과연 서주시기의 오등작제와 전국시기의 오등작제가 비슷한가 즉 어느정도 연속해서 이어지는가라는 제도의 연속성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서주시기 오등작제가 없었다고 믿는 쪽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잠깐 전래문헌의 원본과 아닌 부분에 관한 내용은 자칫 잘못해서 위작 논란으로 오해 하기 쉬운 부분이기에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중국 고대사 연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알고있는 고대 문헌들이 원본 그대로 전해져오고 있다고 믿지 않았고, 실제 일부 내용을 검증한지 오래다. 예를 들어 공자님이 정리했다는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나 공자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정리했다는 『논어』, 그리고 한대 사마천이 서술한 『사기』 조차도 지금 우리가 시중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쉽게도 시대를 거쳐오며 수정 및 편집, 보강 등을 거친 판본에 지나지 않고 또 몇몇 서적들의 기원설과 실제 제작 추정 연도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보통 서주시기 및 춘추시기 관련 기록을 담은 전래문헌(『주례』『예기』 등)들은 전국시기에 편찬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매우 우세하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기록과 기록의 내용 간에 시간적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또 기록의 정확성을 위해 교차검증을 해야한다고 판단한다. 물론 최근 중국 내 일부 학파에서는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간독 및 금문들을 근거로 전래문헌의 내용을 굳이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 없이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해외 연구자들 가운데서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도 여전히 많다.(해당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언급하려면 너무 내용이 많아지기 때문에 여기서 일단락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해당 전래문헌들의 내용 가운데 원본에 해당하는 부분 및 추가 편집된 부분인지 등을 판단 및 구분하고자 했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기법 중에서는 한 지도자의 통치 원년 및 사망기점을 기준으로 분할하는 시기 구분방식인 이른바 기년(紀年)과 그 외 문헌 상에 등장하는 날짜 기록을 가지고 해당 텍스트의 내용이 어떤 제후국의 역법을 기준으로 서술되었는지 역산해 추측하는 방식이 있다. 이 방식 역시 상당히 오래된 전통 방식인 만큼 실제로 성과도 제법 거두어, 연구자들은 전래되는 이야기로는 특정 제후국에서 쓰인 책이라고 전해지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전혀 다른 제후국의 기년과 역법을 기준으로 서술되어 있는 부분을 다수 발견했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이상 연구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느정도 답을 내릴 차례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오래된 주석서에서부터 시작해 현대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현상을 폄하의 증거로 해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폄하란 무엇인지 예를 들어보자면, 공자가 정리했다는 노나라의 역사서인『춘추(春秋)』원본은 지금 전해지지 않고 대신 제나라에서 편집한 폄하본이 우리에게 전래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왜 해당 텍스트를 그들이 편집하고 또 폄하했는가라는 의문이 나올텐데, 연구자 혹은 주석가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흔적들이 바로 상대 제후국의 역사 기록 또는 중요한 내용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로 해석했으며, 특정 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텍스트 자체가 이미 편집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독자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한번 더 꼬아서 전혀 다른 제후국의 역법을 사용해 편집했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되었든 연구자들은 이런 분석을 통해 다양한 전래문헌들이 겉보기에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한번에 뜨개질해서 짜낸 목도리 혹은 스웨터처럼 보였는데 알고보니 실제로는 여러 헝겊을 이어 붙인 형태처럼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가운데서 보다 신뢰성과 원형을 구분짓는 정보를 찾아내고자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 학계에서는 정말로 정설로 받아들일만한 오등작제의 원형을 찾았을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설이라고 부를만한 오등작제 서열관계는 아직 없으며 다만 누구의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 정도의 단계에서 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연구자들의 분석시도는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오등작제의 진위 논란 및 서주시기부터 연속되어 내려왔는가에 대한 문제에 국한되었던 연구는 점차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전국시기에 이르러서 각 국마다 각각의 작제가 존재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나라에선 제나라의 작제가 존재했고, 노에서는 노의 작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전국시기 복수의 작제가 존재했다는 가설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결국 서주시기에 오등작제가 있었다는거야?" 하지만 아쉽게도 이 역시 "알 수 없다"란 말이 가장 현재로선 최선일 것이다. 실제로 복수의 작제가 전국시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모두 이 제도들이 서주시기부터 내려왔다고 해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서주, 춘추시기에 제후를 부르는 일정한 칭호 자체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전래문헌에서 보는 것처럼 철저하게 서열화되고 또 확고한 제도로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다시 내게 그래서 서주 시기에 오등작제는 있는거야 없는거야? 라고 묻는다면, "여러 주장을 잘 살펴보고 그 가운데서 본인이 가장 설득력있다고 믿는 쪽을 믿으시길 바란다."라고 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두에서는 거창하게 시작된 내용이지만 이 쯤 되니 허무하고 기운이 빠질만한 내용으로 끝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은 보통 대중을 겨냥한 역사 학술서에는 언급되지 않거나 모호하게 서술된다. 괜히 복합하기만 하지 제대로 된 답도 없어서 혼란을 주기 쉬울 뿐더러 또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이 실제 고대사 연구의 현실이기도 하다.


   사실 이쯤 되면 다들 이 글이 역사와 관련된 정보전달을 위해 쓰인 글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글의 진짜 핵심 주제는 결국 중국 고대사 연구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주제들 가운데 다수는 이 오등작제 논쟁처럼 아직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고, 이러한 모습이 중국 고대사 연구의 일면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비단 중국 고대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20세기는 중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굉장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지하에서 다량의 새로운 고고학 자료들이 발굴됨에따라 혹자는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했다고까지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하의 증거들은 정체된 수많은 연구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고 또는 정설로 확립되었던 이론에 대해 다시 한번 재평가할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 자료들이 과거부터 쌓여있던 모든 의문점을 해결해주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었다.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자료의 한계 역시 언제나 명확하다. 이렇게 보면 고대사 연구와 관련해서 혹자는 부정적 혹은 비관적, 더 나아가 무책임하다고까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위의 글 내용은 결국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다고 구구절절 말한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저명한 학자들 손에 의해 연구의 진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자료의 한계가 결코 연구의 침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보며, 그리고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연구가 무가치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논쟁들이 대량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 상황인 만큼, 중국 고대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잘 감안해 특정 자료 혹은 주장들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팩트라는 말에 휩쓸려 정작 관심있어했던 주제에 대한 고찰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스스로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으며 무엇을 신뢰하는지 조차 불확실해 지는 경우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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