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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18 11:02:33
Name   王天君
File #1   boontang.jpg (200.2 KB), Download : 4
Subject   분탕질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가치중립적인 존재는 순식간에 좋거나 나쁜 행위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손을 잡고 우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다고 칩시다. 이 사진은 그 자체로 그 어떤 의미나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누군가의 해석이 따라붙고 그에 따라 정의를 내린다면 이 사진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휴머니즘"이 될 수도 있고 "감성팔이"가 될 수도 있겠죠. 전자는 긍정적인 의미를, 후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단어가 이런 식으로 선악을 가리거나 가치판단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쓰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로 "분탕질"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네이버 사전의 2번 뜻, "아주 야단스럽고 부산스럽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의 용례를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 자체로 부정적입니다. 특히나 "어느 사이트에서 분탕질을 하였다" 라는 문장의 뉘앙스를 생각해본다면 분탕질이란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야단과 소동은 그렇게 신나고 달가운 일은 아니겠죠. 어떤 행위를 "분탕질"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행위는 바로 제재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분탕질"인지 이를 판단하는 것이 각각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분탕질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탕질이 아닐 수도 있겠죠.
대부분의 커뮤니티에는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분탕질로 나눌 것인지에 대해 구성원들의 명확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정 행위가 구성원들의 불편을 초래하느냐 같은 개개인의 만족도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정 행위가 발생했는가 같은 의도를 놓고 따질 수 밖에 없어요.
추상적이고, 맥락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분탕질로 볼 여지가 크다" 같은 식의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분탕질이란 행위는 "사이트의 안정을 파괴하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정상적으로 게시물을 읽지 못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가 되겠죠. 대부분의 분탕질은 기능을 마비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습니다.
조금 더 넓게 치자면 욕설을 하거나 타회원들을 모욕하는 행위 역시도 분탕질이 될 겁니다. 사이트 내의 자정 능력을 소모시키도록 하는 행위니까요. 피로하게 만드는거죠.
맨 위의 짤방은 그런 분탕질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견이 거의 없겠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유가 "분탕질"이라고 규정하는 현상들이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겠죠.
어떤 게시물이 올라옵니다. 이 게시물은 오유의 지배적인 성향에 비춰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 다른 사이트에서 오유의 추천제도를 따라 추천을 하거나, 비공감을 하는 식의 선택을 다수가 한꺼번에 하는 것이죠. 흔히 좌표 찍고 몰려간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그 게시물을 읽고 판단하는 다수의 보통 오유 유저의 의도와 달리, 오유를 열심히 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해당 게시물은 베오베 리스트로 가거나 반대를 먹게 될 겁니다. 일종의 여론 조작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일베 유저들이 문재인 의원 비판 게시물을 좌표로 찍고 추천을 엄청 해서 베오베에 갔다고 좀 더 구체화해보죠.
이 일베 유저들이 해킹을 통해서 시스템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전제한다면, 이 행위를 분탕질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일베 유저들은 일베를 열심히 하지만 오유에 가입한 이상 오유의 회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베 회원인 동시에 오유의 회원인 거죠.
오유에서 추천/비공감 시스템에 투표할 수 있는 자격은 딱 하나입니다. 오유의 회원이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일베의 회원이건, 다른 사이트의 회원이건 누군가가 정식적인 가입절차를 통해 회원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 자체로 오유의 투표 시스템에 참여할 권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한 여론을 구성하게 되는 거겠죠. 일베를 하는 오유 유저로서요.
여기에 진짜냐 가짜냐 하는 어떤 순도의 계량은 무의미해집니다. 오유에 가입한 이상 오유의 회원이라는 단순한 명제는 그 자체로 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오유의 회원으로서 오유의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것이 일시적이냐, 단 한 의견에 한해서만 적용되었느냐, 이 사안들은 회원으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오유 회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진 못합니다.
어떤 사이트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 하는 것은 이용자의 마음이니까요. 피지알이나 홍차넷에도 가입을 하지만 눈팅만 하는 사람들은 엄청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일년에 접속도 몇번 안하고, 특정 글에만 추천을 한다고 해서 과연 가짜 회원이 될까요? 그건 아니겠죠.
한 사이트의 회원이 되어, 그 사이트의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내고 다른 의견에 공감한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의 방식입니다.]

아마 오유에는 다양한 회원들이 있을 겁니다.
오유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종격투기 까페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베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홍차넷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이 사람들은 오유에 회원 가입을 한 이후로는 그 자체로 오유의 여론이 되고 오유의 일부분이 됩니다.
어떤 의견에만 반응을 하는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죠. 이를테면 저는 피지알에서 게임게시판이나 불판 게시판은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좌표가 찍혔을 때, 그 좌표 하나에만 반응하는 회원으로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한꺼번에 다수가 가입하고, 특정 게시물에 반응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오유의 여론"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모든 정치 경제 이슈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이쟈스민 의원의 활동에만 열렬히 반응하며 재선이 되게끔 투표만 한다면 그건 가짜 여론인 걸까요?
아마 그 사람들의 표 또한 다른 사람들의 표와 똑같은 가치를 지닐 겁니다. 저는 오유의 추천/비공감 시스템의 숫자 역시도 똑같이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서, 어떤 절차에 따라 의견을 냈다면, 그 의견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거죠. 그 회원이 어떤 다른 커뮤니티에 속해있건간에요.
애초에 이 여론전에서 "숫자"를 최상의 가치로 설정해놓은 것은 오유 자신입니다. 클릭질이 모여서 베오베를 가고, 쓰레기통을 먹고, 산으로 가고, 메달을 달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숫자"의 논리를 다른 누군가가 이용하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니 이에 대해 엉뚱한 식으로 대응합니다. 오유 순혈주의 라고 할까요.
아이피를 확인하고, 이 전의 댓글들을 확인하게 하고, 비공감사유를 적게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유저들은 이를 따라 누군가에게 어떤 프레임을 덧씌우죠.
물론 이 역시도 오유 나름의 숫자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아예 규정을 새로 만드는게 편하겠죠.
비논리적이지만 "모모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오유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라거나 " 어떤 의견을 추천/비공감 하는 것은 오유의 운영방침과 맞지 않습니다" 라던가요.
결국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모든 의견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는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오유는 자기부정의 모순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 방법은 다른 의견을 "분탕질"로 규정해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합리성이 없다보니 당연히 서로 출신을 의심하고, 그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뒤집어 씌우죠.

오유를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 무언가를 섣불리 규정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며 부작용이 뒤따르는가,를 고찰해보기 위함입니다.
이런 현상은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납니다. 저 역시도 자기 주장을 펼칠 뿐인데 "어그로"라고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용어로 누군가의 행위를 정의내렸을 때, 누군가의 의도나 행동 자체는 곡해당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함의만을 뒤집어 씌울 수 있죠.
이를테면 똑같은 국회활동인데도 "국론분열"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측의 정치적 목적을 저희는 판단할 수 있듯이요.
누군가의 저의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판단하는 것은 의견의 최종적 가치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겠죠. 참고사항이 될 뿐입니다.
더불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있는가? 에 대해서도 좀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조리돌림, 마녀사냥, 반달, 선동, 찬양, 조작, 비난, 이런 단어들이 너무 쉽게 쓰이는 것 같아서 쉽게 피로해지곤 합니다.
아직까지 홍차넷은 이런 단어 선택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신중한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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