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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7 15:33:09
Name   호라타래
Subject   아버지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추운 겨울이다. 감기에 걸려 온 몸에서 열꽃이 핀다. 안은 타오르는데 밖은 얼어붙어 달라 정신이 아득하다. 아버지와 함께 눈밭을 걷는다. 병원으로 가려면 언덕을 넘어야 한다. 정신이 아득해서인지, 눈발에 시야가 흐려서인지 자꾸만 고꾸라진다. 아버지의 점퍼를 부여잡는다. 허리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시선이 꺼지며 다른 감각이 뚜렷해진다. 가죽 점퍼의 단단한 냄새, 눈의 차가운 냄새, 그리고 아버지의 스킨 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기억은 스킨 냄새를 마지막으로 끊어진다.

스킨 냄새는 목욕탕으로 이어진다. 냉탕에서 동생과 헤엄치다 나온다. 탈의실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마른 수건 냄새가 난다. 작은 선풍기가 돌아간다. 아저씨들이 머리를 말린다. 스킨을 뿌리고 로션을 바른다. 어느 목욕탕을 가도 그 냄새는 똑같다.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동생과 기다린다. 잠깐 졸고 있노라니 아버지가 깨운다. 통통한 바나나 우유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하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맛은 중학교 때 어느 날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치킨과 두유를 잔뜩 사온다. 이상하다. 치킨과 두유는 이상하지 않다. 시간이 이상하다. 점심이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는다. 어머니의 짜증이 엿보인다. 두유를 쪽쪽 빨다 무언가를 깨달았다. 갑자기 서럽디 서럽게 운다. 어머니는 저거 또 지랄한다는 표정이다. 동시대 모두처럼 아버지도 IMF 구조조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다. 다음 날부터 일을 찾아 떠난다. 공사판으로, 파견직으로, 경비원으로, 그리고 또 어드메로 간다.

나도 어드메로 간다. 차선 그으러 고속도로에 가고, 자재 주으러 공사판에 가고, 미장하러 터널에 가고, 바닥 쓸러 새 아파트에 간다. 대서양으로도 가보고, 태평양으로도 가본다. 아버지는 어디론가 계속 가는 아들이 신기한가 보다. 말리지는 않는다. 아, 최근에는 말렸다. 우짤라고 또 가냐고 개털 아니냐고 그런다. 어머니가 숟가락을 집어던진다. 거 또 재수없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그랬던 어머니가 펑펑 운다. 아버님이 별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다리가 많이 아프셨을 텐데. 의사가 말한다. 아이참. 아니 우리 그이가요. 말은 어눌하고, 좀 둔하고 답답하기는 한데요. 엿날 여태껏 한 번도 쉰 적 없고요. 의사가 웃는다.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많이 아끼시나 보네요.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아니 엄마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 그냥 막 눈물이 나더라니까? 옆에 간호사고 의사 선생님이고 다 웃더라고. 근데 너 이제 잘 시간 아니냐? 영통을 끊고 시간을 본다. 자정이 넘었다. 밤은 어둡다. 눈으로 세계가 뒤덮여 고요하다. 겨울은 길었다. 전기배선에 문제가 있었다. 룸메와 둘 중 한 명만 전기히터를 쓸 수 있었다. 집주인은 답장이 없었다. 나는 둔해서 추위를 잘 못 느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가 써. 고마워요 형.

[XX아 용돈고마요 잘쓸게 사랑해]. 카톡이 뜬다. 동생이 어버이 날이라고 용돈을 보낸 모양이다. 아버지 귀가 입에 걸린다. 어머니가 통화하면서 깔깔거린다. XX이가 돈 안 주는 줄 알고 밤에 잠도 못 자고 있더라니까 ㅋㅋㅋ 니네 아버지가 그러더라. 자기는 400%라고. 설에 100%, 추석에 100%, 생일 때 100%, 그리고 어버이 날에 100%. 퍼센티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여도 아버지는 그저 행복하다. 한 번 더 행복하시라고 외노자의 돈도 얹어본다. [XX아~ 용돈잘받았다 잘쓸께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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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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