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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23 21:59:50 |
Name | 아침커피 |
Link #1 | https://crmn.tistory.com/16 |
Subject | 오색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 |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이 다 다르듯 구미권의 나라들도 다 다르니 그네들을 서양이라고 퉁치려면 참 무리가 따르겠다 싶지만, 자기들끼리 유럽 연합이니 나토니 하는 것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서양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중일 3국이야 좋으나 싫으나 역사로 엮여 있는 나라들이고, 동남아 국가들과도 아세안 플러스 한중일 해서 꽤 가깝게 지내니 동양이라는 어정쩡한 말도 아주 못 쓸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여간 지금 쓰려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일요일 오후의 끄적임이기에 이렇게 모호한 용어를 있는 그대로 모호하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원래 모호한 것에 대해 말해야 어줍잖은 지식으로 썰을 풀고 약도 팔 수 있는 법이니까요. 서양의 숫자는 7입니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 7일입니다. 계이름도 도레미파솔라시 7개입니다. 카지노에서는 777이 나와야 대박입니다. 무지개는 서양에서도 나라에 따라 5개, 6개라고 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빨주노초파남보 7색입니다. 백설공주 옆에는 여섯도 여덟도 아닌 일곱 난장이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7이 좋은 숫자이다 보니 7에서 하나가 빠진 6은 나쁜 숫자입니다. 그래서 666이 악마의 수가 되지 않았나요. 반면 동양의 숫자는 5입니다. 계이름이 궁상각치우든 중임무황태든 하여튼 5개입니다. 윷놀이에도 도개걸윷모 5개의 경우가 있습니다. 얼굴을 찌푸려도 오만상을 찌푸리지 육만상이나 칠만상을 찌푸리지는 않습니다. 화투를 쳐도 새를 다섯 마리 모으면 어원이 小鳥(kotori) 이든 五鳥(gotori) 이든 어쨌든간에 고도리가 돼서 좋습니다. 무지개도 오색무지개라고는 해도 칠색무지개라고는 안 합니다. 5가 이렇게 좋은 수인데 방위는 동서남북 네 개 밖에 없으니 어쩌지 하다가 어거지로 중앙이라는 개념을 끼워넣어서 어쨌든 오방을 만들어서 오방색을 정합니다.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멋진 산들이 많은데도 꼭 다섯 개씩만 모아서 오악이라고 합니다. 오곡밥은 있어도 육곡밥, 칠곡밥은 없습니다. 하다못해 독수리도 오형제여야 했고 후레쉬맨에서도 옛날 옛날 먼 옛날에 하필이면 다섯 아이가 우주 멀리 저 멀리로 사라졌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파워 레인저도 다섯 명이지만 그건 미국에서 일본 전대물을 수입해가서 그렇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가지 힘이 하나로 모인 캡틴 플래닛은 숫자가 5이지만 굉장히 서양적인 만화인데, 왜냐하면 이 만화의 5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다가 마음을 덧붙여서 나온 숫자라서 그렇습니다. 비슷한 개념이 적용된 것으로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의 영화 제 5원소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5와 7 두 숫자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서양의 7은 기독교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7일동안 만드셨기에 7이 좋은 숫자입니다. 동양의 5는 오행사상에서 왔습니다. 오행에는 목화토금수 다섯 개념이 있습니다. 나무, 불, 흙, 쇠, 물이 서로 물고 물립니다. 행성 이름도 얘네들을 따서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입니다. 그래서 뒤쪽 행성들은 붙일 이름이 마땅치 않아 서양에서 쓰는 그리스 신 이름을 번역하는 바람에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같은 이질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근대에 서양 달력을 쓰게 됐는데 일주일이 7일이니 목화토금수를 다 가져다 붙여도 이틀이 비어서 해와 달까지 끌어들여 일요일과 월요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오색무지개를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으로 부르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동양의 5색 무지개가 서양에서 7색이려면 몇몇 색들이 더 세분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의 '푸른색'이 영어에서는 파란색과 초록색 두 개로 갈라집니다. 우리가 신호등의 초록색 불을 보고 "야 파란불이다 빨리 건너자" 하는 게 다 그런 흔적입니다. 동양 전통이 5, 서양 전통이 7이라면 현대 한국인의 숫자는 뭘까요. 어차피 현대 사회에서 5나 7중 하나만 고집할수는 없습니다. 5만 고집하기엔 7이 우리 삶 속에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반대로 5를 다 버리고 7로 갈아타자고 하는 것은 우리 문화 속에 5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결국 두 숫자 중 무엇을 고르더라도 포기한 것 때문에 잃는 것이 너무 많아지게 됩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5와 7을 평균내서 6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건 꽝입니다. 5 입장에서 보면 6은 쓸데없고 거추장스러운 것 하나를 더 달고 있는 숫자입니다. 더 심각하게도 7 입장에서 보면 6은 666에서 볼 수 있듯 악마의 숫자입니다. 6이 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됩니다. 옛말따나 죽도 밥도 아닙니다. 연예계에서 이런 식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가 국내 인기도 잃고 해외에서도 신통치 않은 결과만 얻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이러느니 차라리 5만 하든지 7만 하든지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습니다. 어줍잖은 퓨전 음식을 만드느니 차라리 한식과 양식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은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5냐 7이냐라는 일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5, 7)이라는 이차원적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5, 7)이 되면 5한테는 "나는 x축으로 5에요"라고, 7한테는 "나는 y축으로 7이에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을 만족스럽게 포함하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또다른 문화권을 새로 접하더라도 쉽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차원만 늘리면 되니까요. 그런데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5, 7)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은 것이 필요하겠지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5와 7 양쪽 모두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잘 알아야 그 다음에 뭘 해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때문에 영어공부를 하면서도 5때문에 국문학 공부도 많이 해야 합니다. 쇼팽과 베토벤을 들었으면 대금 산조도 좀 들어봐야 하고, 유럽 배낭여행 갔다 왔으면 국내 여행도 다녀봐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속해있는 문화권이라고 해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어느 하나도 버리지 말고 둘 다 잘 잡고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양쪽을 잘 알아도 사람이라는 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으로만 쏠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5로 쏠리면 국수주의, 요즘 인터넷 용어로 국뽕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7로 쏠리면 사대주의자나 자국 혐오자, 요즘 말로 국까가 되게 됩니다. 양쪽 예 둘다 SNS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길게 적었지만 결국 줄이면 지피지기(知彼知己) 네 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와 7이 전쟁중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자병법을 인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사실 지피지기(知彼知己)만 보는 것 보다는 다음에 오는 네 글자까지 함께 봐야 더 의미심장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절대로 위태롭지 않다. 이 말대로라면, 반대로 5만 알거나 7만 알면 언젠가는 반드시 위태로운 순간을 겪게 될 것입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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