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6/08 03:07:17
Name   아침커피
Link #1   https://brunch.co.kr/@crmn/17
Subject   과학이 횡포를 부리는 방법
과학은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용어를 자기 마음대로 재정의한 뒤 그 용어를 기존의 뜻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과학적'이라고 부름으로써 교묘하게 자기의 지위를 획득하고 횡포를 부린다. 기존의 용어가 충분히 세밀하지 못하다면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상식적인 사고방식이겠지만 과학은 그 대신 기존 용어를 재정의하는 방법을 택한다. 어떤 면에서는 표준어가 사투리에게 부리는 횡포와도 비슷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저 먼 동네 사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이 하는 말은 '표준'이고 내가 하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횡포 부리는 것이 표준어이지 않나. 과학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금성은 참 아름다운 별이에요!"라고 말해 보자. 누군가는 "맞아요"라고 맞장구쳐 주겠지만 꽤 높은 확률로 누군가는 "금성은 별이 아니에요. 행성이지."라고 핀잔을 줄 것이다. 누구 맘대로 별이 아니래? 현대 천문학이 한국에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우리는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반짝거리는 것들을 통틀어서 별이라고 불렀던 것 뿐인데. 그래서 순우리말로 금성은 샛별이고 유성은 별똥별이고 혜성은 살별이다. 금성은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에게 행성(行星)의 '성'이 별 성(星) 자라는 것을 말해주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아마 개별 한자로는 그렇더라도 행성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요즘 쓰는 뜻으로 정의가 되어 있다고 하겠지. 좋다, 과학에서 엄밀한 정의가 필요할 때면 그렇게 새로운 어휘를 만드시라. 잘 쓰이고 있던 별이라는 단어를 자기 맘대로 가져가서 재정의하는 바람에 샛별과 별똥별과 살별은 별이 아니게 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상황 만들지 말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다른 언어에서도 흔해 보인다. 물고기, 한자로 물고기 어(魚), 영어로 피시(fish). 옛사람들 입장에서는 물속에 먹을만한 게 돌아다니면 물에 있는 고기다 싶어 물고기라고 불렀을 터다. 중국에서는 물 근처에서 돌아다니면 다 물고기 어(魚) 자를 붙였기에 악어(鰐魚) 및 문어를 뜻하는 중국어인 팔조어(八爪魚) 에도 어(魚)가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고, 영어에서도 물속에 있으면 다 피시라고 부르다 보니 불가사리는 스타피시(starfish), 해파리는 젤리피시(jellyfish), 조개는 셸피시(shellfish)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과학이 나타나서 이런저런 분류를 하더니 이건 물고기이고 이건 물고기가 아니라고 자기 마음대로 정해버렸고, 그래서 악어(鰐魚)는 어(魚)가 아니고 스타피시, 젤리피시는 피시가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과학은 기존 명칭을 자기 마음대로 재정의함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획득한다. 이미 존재하던 단어의 뜻을 마음대로 재정의함으로써 과학이 재미를 참 많이 봤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이고, 위에서 언급했듯 나는 우리 마을에서 조용히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언어학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당신이 하는 말은 비표준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과학은 좋지만 과학의 독선과 교만과 아집과 횡포는 싫다. 샛별은 별이 아니고 행성(行星)이라고 말하지만 행성 안에 별 성(星) 자가 들어가 있는 것에는 침묵하는 그 꼴, 참 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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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 통쾌해...!


Velma Kelly
기존의 용어가 세밀하지 못하면 그때그때 새로운 용어를 만들 수가 없죠. 본문 말대로 수천 수백년동안 금성을 별이라고 생각해 금성이라 불렀는데 '금성은 별이 아니니까 OO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라고 한다고 사람들이 그때그때 따라 줄까요? 당연히 단어를 재정의하는게 덜 복잡하죠. 한두 개면 모르겠는데 정착된 용어 중 엄밀히 과학적으로 봤을 때 틀린 단어가 세상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과학이 일상생활에 별 영향도 끼치지 않는데 이상한 용어를 만들어내서 대중과의 갭을 만든다'는 비판을 평소에 더 많이 들어봐서 의아한 글이네요.... 더 보기
기존의 용어가 세밀하지 못하면 그때그때 새로운 용어를 만들 수가 없죠. 본문 말대로 수천 수백년동안 금성을 별이라고 생각해 금성이라 불렀는데 '금성은 별이 아니니까 OO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라고 한다고 사람들이 그때그때 따라 줄까요? 당연히 단어를 재정의하는게 덜 복잡하죠. 한두 개면 모르겠는데 정착된 용어 중 엄밀히 과학적으로 봤을 때 틀린 단어가 세상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과학이 일상생활에 별 영향도 끼치지 않는데 이상한 용어를 만들어내서 대중과의 갭을 만든다'는 비판을 평소에 더 많이 들어봐서 의아한 글이네요.

과학은 쉴새없이 발전하고 새로운 사실을 배웁니다. 과학이 무언가가 진리라고, 앞으로 절대로 바뀔 일이 없다고 단언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애초에 그러라고 있는 학문이 아니에요.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내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결론을 찾는 것 뿐이죠.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과학이 한 용어의 뜻을 갖고 왔다갔다 하는 건 독선이나 횡포가 아니라 우리가 예전엔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에 가깝다고 봅니다.
3
뭐 사실 과학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본문과 같은 횡포를 부리죠. 제가 생각해볼 수 있는 과학의 교만이란.. 과학을 일종의 믿음이나 이데올로기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과학상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과학의 문제라기 보다는 과학용어가 일상의 언어를 차용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과학용어의 용법만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편협한 사람들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천문학적 정의의 '별'이란 용어가 존재한다고 해서, 일상적 용어인 '별'의 쓰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항성'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면 되는데도 굳이 '별'이라는 일상의 언어를 빌려온 것은 딱딱함을 걷어내어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과학자들의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성'은 '떠돌이별'로, '항성'은 '붙박이별'로 바꿔... 더 보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과학의 문제라기 보다는 과학용어가 일상의 언어를 차용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과학용어의 용법만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편협한 사람들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천문학적 정의의 '별'이란 용어가 존재한다고 해서, 일상적 용어인 '별'의 쓰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항성'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면 되는데도 굳이 '별'이라는 일상의 언어를 빌려온 것은 딱딱함을 걷어내어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과학자들의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성'은 '떠돌이별'로, '항성'은 '붙박이별'로 바꿔 부르자는 이야기도 나온 적이 있던 걸로 압니다. 사실 이런 게 과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법학이나 의학 같은 전문성이 높은 분야에서도 잘 생기는 일 같습니다. 학문적 엄밀함과 대중과의 소통을 함께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권위를 맹신하다 보면 뭣이 중한지 까먹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 같아요.
9
사실 ‘금성은 별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어시간에 쳐 졸았냐’ 라고 핀잔을 줘야 맞는거죠.

예를 들어 ‘금성은 항성이에요’ 하면 ‘뭔 개소린겨’ 하는게 맞지만 별은 항성, 행성을 다 포함하는 개념인데 그걸 몰랐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보라고 해야 하는거죠.

국어사전 발췌 -
별 : 빛을 관측할 수 있는 천체 가운데 성운처럼 퍼지는 모양을 가진 천체를 제외한 모든 천체.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포함되나 일상적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 밝기는 등급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과학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전문... 더 보기
사실 ‘금성은 별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어시간에 쳐 졸았냐’ 라고 핀잔을 줘야 맞는거죠.

예를 들어 ‘금성은 항성이에요’ 하면 ‘뭔 개소린겨’ 하는게 맞지만 별은 항성, 행성을 다 포함하는 개념인데 그걸 몰랐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보라고 해야 하는거죠.

국어사전 발췌 -
별 : 빛을 관측할 수 있는 천체 가운데 성운처럼 퍼지는 모양을 가진 천체를 제외한 모든 천체.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포함되나 일상적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 밝기는 등급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과학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전문적인(?) 분야의 용어는 횡포를 부려요. 민법에서의 선의 악의와 일상생활에서 선의 악의가 의미가 전혀 다르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엄밀한 무의식과 일상에서의 무의식이 다르고, 의학에서의 질병명과 일상생활에서의 질병 명이 다르고.. 과학 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문 분야가 그렇죠. 법정가서 ‘나는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내가 왜 악의로 계약을 했단 말입니까?“ 해봐야 씨알도 안먹힙니다. 민법에서의 악의는 그 계약과 관련한 뒷 사항을 알았느냐 몰랐느냐로 나뉘는거라서요. 하지만 그걸 가지고 법이 용어에게 횡포를 부린다고 하진 않죠. 써먹는 분야가 다를 뿐.

윗분들께서 적어주신 대로 그 용어를 주먹에 쥐고 휘두르는 사람들이 못 배워먹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도, 전문 분야도 죄는 없어요.
5
제 댓글이 이 글의 정확한 예시가 될 것 같아 두렵긴 하지만...

'과학'이라는 단어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용어를 제멋대로 재정의' 하는 행위의 주범인지는 모르겠네요. 차라리 '학문'의 출발점이 용어의 정확한 정의이고 과학은 학문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人在江湖
(문자가 횡포를 부리는 방법?...)
은때까치
할말하않입니다.
듣보잡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 아닌가요. 과학은 죄가 없읍니다...
1
키티호크
이거슨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문돌이의 횡포?
양측의 억울함을 재미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켈로그김
약국에서는 킹쩔수 없이 횡포를 부려야만 하는 경우가 많읍니다...

스테로이드, 혈액순환제, 소염제, 면역 등등 용어를 오해하는 분들이 넘모 많기때문..
면역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건기식 회사 다니는 석사 친구가 있는데 자괴감 들어서 못해먹겠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면역이랑 이거랑 관계가 하나도 없는데 면역이라는 글을 써야 물건이 팔린다고... 환장한다고...
1
에이 이건 좀
이런 식의 논리면 오히려 과학 바깥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려는 시도를 더 많이 봤다고 할 수도 있읍니다
차라리 학문이나 전문가들에 대한 이야기면 모를까, 왜 과학만 집어서 과학만 그렇고 과학 아닌 쪽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시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생각나는군요. 양자역학 초끈이론 등을 인문학에서 막 갖다 쓰던...
https://namu.wiki/w/%EC%86%8C%EC%B9%BC%20%EC%82%AC%EA%B1%B4?from=%EC%95%A8%EB%9F%B0%20%EC%86%8C%EC%B9%BC%EC%9D%98%20%EC%A7%80%EC%A0%81%20%EC%82%AC%EA%B8%B0%20%EC%82%AC%EA%B1%B4

생각해보니 만만한 진화(....) 도 많이 털러 오죠 ㅎㅎㅎ.. 학계 사람은 아니지만 전공자로서 개빡치는 순간이 꽤나 많았던걸 생각해보면 하신 말씀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3
한달한권
전 최근 생선육수 채소육수라 하지 않고 어수 채수라고 하는게 싫더라구요. 아마도 육수의 육이 고기 육자니깐 그렇게 구분하는거 같은데 살면서 어수, 채수라는 말을 제 귀로 들은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언중이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 단어를 책상위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밀어내는 꼴이 보기 싫습니다ㅋㅋㅋ
제수 음식 중에 육탕 어탕 소탕이 있어서 어수 채수가 틀린 표현은 아닌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채소를 끓인 물에 대한 표준어는 없다고 하고, 육수의 사전적 정의는 '고기를 삶아낸 물' 이라는 22년 5월 10일에 온라인 가나다 답변이 있네요.
한달한권
채수 어수가 틀린 표현이다라는게 아니라(오히려 정확한 표현이겠죠) 채소육수 생선육수 멸치육수처럼 이미 통용되는 언중의 언어가 있음에도 사전적 의미와 구분에 천착해 고안된 단어가 그 자리를 밀어내는게 그냥 고깝다는 얘기였습니다.
절름발이이리
횡포는 사람이 부리는 겁니다.
5
노바로마
과학의 횡포라기 보단 과학의 이름을 빌린 일부 바보들이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횡포를 부린다고 봐야죠. 과학 자체는 죄가 없죠.
엘에스디
더이상 '혹성'을 '혹성'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해졌는데 관용어라 계속 쓰는 일본도 있죠 ㅎㅅㅎ
어차피 전부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단어들이긴 하지만...
여우아빠
그냥 아무나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사람들이 좋다구나 하고 따를 리가 없지요. 처음부터 과학자들이 대단한 위치를 가져서 그런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과학이 권위를 얻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현대'라고 할 수 있는 문명을 이룩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여전히 많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고 유용하기 때문이죠. 지구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왜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지, 인류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같은 것들을 알려줬잖아요. 과학이 이룬 것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 비과학적 사고임에도 불구하... 더 보기
그냥 아무나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사람들이 좋다구나 하고 따를 리가 없지요. 처음부터 과학자들이 대단한 위치를 가져서 그런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과학이 권위를 얻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현대'라고 할 수 있는 문명을 이룩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여전히 많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고 유용하기 때문이죠. 지구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왜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지, 인류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같은 것들을 알려줬잖아요. 과학이 이룬 것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 비과학적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 '과학적' 이 들어가면 일단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러한 권위를 갖게 된 것이지, 권위를 얻겠다고 용어를 만든다는건 글쎄...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닐까요. 기존 용어를 바꾸는 것은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이고, 꼭 나쁘다고 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그리고 예로 들으신 별과 관련된 사례는 눈치가 없는게 문제 아닐까요. 어떤 과학책에서도, 어떤 과학자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라고 하진 않으니까요. 굳이 따지면 과학의 문제는 저런 식으로 남한테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무심하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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