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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3 01:37:06
Name   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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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마적 / 차오빠오밍



작업하다가 잠시...


마적 / 차오빠오밍 지음 / 민속원 간 / 4점

산동, 만주 지역에 있던 떼강도를 마적 또는 털보, 토비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1800년대 후반 러일 전쟁 전부터 1920년 만주국 형성까지 이곳에서 때로는 살인강간강도, 때로는 군벌, 때로는 치안 유지대, 때로는 항일전쟁의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중국 마적단을 살펴본 책입니다. 책은 왜 마적이 되는지, 마적단은 어떻게 역할 분담을 했는지, 마적들의 신앙, 주요 활동, 일상 취미, 심리, 명칭의 배경, 은어, 복장,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저자가 시골 마을이나 노인정, 양로원을 돌아다니며 당시 마적이었거나 마적의 친척이었거나 마적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채집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앞에서는 모든 마적은 마치 스님처럼 청명해서 여자를 강간하는 마적은 없었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인질로 붙잡은 농민 여성을 강간했다는 둥 두서없는 나열이 눈에 띱니다. 아무래도 90 가까이 먹은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죄라는 걸 알기에 숨기려고 뻔히 사실이 드러날 수 있는 엇갈린 증언을 내놓는 것 같아요. 어이가 없죠.


하지만 이 책은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훌륭한 미시사로 활용 가능합니다.


당시 중국은 청나라 후기로, 갈수록 외세의 침략에 국가의 권리를 빼앗기면서 혼란에 빠져 중앙의 명령은 지방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산동 반도와 만주는 산세가 험악하고 물자나 자원이 풍부해 침략하거나 새로 일어나는 세력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결국 이곳은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누가 먼저 땅을 먹느냐, 일테면 젖과 꿀이 흐르는 행정 공백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주변국들이 가만 놔둘 리 없겠죠? 블라디보스토크를 세우기 위해 러시아가 먼저 침략했고, 이어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면서 이곳의 주민들은 이웃과 함께 자신들의 평화를 지키거나, 이웃을 약탈해서 잘 살거나, 러시아와 일본을 공격하는 등의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 시대 만주에는 산봉우리 한 개마다 천 명의 마적들이 살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그 위치도 알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협박을 받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거든요. 마적들은 인질을 납치해 몸값을 받아냅니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협상가들이 오가고 고문이 자행됩니다. 종종 미친 마적들은 인질을 고문 살해합니다. 이들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협력해서 방어부대를 만들거나 다른 마적단을 고용해 마을에 주둔시킵니다. 한편 정부군이나 유력 군벌들은 자신의 땅에서 일본군이나 러시아군을 내쫓기 위해 비교적 온건하고 상식적인 마적을 설득해 항일전쟁, 항러전쟁에 그들을 끌어들입니다.
……뭐, 원해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들은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가끔은 최악)을 다합니다.


암울한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심리와 사건사고, 행동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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