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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1/23 15:29:50수정됨
Name   심해냉장고
File #1   LANGRISSAR.png (101.9 KB), Download : 33
Subject   랑그릿사와 20세기 SRPG적 인생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우연히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를 접하게 되었다. SRPG라는 장르를 개척한 위대한 작품 중 하나. 21세기, SRPG가 장르화되고 클리셰화되어 퇴화하기 전 시대의 '진짜' 20세기의 SRPG. 이렇게 내가 대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못 먹은 포도는 지나치게 시거나 지나치게 달콤하다.
그러니까, 나는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랑그릿사의 끝을 보지 못했다.

이십 몇년 전의 기억이라 모든 것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나 여러가지가 기억난다. 당시에는 게임잡지, 라는 게 있었고 나는 해당 공략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보지 않은 채로 열심히 플레이를 했다. 뭐랄까, SRPG란 그런 것이다. 이건 레이싱 게임도 액션 게임도 아닌, 순서대로 내 병력을 지휘해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종의 체스와 같은 게임이다. 공략을 보고 게임을 하는 건 답을 알고 퍼즐을 맞추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해서 나는 '최소한의 정보'만 흝어본 채로 게임을 즐겼다. 일단 나는 일본어를 모르고, 승리조건은 알아야 시나리오를 깨고 다음 판으로 넘어갈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게임을 플레이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거대한 좌절과 절망, 그리고 악의를 맛보게 되어 비뚤어진 어른으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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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하게 캐릭터성을 즐길 수 있는 후세대/21세기형 SRPG와 다르게, 초기의 20세기형 SRPG는 그야말로 인간 악의의 총집결 같은 게임이었다. 파이어 엠블렘과 랑그릿사로 대표되는 이 게임의 특징은 이러하다. 일단, 캐릭터는 한번 패배하면 끝이다. 전투불능? 기절? 퇴각?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하면 죽고, 이후로 다시 되살릴 수 없다. 영원한 죽음이다. 게다가 전투 결과의 우연성이 강하다. 상성상, 전력상 앞서는 부대로 적을 공격했는데 아군이 전멸당하는 경우는 꽤나 빈번하다. 물론 역의 경우도 발생한다. 작은 문제라면 언제나 적의 병력은 아군의 병력보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앞서 있다는 것이다. 그냥 싸워도 불리하고, 우연히 개입하면 더 불리해진다. 마치 인생과도 같다. 아, 만렙 지휘관이나 1렙 용병대나 언제나 최대 체력은 10이다. 크리앞에 한방이다. 인생과 마찬가지. 아무리 침착하게 산다 해도 당신은 쇄도하는 불운을 피할 수는 없다.

이벤트란 죄다 통수다. 물론 게임 시작부터 주어지는 강력한 동료는 시나리오 초반에 죽어 없어진다는 건 장르를 초월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클리셰일 것이고 랑그릿사도 물론 그러하니 이것은 통수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이 게임은 한 시나리오가 시작되기에 앞서, 적 병력의 정확한 규모와 '대략적인' 배치 상태(이 지역에 병력이 배치됨, 정도. 총 병력은 정확하게 보여주나 배치된 병력의 상세규모/레벨은 보여주지 않는다)를 보여준다. 이게 이 게임의 백미다. 적의 병력과 배치를 보고 거기에 맞게 합리적으로 아군 병력을 편성하고 배치하는 순간, 당신은 거대하고 짜임새있는 20세기의 악의와 대면하게 된다.

'이쪽이 평지니까 이쪽에 기병대를 배치해서 돌파하고 저쪽은 보병대로 일단 수비를 하다가 돌파한 아군 기병대와 합류해서.. 적 병력에 기병대가 있는데 기병대면 당연히 여기 배치될 테니 이쪽에 궁병대를 한팀 배치하고.. '하고 대전략의 지휘관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병력 배치를 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완벽하고, 아름답게, 망한다. 악의는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기병대를 배치한 곳에는 기병대에 강한 적 궁병대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보병으로 수비하기 좋지, 싶은 좁은 곳에 적은 마침 두 부대의 기병대를 배치해둔 참이고(대체 왜???) 당신의 보병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엿먹일 의도가 아닌 이상 여기에 배치될 이유가 없는 대규모의 기병대에 두 턴만에 곤죽이 된다.

기병대.
이 게임에서 기병대는 모든 악의의 핵심이자 근본이다. 조셉 콘라드나 러브크래프트가 랑그릿사를 해봤으면 기병대에 대한 단편을 최소 다섯 편 정도는 썼을 것이다.

랑그릿사에서 '적의' 기병대는 정말로 강력하다. 특히 초반의 야외전 시나리오에서, 적의 기병대는 보병 위주의 아군을 그야말로 저돌맹진으로 박살내버린다. 그에 대비하여 당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궁병대를 써야 한다. 궁병대는 기병에게 강하고, 보병에게 약한데, 기병보다 비싼 주제에 전반적인 스펙은 몹시 구리다. 거대한 부조리를 느끼며 당신은 꾸역꾸역 궁병대를 고용해 적 기병대를 상대해야한다.

일반적인 멀쩡한 요즘 게임이라면, '게임의 편의성'을 위해 기동력이 좋고 강력한 클래스를 아군에게 주는 게 정상적이다. 그 편이 재밌고 신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력하고 빠른 군세로 적을 두드려패기를 원하지, 강력하고 빠른 군세를 갖춘 적에게 신나게 두들겨맞으며 한땀한땀 천천히 버텨나가기를 원하지 않고, 생산자인 게임회사는 소비자인 게이머에게 즐겁고 원하는 경험을 주는 편이 좋다. 하지만 20세기 srpg의 전설, 랑그릿사에서 당신은 느려터지고 구린데 심지어 고용단가는 기병대보다 비싼 궁병대로 쾌속질주하는 적 기병대를 틀어막아야 한다. 이렇게 얻어터지다 보면 당신은 '아 나도 기병대 할거야'하며 주인공과 몇몇 지휘관들을 기병대로 승급시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함정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폭삭 망한다. 이 함정이 정말 굉장한 것은, 기병대 같은 잘못된 직업을 고른 당신은 후반까지 당신이 망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인생과 마찬가지다). 초반에 직업을 결정할 때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나게 신이 난다. 강한 공격력으로 적 보병대를 까부수고, 적 기병대와 그럭저럭 대등한 전투를 벌이며, 적 궁병은 기동력으로 우회한다. 마치 징기스 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다 마침내 후반부에 오면, 사실 인생과 게임이 한참 전에 기병대 따위의 직업을 골랐을 때부터 망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후반부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실내전이고, 기병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해진다. 시나리오 기획에 심리학을 전공한 놈이라도 고용한 건지 아니면 정치인이라도 고용한 건지. 실로 대단한 악의라 할수 있다.

후반, 실내전 시나리오에서 기병대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그 시나리오를 재시작하는 게 아닌, 맨 처음, 시나리오 1(혹은 지휘관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기억나지 않을 게 분명한 초반 시나리오 어딘가)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것 뿐이다. 당신이 열 시간을 했건 스무 시간을 했건 말이다. 고전적인 srpg게임에서, 캐릭터 육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인생처럼 대충 맞춰서 직업을 고른다면, 게임의 중후반에 당신은 '아 씨1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나'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진다.

기병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인공의 라이벌 흑기사 란스다. 이 친구는 정말 굉장한 스토커인데, 정말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시도때도 없이 대규모의 기병을 끌고 난입해 아군을 박살낸다. 이 친구 난입의 핵심은, 이 친구의 존재는 시나리오 시작시에 '적 병력'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시작 단계에서 적의 기병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비싸고 구린 궁병을 배제하고 싸고 구린 보병대로 진격하다가, 아 이제 이겼네 싶을 때, '서프라이즈!' 하며 등장하는 것이다. 대규모의 강력한 기병대를 이끌고 등장한 흑기사 란스는 궁병을 편성하지 않은 우리의 본대를 사뿐하게 즈려밟고, 나는 쌍욕을 하며 시나리오를 다시 시작하고, 이번에는 궁병을 편성한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번에도 란스가 나오겠지' 하고 적에 기병이 없는 시나리오에서 궁병을 고용해두고 보면, 이 분께서 왠지 잘 안 오신다는 것이다. 아, 이게 끝이 아니다. 더 화가 나는 상황도 가능하다. 분명히 평지가 있는데 적에 기병대가 없어서 '대충 이쯤 가면 란스가 또 기병대 끌고 난입하겠지'하고 난입할 란스에 미리 대비해 궁병을 고용하고 시나리오를 진행한다. 어라, 그런데 평야에 도착해도 란스가 등장하지 않고, 적은 예상외로 강력하다. '이번 시나리오엔 란스 안 나오나보다' 하고 고용해둔 궁병대를 고기방패로 소모해가며 평야의 회전에서 적의 대군세를 어찌저찌 무찌르고, 이제 적의 최종 지휘관 앞까지 진격하려는 바로 그 순간, 흑기사 란스가 등장한다. 그의 기병대는 이제는 궁병대가 없는 내 부대를 도륙낸다. 나는 시나리오를 재시작하고 이번에는 궁병대를 아끼며 대회전에 임한다. 알파고까지 갈 것도 없다. 멋진 악의로 잘 조율된 구식 AI와 시나리오 앞에서, 인간은 이토록 무력하게 짓밟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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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랑그릿사의 첫 번째 빡침은 첫 번째 지휘관의 전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건 전략게임이지만 rpg게임이기도 하니까, 패배해도 다음 판에 다시 살아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지휘관이 죽은 채로 그 시나리오를 쭉 진행했는데, 다음 시나리오에, 그 지휘관이 없다. 나는 일본어를 몰랐고, 캐릭터가 패배할 때 외치는 말이 '이만 후퇴합니다.' 정도였으리라고 생각했다. 후에 일본어를 조금 공부하고 다시 도전한 나는, 그게 사세구라는 걸 알았다. '아아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늘이... 푸르군요' 라는 말을 하며 죽는 지휘관은 제법 있겠지만 저런 말을 하며 후퇴하는 지휘관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에이 뭐 별로 안 중요해보이는 지휘관이니까 (당시 그리고 현재의 수많은 게임들이 그렇듯, 안 잘생긴 친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라고 게임을 이어나간 나는 후에 빡치는 일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되는데, 지휘관은 추가되지 않는다. 시나리오별로 출격할 수 있는 지휘관의 수는 다르며 최대 8명인데, 게임에 등장하는 지휘관의 수도 8명이다. 즉, 머릿수가 모자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초반에 별로 안 중요해보이던 지휘관이 사망한 채로 중반까지 게임을 진행하다가, 다시 게임을 초중반으로 되돌렸다. 별로 안 잘 생긴 지휘관 녀석을 살리고, 죽지 말라고 레벨업도 시켜주고 장비도 쥐어주면서.

두 번째 빡침. 이것은 정말로 내 게임인생 사상 최고의 빡침과 좌절이었다. 실로 '게임계의 단소'라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아직도 시나리오명이 생생히 기억나는데, '워스의 혈전'이었다(후에 알게 된 건, 오역이었다. 월의 혈전다). 중반부 내지는 중후반부의 시나리오. 주인공 일행은 월 강 건너로 이동해야 한다. 스토리 같은 건 잘 몰랐으니 뭐 도망가는 거 혹은 적을 추격하는 거 그런 것일 것이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육두문자가 나오고 몸에 혈전이 돋아나려 한다. 강에서 모든 병력의 이동력은 극도로 제한된다. 우리는 한턴에 두칸씩 움직이는데 적들은 한턴에 열칸씩 움직이는 수병 지휘관이 둘이나 있다. 내 병력들은 강에서 적들의 수병들에게 무참히 도륙되었다. 그야말로 무참하게 도륙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 강을 반 이상 건너던 순간 아, 좌우에서 정체불명의 오징어괴물들이 나타난다. 이미 적의 수병들에게 도륙나 반토막도 남지 않은 내 병력들은 죄다 오징어밥이 되었다. 다시 시작. 적의 수병들을 육지로 유인해 모두 무찌르고 강을 건넌다. 오징어괴물에게는 밥을 주고 건너자. 궁병대 몇을 희생해서 강을 건너는데 성공하는 순간

이 씨1발진짜

짜잔, 주인공의 영원한 라이벌, 흑기사 란스가 등장해 우리를 맞아준다. 오징어에게 먹혀 반토막이 난 내 병력은 란스의 기병대에 무참하게 짓밟힌다. 또 실패. 아니 분명히 게임 시작 전, 전황창에는 적의 기병이 없었다. 해서 나는 기병 대비를 전혀 하지 않는 편제로 전투를 시작했는데, 란스의 기병대가 난입하는 것이다. 이게 이 시대 게임의 매력이다. 적에 기병이 없어서, 기병에게 강한 효율을 내는(그리고 비싸고, 보통은 안 좋은) 궁병이 없는 편제로 출전하면, 언제나 '적의 증원군이다!' 라면서 대규모의 기병대가 출전한다.

다시 시나리오를 재시작한다. 이번에는 오징어괴물을 맞상대하는 전략을 짜본다. 모든 벙력을 모아 적의 수병을 무찌르고, 오징어괴물도 무찌...를 수가 없다. 오징어괴물은 지나치게 강하다. 이 시대 게임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무지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이 반드시 등장하고는 한다. 세상에는 니가 아무리 물리치고 싶어도 이길 수 없는 적들이 존재한다, 는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또 재시작한다. 보병대로 육지에서 적의 수병을 무찌르고, 남은 보병대를 오징어밥으로 주고, 궁병과 기병으로 강을 건너 염병할 흑기사 란스와 일전을 치룬다. 지휘관만 간신히 살아남은 채로 란스의 기병대를 무찌르고, 나는 드디어 그 시나리오를 클리어한다.

훗, 쉽군. 이것도 깬 내 앞에 더이상 어려움은 없다. 나는 다음 시나리오를 쉽게 클리어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쌍둥이 탑. 여기서 성검 랑그릿사를 찾는 내 모험은 끝나고 만다.

그냥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스토리상 적의 쌍둥이 탑에 침입한 아군의 부대가 둘로 나뉘어 습격을 받는다 뭐 그런 거라는데, 내 기병대 지휘관들은 모두 적들의 궁병밭 한가운데에, 내 보병대 지휘관들은 굉장히 멀리 저기 저 멀리에 자리잡고 있다. 무슨 짓을 해봐도 한두 턴 안에 전멸하고 만다. 애초에 초반에 아군 지휘관을 기병대로 키운 것이 잘못이었다. 처음에 말한 대로, 이 염병할 게임은, 초반 평지전에 기병대가 좋아서 신나게 기병대를 키워두면, 후반 시나리오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내전에서, 예쁜 화살꽂이가 될 뿐이다. 실로 아름답고 교묘하게 잘 직조된 악의라 할 수 있다.

나는,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열 몇 시간인지 스물 몇 시간인지 삼십 몇 시간인지를 넘게 해 온 게임을 말이다. 당시의 기병대 전력으로는 도저히 돌파가 불가능했다. 다시 열 몇 시간을 해서, 모든 지휘관을 보병으로 육성하고, 또 월 강의 혈전을 고생하며 치뤄내고, 그리고 다시 쌍둥이 탑에 침입해서, 혈전을 치뤘다. 겨우 겨우 승리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더는 이 빌어먹을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게 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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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PC로 컨버젼된 랑그릿사 1을 해보았다. 조금 해보다가 껐다. 최악의 이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보조 마법에 경험치가 부여되어 속칭 '힐노가다'로 캐릭터의 레벨업을 너무 쉽게 할 수 있었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져서 돌파가 정말로 힘든 공성전 맵들의 난이도가 너무 낮아졌다. 그리고 패배한 캐릭터는 '후퇴'로 처리해 다음 시나리오에서 쓸 수 있어서 아군 지휘관을 '던지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이런 건 내 랑그릿사가 아니야. 가장 효율적인 레벨업을 해도 적보다 레벨이 모자라고, 공성전은 병목에 낑긴 채 메테오 샤워를 맞아가며 근성으로 돌파하고, 옥쇄를 각오한 지휘관은 정말로 옥처럼 부숴지는 게 랑그릿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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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덕에 마음은 스산하고 시간은 애매하고 하다가 문득 랑그릿사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즐거운 고난도 있었더랬지, 하는 마음으로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롬을 받아 에뮬레이터로 즐겼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시대는 이제 21세기이며, 20세기의 물건 따위 서너시간이면 끝장을 보겠지.

라고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 일단 기병만 안 키우면 되고 월 강의 혈전만 잘 이기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깨달았다. 아, 20세기는 정말로 하드코어했던 시대였구나. 그때 어려웠던 것이 지금이라고 쉬워질 리가 없구나. 기병을 안 하는 게 핵심인데 기병만 안 한 다고 되는 건 아니구나. 그리고 란스 이새끼 진짜 시도때도 없이 계속 나오네 코로나여 뭐여 진짜.

아무튼 나는 강력한 병력을 이끌고 신검 랑그릿사를 되찾고 마왕을 무찌르는 데 성공했다. 찾아보니 올해로 30년이 된 게임이었다. 인생 최고의 게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어린 시절과 어른 시절의 내게 적잖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 재밌는 게임이었다.

이 시대도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기를. 나름의 깨달음과 즐거움이 함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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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ㅋㅋㅋㅋㅋ
  • 어르신, 춘추가?
  • 추천을 아니할 수 없게 만드는 명문입니다.
  • 명징하게 직조된 리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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