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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3/24 13:20:06수정됨
Name   엘에스디
Subject   새뮤얼 피프스, 왕비의 미라에 입을 맞추다
1669년 2월 23일

기상 후 오전 내내 집무실. 이후 귀가해서 가볍게 식사. 삯마차를 타고 아내와 아가씨들이 도착했다... 나는 모두를 이끌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가서 그곳의 온갖 무덤을 세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회의 화요일이라 방문객이 제법 있었으나, 우리는 안내인을 대동하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안내인의 특별한 호의에 힘입어 발루아의 캐서린 왕비의 시신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상반신을 두 팔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는데, 처음으로 왕비와 키스를 나눈 그날이 하필이면 내 서른여섯 살 생일이 아니겠는가. 박학다식한 안내인은 캐서린 왕비가 매장된 적조차 없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왕비는 제대로 땅에 묻혔지만, 헨리 7세가 이쪽 예배당을 건설할 때 파낸 시신을 목제 관에 담아서 한쪽에 방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시체 아래에 있는 납을 댄 관이 원래 시체가 들어있던 장소인 듯했다...



일기 작가이자 이름난 난봉꾼인 새뮤얼 피프스는, 자신의 36세 생일을 맞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왕비의 미라와 입을 맞춥니다.

Samuel Pepys.jpg

새뮤얼 피프스는 17세기 런던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 ‘일기’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플릿 스트리트의 재단사와 푸줏간 여식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고,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대인만큼 곧 장남이 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해군 행정가로서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를 섬겼으며, 군 경력이 없음에도 군제 개혁에 성과를 보였고, 이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됩니다. 그의 일기에는 당대 런던 시민의 생활상뿐 아니라 왕정복고 이후의 크고 작은 여러 사건도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영국으로 귀환하는 찰스 2세의 배에 동승하고, 런던 대역병과 런던 대화재, 2차 영란전쟁에 이르기까지 관찰자의 위치에서 솔직하게 기록한 그의 일기는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여러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요로결석으로 고통받았다던가, 21세의 나이에 고작 14세인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던가, 다양한 연애 편력이라던가, 그 연애 편력으로 인한 부부싸움이라던가. 입궁했다가 복도에서 왕의 정부의 레이스 팬티를 발견하고 흥분했다던가. 노래를 잘해서 종종 웨스트민스터 사원 성가대와 함께 노래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위 초상화에서도 악보를 들고 있지요)

그리고 그 일기에 적힌 터무니없는 사건 중에서는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죽은 왕비와의 키스. 그것도 아내와 두 친척 여동생이 보는 앞에서요. 그의 여성 편력 중에서 최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최고로 기괴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요.




서른여섯 살 생일을 맞은 새뮤얼 피프스는 가볍게 점심을 들다가 극장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내와 친척 동생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안내하려 집을 나섭니다.

손아래 육촌 동생인 바바라와 베티는 각각 스무 살, 열여덟 살의 한창때의 아가씨들이었습니다. 부친 로저 피프스의 네 번째 결혼 때문에 함께 런던을 방문한 와중이었지요. 로저가 새뮤얼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둘러 결혼했다는 점, 두 미혼여성이 며칠 동안 제대로 의복을 갖추지 못해 외출하기 힘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쪽 가정 사정도 그리 순탄치 못했던 모양입니다. 항상 로저를 좋아했던 새뮤얼조차 그의 결혼 사실을 나흘 후에야 알게 되고서는 ‘이렇게 끝나서 차라리 다행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물론 언제나 여성에게 호의적인 새뮤얼은, 로저와 결혼한 에스더 부인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고는 있습니다만.

두 사람을 ‘마땅히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아이들’이라고 칭한 것을 보면, 새뮤얼은 두 친척 동생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새뮤얼은 아내와 종종 연극을 관람하던 링컨스 인 필드의 ‘듀크 오브 요크’ 극장에 두 아가씨를 데려가기도 하고, 저녁 식사에 초청해 자신의 저택에서 묵고 가게도 하는 등 여러 면으로 호의를 베풉니다. 남편과 일곱 살 터울인 아내 엘리자베스도 두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줄곧 같이 어울리곤 했습니다. 이들이 친척 오라비의 행동을 어떻게 여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갓 런던에 도착한 시골뜨기였던 만큼 '도시 놈들의 기행' 정도로 태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유리 공예점에 데려가서 유리 부는 모습을 구경시켜 준 모양이니, 의외로 금세 잊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Elizabeth Pepys.jpg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있어서는... 글쎄요, 이제 남편의 여성 편력에는 익숙해진 상태였을 테니, 죽은 왕비 따위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남편이 눈앞에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전해 10월에 자신의 말동무로 고용된 데보라 윌렛과 한 침대에 든 모습을, 그것도 교합이 한창인 상황을 자기 눈으로 목격했으니까요. 결혼 직후부터 새뮤얼의 질투 때문에 몇 년 동안 별거하기도 하고, 이후 수년에 걸쳐 다양한 풍파를 겪어 온 사람이니, 이런 기행에는 오히려 코웃음만 쳤을지도 모르지요.


난봉꾼 피프스는 술집에서, 마차에서, 극장에서, 타인의 집에서, 자신의 집에서, 심지어 교회 예배석에서까지 다양한 만남을 즐겨 왔습니다. 일부는 가벼운 희롱이었고, 일부는 몇 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된 관계였지요. 친구나 동료의 딸이나 어머니나 부인, 부하의 아내, 술집 종업원, 자기 집의 하녀들까지, 대상조차 별로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보스인 샌드위치 백작 몬태규 공의 부인과도 종종 독대를 했는데... 부디 업무만 처리하고 끝낸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생일이라고 해도, 왕비의 유해에 입을 맞추는 초특급 관종짓을 보여주기에는 적절치 못한 관객들이 아니었을까 싶지요. 엘리자베스의 소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이후 한동안 대형 부부싸움의 기록이 없기는 합니다.




Catherinevalois.png

헨리 5세의 왕비, 발루아의 캐서린의 유해는 거의 300년 동안이나 방치된 채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의 딸이자, 프랑스의 왕권을 탐낸 15세 연상의 헨리 5세와 결혼했던 여성이기도 하지요. 2년의 짧은 결혼생활이 헨리 5세의 사망으로 막을 내리자, 그녀는 연인이었던 웨일즈 출신의 오웬 튜더와 결혼하여 자손을 보게 됩니다. 이후 여러 스캔들을 겪다가 넷째 아이를 사산하며 35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웨스트민스터에 안장되지요. 그녀가 비밀리에 낳은 아들이자 헨리 6세와 동복형제였던 에드먼드 튜더가 바로 헨리 7세의 아버지니, 헨리 7세는 자신의 손으로 친할머니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방치한 셈이 됩니다.

장미전쟁의 최종 승자로서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일거양득을 즐기는 냉정하고 교활한 군주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의회를 협박해 자신의 치세의 시작을 보즈워스 전투 하루 앞으로 당긴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보즈워스 전투에서 자신에 대적해 싸운 귀족들을 간단하게 역신으로 몰아버린 헨리는, 그들을 압박하는 동시에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을 뜯어내는 성과를 올립니다. 

헨리 7세가 진행시킨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증축 또한 복합적인 목적을 지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저지대 국가와 독일 및 이탈리아의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위엄을 떨치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헨리 6세를 성자의 반열에 올려 그를 중심으로 한쪽 예배당을 재구축하고, 자신의 후손들이 영원히 묻힐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헨리 6세의 시성이 그의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후자의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헨리 7세 예배당의 중앙 석관에는 결국 헨리 7세 본인이 들어가게 되지요. 튜더 왕조가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과 함께 일찍 막을 내림으로써, 그가 마련한 튜더 왕조의 영면처는 또다른 노회한 군주인 제임스 1세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 헨리 7세에게 친할머니와 그녀의 남편은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일까요. 그의 정통성은 모계 쪽으로 이어지는 랭카스터 가문의 혈연에 있었으니, 웨일스 출신 하급 귀족과 프랑스 공주의 비밀 결혼의 소생이라는 친가 쪽 뿌리는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의 모친 매거릿 뷰포트는 헨리 7세 예배당의 좋은 자리에, 아들이 몸소 초청한 이탈리아 조각가 토리지아노의 작품인 화려한 금동 관에 매장됩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을 증축하기 위해 파헤쳐진 할머니의 시체는, 그대로 나무 관짝에 든 채로 헨리 5세 소예배당에 방치되어 버린 거지요.

옛 ‘숙녀의 예배당’을 허문 것이 1502년이니, 36세 생일을 맞아 새뮤얼 피프스가 입맞춘 왕비는 죽은 지 230년, 파헤쳐진 지 166년이 지난 시신이었던 셈입니다.

18세기의 문필가이자 성직자였던 존 다트는 1723년작 <웨스트모나스테리움>에서 캐서린의 시신을 ‘지금껏 언제나 그리 보였던 것처럼 골격은 여전히 탄탄히 연결되어 있고, 온몸을 둘러싼 얇은 살결이 마치 무두질한 가죽에서 긁어낸 찌꺼기처럼 보인다’고 묘사합니다. 전형적인 미라의 모습이죠. 50여 년 전의 피프스가 마주한 시신도 크게 다른 형상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새뮤얼 피프스의 일기는 1669년 5월 31일자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본인은 눈병으로 인한 시력 감퇴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 이후 20년이 넘도록 눈멀지 않고 팔팔하게 활동한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일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프스 부부는 처남을 대동하고 파리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런던에 돌아온 직후, 아내 엘리자베스는 고열에 몸져눕게 됩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며칠 후인 11월 10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난봉꾼이기는 해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던 피프스는 크게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해군성 회의에도 몇 주 동안 참석하지 못합니다. 이후로도 여성 편력은 계속 이어진 모양이지만 재혼은 하지 않았고, 1703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에도 아내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St Olave, Seething Lane, London EC3 - Wall monument - geograph.org.uk - 1077536.jpg
두 사람의 교구 교회였던 세인트 올라브즈 처치는 런던 대공습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고, 새뮤얼이 수주한 엘리자베스의 흉상은 여전히 부부의 무덤 위편에서 해군 예배석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고, 방종한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도 결실은 없었습니다. 반복된 요로결석 치료 때문에 불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리고 피프스의 이름을 후세에 전한 ‘일기’는... 유언에 따라, 그의 모든 장서와 함께 케임브리지에 기증됩니다. 해군 암호로 작성했으나 깔끔하게 제본까지 끝내서 읽어달라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여섯 권의 일기책도 서가째로 케임브리지로 옮겨지지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암호를 낑낑대며 거의 다 해석한 후에야 같은 책장 세 단 위에서 일기에 사용한 암호책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번 관종은 죽어서도 관종인 모양이지요.



한편 300여 년 동안 구경거리 취급을 받던 발루아의 캐서린의 유해는, 1778년이 되어서야 개축한 성 니콜라스 예배당의 한쪽 구석에서 쉴 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후 빅토리아 시대인 1878년에 이르러, 헨리 5세 소예배당에 작은 제단을 만들고 그 아래 안장하면서 마침내 영면에 들게 되지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유해가 널부러져 있던 목관 옆에는 이런 시가 적힌 석판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영면에 든 캐서린 여왕이 있으니,
프랑스 왕의 적녀이자
샤를 6세가 품은 왕국의
진정한 계승자인 이로다

두 번에 걸쳐 행복한 결혼을 했으며
그중 하나는 다섯 번째로 헨리라는 이름을 쓴 이였으니
그녀로 인해 그는 영예를 입었고
두 개의 왕권을 몸에 두르게 되었도다

혈통으로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고
캐서린 여왕의 계승권에 힘입어
프랑스 왕국의 통치권마저 누렸으니
진실로 승리를 거둔 왕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이곳에 당도하여
뭇 잉글랜드 신민의 여왕됨의 권리를 얻었으며
나흘 동안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미와 경외를 바쳤나니

여왕은 산실의 고통을 감내하며
헨리 6세를 세상에 내었고
그의 제국에서는 프랑스인조차도
영국의 신민이라는 허울을 둘렀으니

그 자신에게도 그의 왕좌에도
행운의 별의 축복이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그 신실함에 있어서는
양친에 뒤떨어짐이 없는 이였도다

이후 오웬 튜더와 결합하여
다음 아들인 에드먼드를 가졌으니
오 캐서린이여, 그의 아들은 영예롭게도
명망을 떨친 군주가 되었도다

브리튼의 진주이자
잉글랜드의 기쁨인 헨리 7세가
두려움 모르는 군주이자 선량하고 자비로운 그가
바로 에드먼드의 아들이었으니.

그리하여 행복한 아내였으며
순결하고 행복한 어머니였던 그대는
세 번에 걸쳐 왕의 핏줄과 이어졌으니
분명 세 배는 행복한 이였으리라.

(<웨스트민스터 성 피터 수도교회의 역사와 유물>(1823)에서 발췌)


나무 관짝 속에서 구경거리가 된 왕비에게는 차라리 피프스의 입맞춤 쪽이 더 기껍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이건 순전히 억측일 뿐인데... 피프스는 같은 이름의 다른 외국인 왕비의 모습을 그 유해에 겹쳐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찰스 2세의 왕비였던 브라간사의 캐서린 (훗날 포르투갈의 카타리나 섭정) 말이지요. 차분하고 신심이 깊으며 영국에 차를 도입한 인물로 알려진 브라간사의 캐서린은, 포르투갈과 영국의 협정으로 찰스 2세와 결혼하게 되었고, 1662년에 포츠머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찰스 2세에게는 캐슬메인 백작부인 바바라 빌리어스라는 정부가 있었고, 캐서린 왕비는 수많은 정부와 애인들에 밀려나 뒷방 신세가 됩니다. 카톨릭 신앙 때문에 민중에게 인기도 없었고, 훗날 교황 음모론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지요.

피프스는 (어이없게도) 찰스 2세의 방탕한 성생활을 비난하고 캐서린 왕비를 동정하는 쪽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캐슬메인 백작부인을 견제하고자 했던 샌드위치 백작부인의 뜻도 들어가 있었을 테니, 정치적인 함의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요. 해군성 관료이자 사교계 인사로서 캐서린 왕비를 여러 번 접견한 그로서는, 유해를 품에 안으며 다른 불우한 왕비를 떠올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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