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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7/30 20:53:35수정됨
Name   물냉과비냉사이
Subject   나의 군생활 이야기 - 1
가을의 캠퍼스라 하면 아마도 단풍과 은행이 예쁘게 익어서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는게 보통일 것이다.

나에게 대학 교정의 가을은 조금 많이 추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대학에 다니던 때 총학생회를 했는데 10월 말부터 11월 초중순 정도면 항상 총학생회 선거운동을 뛰어야 했다.

선거운동원들이 입는 선거운동복은 대개 후드 집업이었는데 슬슬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다른 학생들이 파카라든지 코트라든지 두꺼운 외투를 꺼내입을 때도 초가을의 복장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언제나 추웠다.

2005년의 가을에 나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가을의 어떤 날에 나는 선거운동본부실에서 땀을 식히면서 쉬고 있었다.

다른 선거운동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워 당시 총학생회장 후보를 했던 형과 단둘이 남게 되자 형은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너는 나중에 정호랑 같이 학생회를 하고 싶은거야? 아니면 니가 회장을 하고 싶은거야?"

나는 학기를 마치면 군대를 갈 계획이었고 선배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2학년이고 이번 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가지 않으면 여로 모로 애매해지는 상황인데 선거라니? 그리고 나는 회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선배들에게 회장을 해보고 싶다는 야심을 내보인 적도 없었다.

"네? 저는 이번 선거 끝내고 군대 가야죠. 3월 전에는 가려고요. 전역하고도 학생회를 계속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제대하고 나서도 우리가 계속 학생회를 하고 있을까요? 선거를 두 번이나 더 이겨야 되는데. 다녀오면 뭐 저도 취업한다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겠죠."

나라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 때 알았다.

나는 거절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거에 나갈 생각 없다거나, 회장 감투에는 욕심이 없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이야기는 나는 곧 군대 가야 된다는 말 뿐이었다.

형이 물었을 때 사실 기뻤다.

나는 조용하고, 소심하고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따라다니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나에게 나도 모르는 뭔가를 선배들이 나에게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이를 세어보면 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재수는 하지 않아서 나이는 문제가 없지만 2학년을 마치고도 군대에 가지 않고 학생회를 1년 더하고,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어서 1년을 더 하면 그 때는 이미 4학년이다. 혹시 선거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내 인생은 어디로 꼬이는 걸까 생각해보니 끔찍했다.

그래도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짜봤다. 당선되고, 총학생회장 임기 보내고 나이 먹고 병사로 가기 억울할 것 같으니 학사장교로 입대하는 걸 생각해봤다. 군 생활이 3년이 넘는다. 거기서 생각이 그쳤다.

나는 형에게 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며 말했다.

"5분 뒤면 쉬는시간이에요. 강의실 유세 가야죠. 애들 불러올게요."


그렇게 나는 선거운동을 열심히 뛰었고 우리는 선거에서 또 이겼다.

. . .

선거에서 이겼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는데, 그 때 선배들 사이에 시덥잖은 다툼을 보고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도와주러 온 학생들 중 고학번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참 예뻤다. 심지어는 이순신 장군님 같은 기백까지 느껴지는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예쁜데다가 털털한 성격과 말솜씨까지 가졌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 누나를 좋아했었다. 이성적으로건,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건 매력있는 사람이었다.

그 누나를 좋아했던 선배들은 모두 여자친구가 있었다. 학생회를 다들 열심히 했던 사람이어서 새벽이건 주말이건 학교에 나와서 일을 했다. 그렇게 여자친구에 전혀 신경을 안쓰는데도 헤어지지 않고 만나주는 그 여자친구들이 가련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학생회 친구들이 모두 '저 형들은 꼭 성공해서 누나들한테 잘해야 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런 배경을 알고 있는 학생회 동료들 앞에서마저 그 예쁜 누나에게 관심을 드러내고, 심지어는 학생회 멤버들 중 충성스러운 몇몇만 같은 자리에 있을 때는 대놓고 그 문제로 은근히 다투기도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런 문제로 싸운다고?'

그 때 나에게는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그 때는 그런 표현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현자 타임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

학생회 동료들 중 나와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며 술을 마시면서 선배들 욕을 했다.

이런 꼴을 보자고 내 성적표를 갈아 먹으면서 선거운동 뛴게 아닌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날 나는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서 결심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바로 입대한다.'

그렇다.

나는 그 때 까지도 학생회에 남아서 회장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던거다.

아무튼 날이 밝았고 학생회실에 출근을 해보니 여전했다. 보통 대학 학생회는 11월에 당선되서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데 등록금 조정과 신입생수련회가 첫 업무가 된다. 그런데 두 사업 모두 가진 능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학생회는 이 지경이니 일할 맛이 안났다. 정이 떨어진 것이다.

그날 나는 입대 신청을 했다.

1종 보통 면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특기병을 지원할 수 있었고, 다행히 특기병은 입대를 조금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1종 보통 면허로 지원할 수 있는 특기는 운전병, 장갑차 조종수, 전차 조종수가 있었다.

장갑차와 전차가 왠지 위험해 보여서 운전병을 지원하려다가 입대 예정 날짜를 보니 계획에 딱 맞지는 않았다.

나는 전역을 하면 쉬는 것 없이 바로 복학하고 싶었기에 아무리 못해도 3월 중순에서 3월 말에는 입대해야 했다. 그래야 말년 휴가 나와서 복학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남은 특기는 장갑차 조종수와 전차 조종수였다.

전차가 멋지긴 한데, 포가 달려있어서 고막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음악을 크게 듣는 걸 좋아하는데 전차 조종수로 갔다가 오른쪽 청력을 많이 떨굴 것 같았기 때문에 장갑차 조종수를 선택했다. 헤비메탈과 고작 전차병의 멋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네이버 지식인을 몇 번 더 보고, 앉아서 고민을 조금 하다가 마우스를 몇 번 눌렀다.


2006년 3월 27일

논산 육군훈련소

주특기, 장갑차 조종수

나는 그렇게 군대에 갔다.




* 등장인물의 신상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으며 일부 변형시킨 내용이 섞여있습니다.
** 제 인생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 시기였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그 때의 사람들과 기억들이 잊혀가는 것 같아서 그 기억을 붙잡으려 쓰는 개인의 기록 용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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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 춘추가?
  • 밀당에 낚여버렸읍니다 파닥파닥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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